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는 집시였다 인터뷰 앨범 0 제이플로우 셉
제이플로우 롱 코트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후드 티셔츠와 조거 팬츠 모두 폴 스미스(Paul Smith), 운동화 아디다스(adidas),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아워레가시(Our Legacy), 레더 재킷 아더에러(Ader Error), 코듀로이 팬츠 자라(ZARA), 하이톱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히피는 집시였다 인터뷰 앨범 0 제이플로우 셉

히피는 집시였다 인터뷰 앨범 0 제이플로우 셉

 

히피는 집시였다는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제이플로우(Jflow), 보컬과 작사를 맡고 있는 셉(Sep)으로 구성된 팀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셉 서로 알고 지낸 지는 꽤 오래됐다. 나와 제이플로우는 과거에 랩을 했는데, 지방에 살던 제이플로우가 서울에 올라온 후 지인 소개로 처음 만났다. 제이플로우 그때 둘 다 20대 초반이었으니 10년 정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나? 셉 제이플로우의 외모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모히칸족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몸집도 커 마치 하드코어 래퍼 같았다. 제이플로 반면 셉은 대학교 동아리 래퍼 느낌이 강했다. 나와 달리 착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오랜 기간 함께 지내다 보니 신뢰가 쌓여 팀을 이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는 셉에 대해 친동생처럼 많이 알고 있다. 실제로 같이 산 적도 있다. 20대 이후로 제이플로우가 나를 업어 키웠다.(웃음)

팀을 결성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제이플로 2016년쯤 셉이 내게 앞이 캄캄하다며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셉은 앨범이 아니라 싱글 곡 위주로 음악을 발표했는데, 나중에 스스로 돌이켜보면 아쉬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음악을 했다는 일종의 기록으로 앨범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했다. 처음엔 제이플로우가 팀이 아닌 내 앨범을 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제이플로우와 함께 앨범을 내는 게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게 히피는 집시였다의 시작이다.

팀 이름을 히피는 집시였다로 정한 계기가 있었나? 이름을 정할 때 제이플로우가 히피 문화에 관심이 많아 ‘히피’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더라. 나는 히피보단 ‘집시’가 더 낫지 않으냐며 “히피도 원래 집시였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히피는 집시였다’가 됐다. 큰 의미를 담아 짓지는 않았다. 제이플로우 가끔씩 ‘히피는 집사였다’ 혹은 ‘접시였다’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는데, 이런 관심도 이름을 특이하게 지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두 사람 다 힙합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이 히피는 집시였다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셉 힙합을 하던 당시에도 멜로디를 짜는 등 노래의 성향을 띠는 음악이 더 편했다. 이런 부분이 조금씩 연습되며 자연스럽게 보컬로 넘어왔다. 이플로우 힙합을 했지만 음악을 듣고 싶은 날에는 이문세, 신촌블루스와 같은 느리고 잔잔한 옛날 노래를 듣게 되더라. 그때 ‘기억될 수 있는 음악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점점 지금과 같은 느낌의 비트를 만들게 된 듯하다. 히피는 집시였다의 1집이나 2집을 들어보면 샘플링 기법이나 빈티지한 드럼 머신의 질감 등 힙합 요소가 녹아 있는 편이다. 음악의 영역이 힙합에서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곡을 완성해가며 어떤 식으로 합을 맞추는 편인가? 제이플로우 곡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 대신 트랙의 제목을 통해 공유하는 편이다. 제이플로우가 곡을 만든 후 제목을 붙여 보내주면, 나는 곡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등을 재해석해 멜로디와 가사를 만든다. 제이플로우의 현재 작업 방식 자체가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제이플로우 히피는 집시였다의 음악은 셉의 해석이 더해져 완성된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정해놓는다면 사실 그건 히피는 집시였다의 음악이 아니라 나만의 앨범인 셈이 아닌가. 내 역할은 셉이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되 많이 벗어나진 않도록, 일종의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다.

네 번째 정규 앨범 <불>을 발매한 후 약 1년 만에 EP <0>을 선보였다. 제이플로우 지금까지는 주로 내가 제목을 정했는데, 이번에는 셉이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0’은 아무것도 없고 다 소진되었다는 뜻을 포함하지만, 숫자의 형태를 살펴보면 마치 구멍을 형상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 속으로 온몸을 던진다’라는 앨범 소개 문장 또한 원, 즉 ‘마음의 구멍’ 안에 뛰어들며 우울한 감정에 빠져든다는 의미를 담아 직접 썼다. 개인적으로 2019년 겨울부터 마음에 구멍이 난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는데, 그래서 이번 앨범에 내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반영돼 있다. 제이플로우 히피는 집시였다의 곡을 쓸 땐 보통 하나를 보면 주변 상황까지 들어오게끔 한다. 나무가 있다면 나무뿐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산의 요소도 눈에 띄도록 하는 식이다. 반면 <0>은 한 사물만 집중해 바라보듯이 만들었다.

피처링 아티스트 없이 셉의 보컬로만 앨범을 채웠다. 제이플로우 가장 큰 이유는 돋보기로 관찰하는 것처럼 만든 앨범이라 이를 공유할 만한 아티스트가 있을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입장이긴 하지만, ‘앨범에 담긴 셉의 감정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티스트가 참여하면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질 것 같아 피처링을 배제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원과 네모 등 도형을 활용한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다. 셉 히피는 집시였다의 아트 디렉터로 함께해온 그래픽 디자이너 마빈 킴이 이번에도 커버를 제작했다. 그가 내 이야기를 들은 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이플로우 커버 디자인과 앨범의 결이 잘 맞고, 왼쪽 모서리에 각 트랙을 형상화한 도형들을 넣은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흑백이 조화를 이루는 커버의 오른쪽 상단에 주황색 네모가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네모가 어떠한 형상을 따뜻하게 덮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추억이 보관되어 있는 네모난 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이플로우가 한 인터뷰에서 평소 추상화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이런 점이 프로듀싱에도 영향을 끼칠 듯하다. 제이플로우 예전에 랩 가사를 쓸 땐 내 음악이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가사에 담은 표현만 듣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작곡은 그에 비해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듣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게 달라 자유롭다. 내가 가사를 쓰는 스타일도 차이가 있다. 랩은 직관적일수록 매력 있지만, 히피는 집시였다의 음악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조화롭다. 그래서 직접적인 표현을 쓰기보다는 이미지를 글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제이플로우 ‘사랑’을 예로 들자면 ‘사랑해’라고 하지 않는 대신, 사랑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 다룬다. 모두가 쓰는 표현을 하지 않는 팀이다 보니 우리 음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0>의 가사를 오직 한국어로만 채웠다. 이번 앨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가사 한 구절을 꼽는다면? 셉 ‘찰나’의 앞부분이다. ‘저 빠른 시간 속 널 안은 지금이 영원하면 좋을까.’ 제이플로우 인터뷰할 때마다 매번 바뀌는데, 오늘은 ‘모든 것은 그 자리에’를 꼽고 싶다. 누구든 우울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언젠가는 빠져나오기 마련이고, 셉에게도 결국 이런 순간이 올 것이다. 이 곡을 앨범의 맨 마지막 트랙에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운드적으로 어떤 점을 신경 쓰며 앨범을 만드는 편인가? 제이플로우 마지막 트랙을 듣고 나서 1번 트랙으로 돌아갔을 때 어색하지 않은 구성을 지향한다. CD 플레이어로 앨범을 들으면 전체가 순환하듯 반복되는데, 히피는 집시였다의 앨범들은 계속 들어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신경 쓰는 편이다. <0>이 CD로 발매되지 않아 아쉽다.

‘버드나무’와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두 곡을 타이틀곡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셉 다른 곡들이 다소 어렵다면 ‘버드나무’와 ‘모든 것은 그 자리에’는 불특정 다수가 들어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노래인 듯하다. 제이플로우 항상 타이틀곡은 우리 음악을 처음 듣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걸 선택한다. 우리만의 세상을 보여주기보다는 한 발씩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히피는 집시였다를 비롯한 아티스트의 숙명이 아닐까?

<0>은 대중성을 고려하며 만든 앨범인가? 제이플로우 셉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앨범이라 대중성을 고려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0>이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루다 보니 대중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히피는 집시였다가 음악과 대중성의 밸런스가 좋은 팀이 되길 바란다. 우리 음악이 대중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도록, 스스로 더욱 단단하게 브랜딩하고 싶다.

<0>의 감상 포인트가 궁금하다. 셉 <0>을 들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앨범을 만들던 당시 내 상황이나 제작하는 과정이 힘들었기 때문에 분명 이런 감정이 담겼을 것이다. 듣는 사람들은 아픔에 깊이 빠지지 말고, 나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듣길 바란다.

제작 단계부터 앨범이 발매된 지금까지 아픔이 이어지는 데도 <0>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언가? 셉 이유는 없다. 항상 느끼는데, ‘내가 왜 음악을 하지?’ 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가 없더라. 할 게 이것밖에 없기 때문도 아니고, 음악이 어떠한 원초적 표현의 수단인지도 고민해봤지만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형용할 수 없는 것 같다.

히피는 집시였다의 음악은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스스로 어떤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셉 이건 확신한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것. 제이플로우 굳이 분류해야 한다면 ‘얼터너티브’가 통칭하기에 알맞지 않나 싶다. 우리의 음악은 규정되지 않았고, 사람들도 규정하기 어렵다고 하니까.

<0>은 히피는 집시였다에 어떤 의미로 남을까? 셉 개인적으론 힘들었지만 히피는 집시였다로서는 신선한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여러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이끌어준 제이플로우도 고맙다. 제이플로우 항상 1년을 기록하듯 앨범을 만들고 있다. 한 해 동안 쌓인 레이어를 한 겹씩 풀어내며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고 남겨둔다. <0>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히피는 집시였다의 앨범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