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하 1000

블랙 레더 롱 코트 챈스챈스(Chance Chance),티셔츠와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음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다면 몇 킬로그램일까? 신세하가 스스로 질문해 얻은 답이 그의 신보 <1000>에 담겨 있다. 자신의 마음에 ‘천 킬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노래하는 타이틀곡 ‘1000’을 포함해 8곡을 수록한 두 번째 정규 앨범. 그 안에 녹아 있는 묵직한 고찰에 대해 신세하와 이야기를 나눴다.

신세하 1000

블랙 레더 롱 코트 챈스챈스(Chance Chance), 블랙 진 팬츠 플랙(PLAC), 블랙 부츠 손신발(SONSHINBAL), 티셔츠와 벨트, 반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00>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테마로 한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방 안에서 혼자 고민하며 만든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여러 뮤지션과 협업해 개인적으로 더욱 뜻깊다.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방면의 아이디어를 합치고 조율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특히 모과(Mogwaa) 형과 많이 작업했는데, 형은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내며 내 음악적 태도를 이해해주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수록된 곡을 들려주고 함께 세밀하게 다듬으며 앨범 전체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기존 작업실 말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나? 일종의 렌트 하우스처럼 집 한 채의 일부를 빌려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엔지니어 도슨(Dawson)을 주축으로 한 친구들과 방음벽을 조립해 설치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공간을 완성했고, 한 달간 그곳에서 작업했다. 각 뮤지션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한 장비를 사용하며 녹음할 때부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꽉 채운 음악보다는 각 사운드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잘 들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른 뮤지션들이 스튜디오에 놀러 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마지막 날에는 사람들을 초대해 작업의 결과물을 함께 감상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앨범 커버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안과에서 적외선 치료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가 뇌(N’Ouir)가 촬영한 것이다. 커버 이미지가 필요하던 차에 때마침 사진을 현상해 우연히 사용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빨간 빛이 나를 관통한다거나 그 빛으로 인해 내가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타이틀곡 ‘1000’의 뮤직비디오에도 붉은색을 많이 활용했다. 커버 이미지가 재미있어 뮤직비디오에도 붉은색을 띠는 요소를 도입했다. 빨간 조명으로 얼굴을 비추고 불의 이미지를 프린팅한 포토월 앞에 서 있는 식이다. 나 이외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델 겸 타투이스트 푸새(Pusae)를 비롯해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단단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에게 붉은빛을 쏘며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1000’에서 마음의 무게를 천 킬로그램이라고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 누구든 생각이 중심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겪지 않나. 나 또한 내 방향성에 반하는 이야기를 듣고 흔들린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생각이 확고하면 좋겠다고 느꼈는데, ‘무게를 무겁게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가사를 쓰기 전, 내가 미리 허밍으로 만들어놓은 멜로디 라인에서 ‘one thousand kilos’와 비슷한 발음이 들려 ‘1000’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정하게 됐다.

천 킬로그램의 마음 안에는 뭐가 담겨 있나? ‘1000’의 가사에 나오듯 겁, 질투, 모난 흠 등 외면하고 싶은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받아들여야 비로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누구도 밀어내지 못할 만큼 무겁다고 말하는 것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겠다는 것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2번 트랙 ‘불러모아’는 머릿속에 있는 잡념을 꺼내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 곡인데, 잡념과 함께 ‘방이 가득 울리도록 파티를 열자’는 가사가 이어진다. 부정적으로 여기던 것들도 대면하다 보면 별것 아니라는 의미를 담았다.

‘1000’과 5번 트랙 ‘나’에서 엄정화와 협업해 화제가 됐다. 그동안 내 취향이나 감정을 노래하는 방식으로 나를 표현해왔는데,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표현의 방식이 아닌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른 것에 의해 쉽게 범주화할 수 없는, 나의 확고하고 진취적인 태도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했을 때 엄정화 누나가 떠올랐다. 나를 포함한 후배들은 물론 수많은 대중이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뮤지션이니까. 그래서 SNS 메시지로 연락드렸는데, 흔쾌히 같이 작업해보자는 답장이 왔다. ‘나’는 엄정화 누나의 솔로곡이고, 이후 함께 부른 곡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1000’의 피처링을 부탁드렸다.

대선배 엄정화가 해준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앨범 작업을 위해 처음 만난 날, 내가 구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하며 열의를 보이자 “네가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하되, 그 안에 내가 들어가는 모습이 제일 멋있고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고민하던 부분을 콕 집어 이야기해주신 것이다. ‘역시 엄정화는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웃음)

래퍼 김아일도 ‘Crystal’과 ‘Lizard, Lung’ 2곡에 참여했는데, 피처링이 아닌 보이스 오버의 형식이다. 앨범 크레딧을 찾아보지 않으면 김아일 형의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않는 이상 누군지 알 수 없고, 해당 파트의 가사도 기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해설자처럼 랩을 하는 이 사람은 누구지?’ 하고 궁금해하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김아일 형에게 ‘Crystal’과 ‘Lizard, Lung’ 2곡을 보냈고, 그가 자신의 시점을 반영한 가사의 랩을 더했다. 예를 들어 일본 뮤지션 나츠키(NTsKi)가 피처링한 ‘Crystal’에서 김아일 형은 크리스털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나를 표현하는 것’에 비유했다. 그 덕분에 나와 나츠키가 각자 쓴 가사의 연결 고리도 생기고 앨범의 테마와도 잘 맞았다.

<1000> 발매 후 다방면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에 참여해 <1000>의 바이닐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12월에는 실제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이번 앨범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일주일간 열었고, 도쿄에서 쇼케이스도 진행했다. 라이브 공연과 디제잉 또한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1000>의 수록곡을 다루는 영상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그 외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없다. 많은 사람이 <1000>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