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HERLANDS

성지예

전략 컨설턴트, Human Rights Foundation

혐오의 바이러스

코로나19는 아시아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며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인권 단체 Human Rights Foundation에서 일하는 한국인 성지예 씨는 인종차별 피해를 자신의 SNS에 알리며 이 문제를 보다 공론화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2017년에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에서 사회과학기술학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석사 학위를 따고 구직 비자를 받은 후 현재 인권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두 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북한 내 정보 유입을 위한 캠페인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는 매년 오슬로, 타이베이, 뉴욕,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인권 콘퍼런스 시리즈인 오슬로 자유 포럼(Oslo Freedom Forum)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해외 에서는 사재기도 심각하다고 알려졌다. 네덜란드는 사스나 메르스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고 정부의 대응 방침이 한국보다 느리고 느슨한 편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다.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면역력이 떨어 지는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3월 중순부터 정부에서 자발적인 자가격리 및 1.5미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했는데 사람들이 이를 잘 지키지 않아 3월 27일부터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3월 초부터 손세정제나 마스크, 소독용 알코올이 보이지 않고 마트에서는 파스타, 밀가루와 휴지의 사재기가 심하다. 도시와 마트마다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지난주 헤이그의큰 마트에 갔을 때는 휴지를 제외한 모든 상품이 넉넉했 다. 주요 장보기 배달 서비스들은 3주 후까지 예약이 끝났다. 반면, 장보기가 힘든 이웃을 위해 장 대신 봐주기, 도매상들이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이미 구매한 식재료 나눠 주기, 이웃인 농부를 대신해 상품을 SNS에 홍보 해주기, 그리고 이웃과 안부 교환하기 등의 마음 따뜻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프리랜서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 대한 생활 보조금 지급 등의 대책을 빨리 마련한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이 이전에 비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가? 이전부터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존재했다. 이를테면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 ‘행키 팽키 상하이 칭챙총’ 등의 가사로 이루어진 중국인 비하 노래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발언, 행동, 폭력을더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마녀사냥처럼 ‘너희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 같은 논리인 것 같다. 인종차별로 인한 여러 사건은 코로나19가 유럽에서 발생하기 전부터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구실 삼은 것뿐이다. 차별주의자에게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면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탓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심해진 인종차별 피해에 대해 SNS에 알렸다. 2월 말 저녁 10시 30분쯤 운동 수업이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쿠터를 탄 20대 남성 둘 중 뒤에 앉은 사람이 나를 보고 ‘중국인’ 이라 외치며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잘 피했고 늦은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집에 최대한 빨리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다.

” 내가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들은 네덜란드 친구들이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론화하게 되었다. “

그 사건을 SNS에 공개한 후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 많은 친구들이 괜찮느냐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주변의 다른 아시아인이 겪은 사건을 공유했다. 이런 메시지와 수백 개의 긍정적인 댓글을 보니 공론화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흑인에 대한 차별 반대 운동을 시작한 활동가,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아시아인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중국계 네덜란드인 등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사건 이후 인종차별주의 관련 설문 조사도 진행했다. 어떤 내용의 조사였는가? 4월 1일 현재 총 187건의 인종차별 관련 사건이 접수되었고, 사건을 겪은 곳(장소, 도시, 나라), 가해자의 수와 성별 등 상세한 내용을 항목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까지 약 10% 정도의 사건이 신체적 위협 혹은 폭행 사건이었고 피해자의 약 80%는 여성, 가해자의 약 84%는 남성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낮에 발생했고 가해자는 2~3명인 경우가 65% 정도, 한 명인 경우가 20% 정도다.

관련 캠페인도 준비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인가? 우선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보고하고 기록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것, 더 나아가 다른 반인종차별 단체들과 연대해 시위나 워크숍을 진행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래픽디자인, 학술 논문, 사회운동 등 여러 각도로 접근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로 인한 피해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이렇게 공론화한 이유가 있다면? 최근까지 많은 아시아인이 차별을 겪으면 피해자로 보이기 싫어서, 혹은 말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해서 참았다. 그런데 말이 한번 트이니 공론화가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우리끼리 고충을 나누자는 취지였다. 외부적으로는 공론화를 통해 네덜란드 사람들이 현재 알고 있는 인종차별의 범주에 아시아인도 들어가게끔 하고자 했다. 인종차별은 흑인이나 아랍계 이민자만 겪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주변에 아시아인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시아인은 쉬운 타깃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런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칭챙총’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따지고 사과를 요구하면 순순히 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한다. 네덜란드에 계속 살고 싶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들은 네덜란드 친구들이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일간지 <폴크스크란트(VOLKSKRANT)>와 인종차별주의와 관련해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해진 여러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 제보했는데 어떤 사건들이었는가? 설문 조사에서 취합한 사건들로 주로 신체적 위협을 가한 폭력 사건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누군가 밀쳐서 넘어졌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데 어떤 네덜란드 남자가 “코로나 코로나”라고 하며 유모차 바퀴에 침을 뱉은 사건, 집 외벽에 나치 문양을 그려놓고 간 일, 마시던 음료를 던지며 성희롱한 사건,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구타당한 일본인 아이 사건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코로나”라고 외치며 조롱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바이러스라도 본 듯 피해가는 일도 있었다. 아시아인을 향한 차별이 여러 나라에서셀 수 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행동들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덜란드에서는 각종 반차별 법안들이 존재한다. 이 중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도 있고, 다양한 반인종차별 단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는 오래 걸리고, 이제까지 아시아인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적어서 변화가 더 느렸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던 친구들이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배우며 변해가는 모습을 봤다. SNS에 관련 글을 올리면 나 대신 악플러들과 싸워 주고 화내며 우리나라에서 차별을 겪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면 대부분 납득하고,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어딜 가나 차별주의자는 존재한다. 아시아인을 놀리는 게 ‘쿨하다’고 여기는 차별주 의자들에게 실제로는 ‘쿨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