김참새 그림

어떤 그림에는 한 시절과 계절의 시공이 묻어난다. 작가가 스케치를 엮고, 색을 고심하는 동안 맡은 냄새, 두 눈에 담은 풍경, 머릿속을 지배한 문장, 만난 사람, 쌓인 대화들…. 그 연쇄 작용의 총합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결의 감정과 개념을 작가 김참새는 캔버스 위에 담는다. 자신의 작업을 ‘일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작업은 사적이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묻어두었던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 하나씩 불을 밝히고 보듬는다. 그의 그림이 마냥 해맑고 명랑하지만은 않은 건 오랜 시간을 두고 마주한 김참새의 그림이 관람자 저마다의 깊숙한 감정을 대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에 치여 돌보지 못하고 성급히 흘려보내고 문을 닫아버렸던 감정들을. 김참새의 작업에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부분은 작가의 타고난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인 원색의 조합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는, ‘돌아보는’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수한 층위의 섬세한 감정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때로 외롭고 쓸쓸하지만, 아주 다정하다. 두번째 개인전 <김참새 : En Moi, au Fond de Moi>를 연 그와 작업실에서 마주 앉았다.

두 작품을 제외하고 40여 작품을 올 한 해 완성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엄청난 몰입이 필요한 작업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시를 앞두고 한 달 보름 정도는 계속 작업실에만 있었어요. 오프닝 날까지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해야 했던 터라 지금 약간 몸살 기운이 있어요. 전시 끝나고 긴장을 놓는 순간 한 번 크게 앓을 것 같아요.

극도로 몰아붙이는 작업 방식이 때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요? 다행히 몰두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오롯이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에 대해 고민하고 집중하는 과정은 늘 좋은 시간이었어요. 오랜간만의 개인전이여서 그런지 유독 의미 있게 다가왔고요.

다양한 협업을 해오고 있지만 홀로 작업할 때 느끼는 자극이 다를 것 같아요. 혼자 결정하고 행하다 보니 ‘이 길이 맞나?’ ‘이렇게 작업하는 게 맞나?’ 스스로 질문하며 원점으로 돌아간 작업도 많아요. 전날은 괜찮아 보였는데 자고일어나 다시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업이 많이 바뀌기도 했어요. 혼자만의 싸움인 거죠. 바꾼 작업들 중에 반응이 좋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아니기도 하고요. 바꾸다가 더 최악이 되기도 하고요. 왜 이렇게 했지? 왜 이 색을 썼지? 하며 후회도 해요.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빠르게 털고 넘어가는 편이에요. 바로 다른 걸 시도하고, 또다시 해보고요. 돌아보면 일련의 모든 과정이 좋았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는 말로 들립니다. 맞아요. 개인적인 일들, 주로 개인적인 감정을 싣는 작업이라 그림을 일일이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조심스러워요.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이번 전시에서 유독 위로를 준 작품이 있어요. 최근에 큰 상처를 받아서 힘들었을 때 사람들이 내게 했던 질문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며 위로를 받고 빨리 잊을 수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며 위로를 받는 편이에요.

‘Does This Look Different?’ 등의 문장이 써 있는 작품인가요? 맞아요. 상처가 되는 말들에 대해 그렸는데 그 상처가 무엇일까 생각도 해보고, 그로 인해 내가 왜 상처를 받았는지 살펴본다는 점에서 작업이 일기 같아요. 일기를 쓰는 행위가 기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오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작용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그림이 위로와 회복이 되죠.

이번 전시에는 회화 작업 외에 자수와 설치, 영상까지 장르를 두루 아우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외연이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졸업할 때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고 전공 과정에서 설치,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바느질의 경우, 바느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바느질 또한 하나의 드로잉으로 느껴지고요. 한 땀 한 땀 새기는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과 개념이 담기고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작업 자체도 큰 즐거움이고요. 아는 분이 저를 ‘봉제왕’이라고 불러요. 설치도, 바느질도 작업 과정이 고되니까 왜 하나 해도 막상 하고 나면 재미있고 의미도 있죠.

김참새의 작업 하면 흔히 경쾌하고 명랑한 느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설치 작업을 포함해 그간의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좀 우울하고,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많은 분이 제 작업을 밝다고 하지만 사실은 많이 어두워요. 불편한 것들도 있고요. 밝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지만 유학 가서 알았어요. 나는 기질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더라고요. 혼자 있는 건 싫지만 사람과의 관계 역시 힘든, 불편하고 예민한 사람이더라고요, 나란 사람이. 그런 면을 솔직하게 작업에 담고 싶었어요. 왜 사람도 단편적인 모습만 보면 밝고 쾌활하지만 더 깊이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잖아요. 제 작업들도 그런 경우 같고요.

맞아요. 밝고 화려한 컬러로 위장하는 듯한 느낌이요.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어요. 근데 작업을 다 하고 보니 ‘그림이 너무 나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사람들이 저를 밝게 보고 ‘얘는 이런 말에 상처 안 받을 거야’ 하며 종종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정작 저는….

귀여운 동물들조차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지 않아요. 곁눈질을 하며 눈을 피하고요. 올해 초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누구나 다 겪는 일이고, 다들 이걸어떻게 겪어내며 살고 있는 거지 싶은 일들인데 막상 내 일이 되다 보니 점점 마음을 닫게 되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 날 그림을 그리면 딱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호랑이 옆모습을 그려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시선이 옆으로 빠져 있는 걸 보면 저조차도 신기해요. 누가 알겠어 했는데 이렇게 알아보니까.(웃음) 맞아요. 최근작 중에 정면 보는 작업이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많이 그렸었는데.

김참새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색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죠. 작가의 타고난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없는 독창적인 색 쓰임이 있습니다. 색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는 편인가요? 또 어디에서 영향을 받나요? 원체 색을 좋아해요. 색만큼은 매일, 매 순간 습관적으로 고민하는것 같아요. 우연히 멋진 색 조합을 봤을 때 머릿속에 넣어두기도 하고요. 가장 근본적인 건 어머니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는데, 엄마와 머리 리본끈을 사러 한참을 돌아다녔어요. 빨간색 체크 패턴 끈인데, 당시 국내에서는 안 만들어져서 결국 수입품 시장 같은곳에서 샀어요. 초등학생인데도 ‘저 체크 끈을 왜 저리 사려고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엄마가 유독 독특한 패브릭과 특이하고 이상한 (웃음) 색을 좋아하셨어요. 또 집에 색색의 털실이 많아서 가지고 놀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엄마 덕분에.

작가 중에서는 마티스를 좋아한다고요. 색을 좋아해서 그를 좋아하게 된 건지, 그를 좋아해서 색을 좋아하게 건지 모르겠지만 마티스 너무 멋있죠. 색 조합을 보면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색을 만들어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 싶어요. 피카소도 그렇고요. 한국에 알려져 있는 작품보다 스페인 본고장에 가면 더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데, 피카소 미술관에 갔을 때 그의 색에 충격을 받았어요. 색에 집착하긴해요. 변태스럽죠, 좀.(웃음)

작업에 텍스트를 응용하는 경우도 많아서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할 거라는 짐작도 했어요.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소설, 에세이 가리지 않고 즐겨 읽는 편인데 작업에 가장 영향을 주는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이에요. 그녀의 글을 보면 묘사가 굉장히 잘돼 있거든요. 단편 중에 ‘유모 럭튼의 커튼’이라는 글만 봐도 유모의 앞치마가 어떻고, 어떤 자수가 놓여 있는지 묘사가 참 섬세해요. 색 묘사도 다양한데 초기작 중에 ‘파랑과 초록’을 읽으며 좋아하는 문장들을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놓기도 해요. 그런 묘사들이 상상에 도움을 주니 시간 날 때마다 읽는 편이고요. 영감이 안 떠오를 땐 무조건 책을 읽어요. 같은 문장이어도 사람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니까요. 보여지는 이미지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도 좋겠지만 보여지는 건 동일해서, 동일한 영향을 받는다는 한계가 있잖아요. 최근에는 큐레이터 박보나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라는 책을 서너 번 읽었어요. 근처 서촌 등에 작은 책방이 많아요. 거기에 귀신처럼 앉아 있는 애가 있다면 그 사람이 저예요.

마지막으로 김참새의 눈에는 무엇이 아름답게 보이나요? 여러 가지를 꼽게 될 것 같은데, 우선 강아지요. 저들은 욕심도, 악의도 없이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잖아요. 꽃도 화려한 꽃보다는 들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힘 주고 있는 것들에게서는 아름다움이 잘 전해지지 않아요. 물건도 새것보다는 손때 묻은 게 좋고요. 작업실 의자들도 다 오래된 빈티지예요. 이 건물도 낡았지만 참 좋죠. 오래된 인터폰도 재미있고요. 시간이 입혀진,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김참새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