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리틀픽처스
애비규환 현장 정수정과 최하나 감독
<애비규환> 촬영장에서의 최하나 감독과 토일을 연기한 배우 정수정.

첫 장편 영화의 소재를 가족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애비규환>은 제가 졸업작품으로 쓴 첫 번째 장편 시나리오입니다. 담당 교수님이었던 김홍준 선생님이 ‘졸업작품은 상업 영화를 위한 포트폴리오가 아니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을 관통하는 화두가 뭘까, 왜 나는 콩가루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것일까 고민한 끝에 가족 영화 시나리오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첫 장편 연출작으로 까지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지만, 다 만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와 가장 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애비규환>의 영문 제목이 ‘more than family’ 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원래 저는 <애비규환>이라는 말장난을 살려서 영문 제목도 <Dadisaster>라고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장난의 의도나 뜻이 단박에 전달되기 어렵다는 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피가 섞인 (진짜)가족보다 더 진짜 인 것,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모던 패밀리’라고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골랐습니다. 관습적이지 않은 현대적인 가족상의 면면들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영화 속 토일과 호훈의 부모 모두 우리에게 규범적으로 익숙한 이미지와 많이 다릅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인물,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납작하게 그려지는 것을 많이 못견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토일이라는 이십대 초반의 여자 청년, 그리고 엄마들과 아빠들이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으면 했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엄마’, ‘소파에 앉아서 신문 보는 아빠’ 같은 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전형적인 성역할의 모습은 보통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규범에서 비롯되기도 하니까요. 또한 이 영화는 토일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보니, 토일의 선택이 무모하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은 것으로 보여지려면 토일을 둘러싼 인물들을 어떻게 그려낼 지가 중요했습니다. 토일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것입니다. ‘남편 될 사람의 부모는 어떤 사람들인가’도 고려 대상이었을 거고요. 호훈 부모의 쿨한 성격과 한국 사회의 규범에서 많이 벗어나 보이는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며 우선 안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탈한국’적인 면모들이요. 호훈 부모의 성격뿐만 아니라 의상과 그들이 듣는 음악, 집의 인테리어들로 그런 면모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와이안 셔츠, 레게 음악, 빠에야, 열대과일들 등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 외에 그다지 일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유교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토일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호훈의 부모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습니다. 토일의 새아빠인 태효를 한문 과목 교사로 설정한 것은 그가 사용하는 사자성어들, 훈장님 같은 이미지가 토일과 태효 사이의 거리감을 더 심화시켰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똑같이 사자성어로 맞받아치는 토일의 모습도 지기 싫어하고 호전적인 토일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첫 장편 영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뭔가요?

졸업 작품으로 시나리오 초고를 쓰던 단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것들을 쭉 돌아보았는데, 아무래도 하나만 꼽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어온 과정은 저에게 한 편의 영화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총합이라는 걸 매 순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제가 왜 첫 장편 영화로 다름 아닌 <애비규환>을 쓰고 찍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는 아무래도 저희 가족의 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족들과 아무런 불화도 없었거나 또는 영영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더라면, 가족 영화에 대한 열망이 아예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제가 꼭 토일이와 같은 성장 배경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안에 저의 가족들과의 일화로부터 빌려온 아이디어들이 많이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당시 GV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이 있나요?

‘가족들이 소원돌을 드는 장면이 토일의 미래를 암시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입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토일이가 한 말에도 불구하고, 토일의 미래가 낙관적이었으면, 그래도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엿보이는 듯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기대는 저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원돌 들기에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토일의 미래와 관계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운명을 그런 미신에 맡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애비규환>을 본 관객들과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싶나요?

토일이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할 때, 이혼한 부모님을 둔 친구에 대해 같은 반 친구들이 수군대는 경험은 제가 고등학생 시절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그때 “여기 있는 애들 중에 부모님이 이혼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친구들의 순진무구함이 우스워보이기도 했어요. 그런 말들에 상처받기 보다 비웃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씬을 쓰고 찍기도 했습니다. 그런 태도, 그런 마음을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혼한 사람들은 자기 삶의 오류를 인정하고 고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이니까, 불행하기보다는 더 나아진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규범에서 조금 벗어난 가정 환경을 가졌더라도 그 자체로 불행할 이유는 없다고 믿으면서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토일이와 비슷한 유년 시절, 비슷한 가정 환경을 경험한 분들에게 토일이의 성장과 결심이 납득되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제가 하고 싶은 것 중 가장 크고 어려운 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