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한국,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 콘텐츠 총괄 VP를 맡고 있다. 직위명만으로는 일의 영역을 가늠하기 힘든데,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직위 이름은 길지만 내가 하는 일은 한마디로 설명 가능하다. ‘문제 해결’. 입사한 후에 회사에 나를 뽑은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해결 능력을 보고 뽑았다고 하더라. 그 능력을 발휘해 문제의 근원과 맥락을 파악하고 팀원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다. 다만 여타 회사의 리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문제 해결 방식을 결정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라는 것. 이곳에는 나보다 훌륭한 팀원들이 가득하다. 나는 의견을 듣고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져 그들이 확고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넷플릭스 인터내셔널(미국 외 모든 지역) 콘텐츠 부문에 입사한 첫 한국인이다. 유일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회사의 기대치나 개인적인 부담도 컸을 것 같다. 입사하자마자 미국으로 출장 가서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처음 보는 직원이 나를 단번에 알아보더라. 그때 좀 놀라긴 했다. 초반에 한국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 설명해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데 업무 시간 대부분을 쓴 거 말곤 크게 부담은 없었다.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 것 같은데, 혼자라는 이유로 어려운 점은 없었다.

입사하기 전 기대했던 부분과 입사 후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본사와 지사 개념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지사는 본사의 지침을 따른다. 이전에도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런 체계를 생각했는데, 넷플릭스는 아예 개념이 달랐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지사가 아니라 독립적인 오피스로서 독자적으로 일을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았고, 그 점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리더이기보다 보좌하는 유형이라 여겼는데, 넷플릭스에 와서 처음으로 ‘타고난 리더’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면 과 대표도 하고 동아리 회장도 한 적이 있지만 늘 어쩔 수 없이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일하면서 몰랐던 나를 알게 되었다.

CJ ENM, 트위터 같은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곳에서 쌓은 경험이 도움이 될 때가 있나? 물론 많다. CJ ENM에서는 글로벌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를 통해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한국에서 뭘 잘하는지 파악하고, 그중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익혔다. 이 일을 하면서 소통의 방식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배웠다. 트위터에서는 콘텐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겪었다. 내가 일하던 당시 트위터에서는 이미지나 영상 없이 텍스트만 가능했는데, 그 트윗 모두를 콘텐츠라 부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때부터 좀 더 유연하게 콘텐츠를 바라보게 되었다.

넷플릭스에 다닌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물어보는 건 본인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쇼가 언제 나오느냐는 거다. 일단 <킹덤>이나 <좋아하면 울리는>의 다음 시즌은 언제 나오는지 그것부터 묻는다.(웃음) 그다음으로 많은 건 회사 문화에 대한 질문이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데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한국에서도 실현 가능한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넷플릭스 문화에서 사람들이 가장 크게 놀라는 점은 무엇인가? 최근에 나온 넷플릭스에 관한 책 <규칙 없음>의 제목 그대로 규칙이 없는 것을 신기해한다. 사실 수평적인 구조는 많은 회사들이 시도하는데 실제로는 직위 대신 ‘님’ 자를 붙이거나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전반적인 영역에서 규칙 없이 일한다. 단적으로 모든 결정은 리더인 내가 아니라 그 일을 책임지고 추진하는 당사자가 한다(우리는 이들을 정보에 밝은 주장이라는 의미의 ‘informed captain’이라 칭한다). 콘텐츠를 수급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들이 맞다고 하면 하고, 내가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 안 한다. 정말 그렇다.

출퇴근 시간이나 휴가부터 일의 방식이나 진행 과정에서 필요한 결정까지 모두 각자의 몫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패턴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누구도 야근하라고 하지 않고, 누구도 어떤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지속 가능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나의 경우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이번 달 혹은 이번 분기의 우선순위를 공유한다. 그러면 팀원들이 내 계획에 관해 ‘우선순위가 이런 이유로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반영해 수정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넷플릭스 문화의 시작점은 높은 인재 밀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일하면서 회사에 많은 인재가 포진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매일. 나는 집단 지성이라는 말을 이 회사에서 실감했다. 그 정도로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자기와 관련이 없으면 가만히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모든 것이 전반적인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해 담당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의사 결정 과정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더 이상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지 못하는 점이라고 한다.

이곳의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 가지다. 첫째는 호기심.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가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낼 수 있다. 다음은 헌신. 내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비즈니스에 관련된 건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지막으로 정확한 자기 인식.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그게 일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친다.

다양성이라 함은 인종, 성별뿐 아니라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나? 그렇다. 일반적인 기업 문화에서 다양성이라고 하면 주로 인종이나 성별을 얘기한다. 그런데 이곳은 다양성을 훨씬 더 많은 영역에 적용한다. 성별도 남녀가 아니라 LGBTQ(성적 소수자)까지 포함해야 하며 연령, 문화, 배경까지 다양성이란 건 어떤 분야에든 적용할 수 있다는 걸 이곳에 와서 알았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근육 키우듯 꾸준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 배우나? 근육은 운동을 며칠만 안 해도 줄어들기 쉬운데. 회사가 가만두질 않는다. 나태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강요하진 않지만.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말에 따르면 궁극적으로는 올바르고 좋은 사람이 되는 방식을 배운다.

사람들이 넷플릭스 문화에 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규칙 없음>을 읽고 ‘자유와 책임’이라는 개념에 꽂힌 사람이 많은데, 그중 자유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단순하게 자유는 돈을 펑펑 쓰는 것, 책임은 잘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두 가지가 공존해야만 가능한 방식이다. 그 외에 넷플릭스가 외국계 회사다 보니 인재를 찾아도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영어를 못해도 되는 회사는 아니지만 영어를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영어를 쓰는 분위기에 본인을 노출시킬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는 영어가 모국인 사람이 거의 없다.

또 다른 오해라고 하면 외국계 회사지만 한국에 있고 한국 사람이 있으니까 결국 비슷할 거란 인식이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좋은 문화를 만들어도 실제 로컬 문화에 맞게끔 변경하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꼭 고수해야 하는 DNA는 있고, 그게 어디서든 반영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특히 피드백 문화를 정착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 넷플릭스는 직급이 매니저-디렉터-VP 순으로 높아지는데, 누구든 VP인 나에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을 주도했다. 그래서 지금은 실제로 매니저들이 피드백을 가장 많이 준다. 또 피드백을 일대일로만 받는 게 아니라 공식 석상에서도 받고,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개인적으로 받은 의견을 팀 미팅에서 공개한다. 이런 의견을 받았는데, 이건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이렇게 노력해보겠다는 식으로 가감 없이 말한다.

지금 공개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는 피드백이 있나? 매니저로 입사해서 4년이 지난 지금은 VP 자리에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 자신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 나에 대해 돌아볼 만한 피드백을 받았다. 난 궁금한 게 있으면 숨기지 않고 물어보는 데다 말도 직설적인 편이다. 그런데 직급이 올라가고, 연차가 쌓이다 보니 예전에 하던 대로 한 질문들이 상대방을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간과했었다. 사실 리드한테 “당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생각해라. 당신은 가볍게 얘기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고 말한 적이 있는데, 딱 일주일 뒤에 내가 똑같은 피드백을 팀원에게 받았다. 그 일을 겪고 ‘내가 거울을 못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부터 말의 무게를 인식하고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사실 쉽진 않다.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최근 넷플릭스 작품 중 <킹덤>이나 <좋아하면 울리는>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한국 콘텐츠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킹덤>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 아마존에 갓이 등장했다. 흥행은 물론이고 우리 작품이 생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또 자체 제작 콘텐츠는 아니지만 영화 <사냥의 시간>을 공개하고 나서 윤성현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요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한류라는 말이 생겼을 때보다 훨씬 크다. 실적을 보고할 때마다 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테드 서랜도스가 한국 콘텐츠를 자주 언급하고, 예전과 다르게 아시아에서 뭘 해보려고 할 때 한국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심지어 해외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도 자주 온다. 이런 일들이 우리를 고무되게 만든다.

콘텐츠 성패를 시청률 같은 수치가 아니라 파급력으로 판단하는 편인가? 하나의 콘텐츠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수치를 포함해 다방면으로 분석한다. 그런데 한국 자체 제작 콘텐츠는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그 효과를 숫자로만 판단하긴 어렵다고 본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판단하기도 한다.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겪은 시행착오도 있을까? 자체 제작을 시작하기 전, 한국 콘텐츠를 수급할 때였다. 당시에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기준이 내 취향이었다. 넷플릭스 유저는 나랑 비슷할 거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할 거라고 착각했던 거다. 실제로 굉장히 다양한 시청자들이 있고, 나 하나가 그들을 대변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실패한 콘텐츠가 많았다. 이를 겪으면서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 상황을 보면서 다방면으로 분석해 선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가장 먼저 어떤 것을 고려하나? 화이트 스페이스, 그러니까 콘텐츠 시장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어떤 것일지를 찾는다. 또 작품 제안이 들어오면 ‘차별화된 소재인가?’, ‘어떻게 하면 차별화되게 만들 수 있을까?’, ‘다른 채널에서도 봤던 것인가? 아니면 넷플릭스에서만 가능한 걸까?’ 하는 고민을 한다.

넷플릭스다운 콘텐츠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잡식성이다. 시청층이 넓다 보니 그들을 충족시킬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넷플릭스다운 건 자유라는 관점으로 찾는다. 소재, 표현 수위, 기술, 포맷에서 그동안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참신한 콘텐츠에 창작의 자유를 안겨주고 완성시키는 것이 넷플릭스에 맞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게 지금의 넷플릭스가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채널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추구한다. 재미있으면 된다.

창작의 자유는 넷플릭스 작품에 참여한 감독과 배우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만든 이경미 감독은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기존의 극장 상영물처럼 여러 검열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됐고, 그래서 한번 누려보겠다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킹덤>의 배우 주지훈 역시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관해 본질 이외의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됐었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관여하지는 않지만 대신 굉장히 많은 대화를 한다. 서로 이해를 하기 위해서다.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건지, 주인공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엔딩은 왜 이런 방향으로 가는지 등 기획 단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한다. <인간수업> 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얘기까지 나왔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해하면 제작진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반대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제작진이 수긍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고 통보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기 때문에 감독과 작가, 배우들이 그 점을 좋게 봐준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것. 이를 위해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좋은 콘텐츠는 만드는 이들의 비전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가장 멋진 결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관여하는 대신 대화하는 건 더 좋은 콘텐츠를 위한 우리의 방식이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이슈나 트렌드의 반영을 신경 쓰기도 하나? 작품을 선택하고 론칭할 때까지 1년 반에서 2년가량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의성이 있는 걸 찾긴 어렵다. 그리고 트렌드는 당연히 모든 콘텐츠를 만들 때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만 제작 공정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오히려 앞서가려고 하는 편이다. 어떤 트렌드가 등장할지 고민하는 동시에 거시적으로 봤을 때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생각한다. 그런데 얻어걸리는 경우도 많다.(웃음) <킹덤 2> 같은 경우는 ‘코로나19를 예견한 넷플릭스는 천재다’라는 반응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얻어걸린 경우다.

한국 콘텐츠는 오로지 국내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만들진 않지만, 한국 사람이 만들기 때문에 생기는 한국적 특성은 있기 마련이다. 콘텐츠에 담긴 한국적 특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가장 로컬 색이 짙은 콘텐츠가 오히려 해외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로컬 색이 짙을 수 있지만 감정은 보편적인 거니까. 그런 면에서 국내 작가와 감독들이 감정의 디테일을 잘 보여주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얼마 전에 미국 범죄 수사물은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인 건지에 집중한다면 한국 콘텐츠는 왜 죽인 건지에 집중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건보다는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잘 표현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한국만의 특성이지 않을까.

흥행은 확실할 것 같지만 새로울 것 없는 콘텐츠와 흥행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신박한 콘텐츠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하는 편인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위험 요소가 많고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작품을 선택했는데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을 때다. 그런 작품에 더 큰 의미를 두기도 하고. 그렇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전자를 택할 것 같다. 그래서 밸런스가 중요하다. 두 가지 콘텐츠를 적절히 공존시키고 싶다.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넷플릭스에서 이미 하고 있는 거지만, 꾸준히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시도해보고 싶다. 그리고 한국 콘텐츠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서 해보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여섯 살짜리 조카가 있는데, “이모, 화장 안 하면 안 예뻐”, “공주는 왕자가 구해줘야 해” 하고 말하는 걸 듣고 좀 놀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에 관해 바람직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건 책임감을 가지고 잘 만들어볼 작정이다.

제작한 작품을 시청자로서 보기도 하나?  제작 과정에서 대본을 몇 번씩 읽고, 가편집본도 보고, 수없이 본다. 그렇지만 론칭하면 꼭 집에서 맥주 한 캔 들고 정주행을 한다. 그 작품을 만든 일원으로서 뿌듯한 마음으로도 보고, 순수한 시청자의 마음으로도 보고, 또 봐야 할 이유는 많으니까.

지금 시청 중인 목록에는 어떤 작품이 있나? 요즘 <퀸스 갬빗>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스타트업>을 보면서 남주혁 배우에게 빠져 있기도 하다.(웃음) 소울 푸드를 찾듯이 우울할 때마다 틀어놓는 건 <빅뱅이론>이나 <방구석1열>. 최근 동남아시아랑 호주 넷플릭스까지 맡아서 공부할 겸 호주 코미디 작품 <안티 도나의 빅 올드 펀 하우스>도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자체 제작 콘텐츠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을 하나만 꼽는다면? <인간수업>. 내가 아니라 팀원이 찾아낸 작품인데, 이걸 가져온 사람이나 하라고 서포트한 나나 홍보팀이나 ‘장난하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만든 작품이다. 작가도 배우도 신인인 데다 감독님도 기존에 해오던 것과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게다가 내용도 위험한 요소가 많았다. 엄청난 모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걸 넷플릭스가 할 수 있다면?’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결국 좋은 반응을 얻어서 기억에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도 소중하고 심지어 더 재미있게 본 작품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노심초사하면서 결과를 기다린 작품이라 그런지 내게는 <인간수업>이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