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폭설, 혹서와 혹한.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 위기의 징후는 온 지구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지금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에 대해 소설가 최정화가 제로 웨이스트 에세이를 시작한다.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환경보호 최정화 에세이 우리가 어제 놓쳐버린 5천2백만 봉지의 거절

제로 웨이스트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쓰레기뿐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삶에서 제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고 집에선 인터넷도 안 해요. 브래지어도 안 입고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죠. 쓰레기를 줄이려는 여러 가지 실천을 시도해왔고 실패한 적도 많았어요. 집에서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분해해보려다가 구더기가 생기고, 쓰레기통에 파리 1백여 마리가 들끓은 적도 있어요. 지지난해부터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소식지에 환경 만화를 기고하고 있어요. 나눔으로 하는 활동인데 좀 더 발전시켜서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생각하다 제가 좋아하는 그래픽 노블을 출간하는 출판사 미메시스에 연락했죠. 만화는 퇴짜맞았지만 편집자에게 환경 에세이를 써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시작하게 됐습니다.

폭우, 폭설 등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후 위기를 겪다 보면 환경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너무 미약하지 않은가 하는 회의감마저 듭니다. 과연 개인의 노력이 지구를 구해낼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전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요. 그렇게 하는 게 즐겁고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사는 건 기쁘고 행복한 일이죠. 개인적인 차원의 일은 개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원을 보호하기도 하고 훼손하기도 하는 주체는 개인이니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죠. 물론 그와 더불어 정부 차원의 규제와 금지, 기업 차원에서 멈추고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뒷받침돼야 하겠고요.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환경 생태 잡지 <작은것이 아름답다>를 펴내는 동명의 환경 단체에서 살림지기 업무를 담당하다가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때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보고 들으며 배운 게 많았죠. 처음으로 시작한 환경 운동은 녹색연합에 가입해서 후원회비를 내는 거였어요. 2016년 말에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 소송이 받아들여지며 ‘하면 되는구나!’ 하는 희망이 생겨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저를 처음 연대 활동으로 이끈 소송인데 지난해 12월 29일에 법
안이 통과돼버렸어요. 하지만 다시 뒤집힐 거라고 믿습니다.

환경 관련 책 중 가장 동기부여가 된 책은 무엇인가요? 그린 컨퍼런스에서 구입한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라는 책이에요. 원폭 피해를 입은 땅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꿈틀했어요. 제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에 실린 ‘오가닉 코튼 베이브’라는 단편소설은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를 읽고 쓴 독후감이에요.

환경에 대한 관심은 소설가 최정화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이를테면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화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거나(<메모리 익스체인지>), 전염병에 휩싸인 도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흰 도시 이야기>) 등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작가님의 소설에 반영된 거라고 봐도 될까요? 그렇죠. 말씀하신 대로 <흰 도시 이야기>의 땅을 일구는 장면을 구상할 때도 후쿠시마를 떠올렸어요. 작가의 세계관은 소설에 자연스럽게 배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소설의 배경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오가닉 코튼 베이브’처럼 상황을 풍자해서 쓰기도 해요. 또 환경이라는 것이 꼭 자연환경이 아니라 사회 환경일 수도 있어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배경으로 하는 <없는 사람>처럼요. 다양한 차원에서 문제를 실감해요. 우리가, 세계가 병들어 있구나 하는 막연한 감각이기도 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법안이 통과될 때는 ‘아, 안 되는데, 우리가 정말 잘못된 길을 가고 있구나’ 하고 구체적으로 실감하죠.

앞으로 ‘제로 웨이스트’ 연재에 담을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만화의 제목이 <영쩜일 웨이스트>였어요. 제로 웨이스트 말고 영점일은 허용하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너무 강박적이지 않게. 무리하면 포기하게 되니까 중심을 잘 잡아야 해요. 연재를 통해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체험을 나누고 싶어요. 흔히 쓰레기 줄이기의 첫 단계, 가장 쉬운 실천이 거절하기(refuse)라고들 해요. 그런 지침들을 읽지 않았는데 저도 시작은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거였어요. 재사용, 재활용 같은 것은 그다음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이죠. 거기에 없이 살기나 되가져오기 같은 지침을 추가하려고 해요. 열한 달 동안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니까, ‘영쩜일 웨이스트 11계명’ 정도로 생각하면서 하나씩 같이 실천해봤으면 좋겠어요.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환경보호 최정화 에세이 우리가 어제 놓쳐버린 5천2백만 봉지의 거절

그녀는 오랫동안 말없이 듣고 있다가 내게 “사과할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아냐. 다 내 탓이야. 미안해. 다 내가….” 그래도 내가 사과하는 것을 멈추지 않자 그녀의 말은 “사과하지 마”로 바뀌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유정은 내게 거의 애걸하듯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제발 사과하지 마.”_정영수,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중에서

실수로 아기를 떨어뜨려 심한 부상을 입히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던 ‘나’는 아이의 부모에게 사과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호하게 그 말을 듣기를 거절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서술하는 데 전체 12페이지 분량 중 4페이지를 할애한다. 어이없이 일어난 사소한 실수와 그 일이 불러온 거대한 불운, 아무리 사과해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과 어떤 방식으로도 그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 간의 도저히 병렬할 수 없는 입장을 병렬시킨 이 장면은 소설의 클라이맥스다. 부부는 용서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잘못을 용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사과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좀처럼 함께 쓰이지 않을 것 같은 부사와 서술어가 결합한다. 그녀는 ‘애걸하듯’ ‘거절한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거절을 한다. 출근길 집을 나설 때 현관문 앞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떼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오늘 저녁에 양념 치킨을 배달시키라는 권유를 간단히 거절한다. 출근길 거리의 상점마다 내다 놓은 홍보물의 권유를 무심코 거절하고, 얼굴에 복이 많다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손길을 은근슬쩍 거절한다. 도로 위에서는 반갑게 달려오는 다급한 마음들에 클랙슨을 두드려 거절하고, 회의 시간에는 나와 다른 의견들을 추어올리는 척하며 세련되게 거절한다. 식당에서는 입맛에 맞지 않는 반찬을 그냥 거기에 둠으로써 거절하고, 야근하는 중인데 저녁에 술 한잔하자는 친구의 제안을 어쩔 도리 없이 거절한다. 관심 없는 내 마음도 모르고 데이트하자는 용기 어린 제안을 솔직하게 거절하고, 넷플릭스 보고 잘까 망설이다 거절할 새도 없이 잠드는 일상이다.

아니, 아직 잠들어서는 안 되는데, 그건 우리가 미처다 하지 못한 거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다양한 거절의 단계와 양식을 터득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했을 거절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린 거절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숭숭한 꿈을 꾸며 아침에 벌건 눈을 뜨고 찌뿌둥한 어깨를 주무르는 건,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가 미처 하지 못한 거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5천2백만 봉지나.

눈치챈 사람이 있을까? 나는 오늘 하루 적어도 한번 이상은 들려 있다가 15분을 채우지 못하고 내 손을 떠났을 비닐봉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집 안 어느 구석엔가 게으른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듯이 몇 장 더 꿍쳐져 있고, 쓰레기 분리수거 통에는 수십 장이 구겨져 있을 하얗고 검고 투명하고 색색으로 프린트되어 화려하고, 이불을 담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부터 손가락 마디만한 샘플용까지 그 크기마저 가지각색인 비닐봉지들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버리는 비닐봉지의 개수가 하루에 5천2백만 장이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는 비닐봉지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비닐봉지가 발명된 것은 1960년대로 사용된 지는 50년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불과 50년전에는 비닐봉지 없이도 살았다는 얘기다. 내가 원고를 쓰는 이 순간에도 책상 위에는 비닐봉지로 포장된 복사 용지가 눈앞에 보인다. 이렇게 비닐봉지가 도처에 널렸는데, 비닐봉지 없는 세상이 과연 쉽게 올까 싶지만 비닐봉지 없이 사는 나라도 있다. 방글라데시는 더 이상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2002년에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에서는 비닐봉지를 유상으로 판매한 이후 사용률이 85퍼센트나 감소했다. 독일과 노르웨이는 플라스틱 보증금 제도를 시행해서 플라스틱 병 회수율을 90퍼센트 이상으로 높였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기업이 생산하지 않고, 정부가 규제하고 금지하며,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한다면 일회용품과 작별하는 일은 분명히 가능하다.

우리 집 싱크대 옆에는 명태를 말리듯 옷걸이에 넣어 말린 비닐봉지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거절하지 못한 비닐봉지들을 물로 씻어서 말려둔다. 찢어진 비닐은 분리수거 통에 담는다. 엄연히 재활용 표시가 되어 있지만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비닐류 ‘OTHER’들은 집에서 재사용한다. 방마다 하나씩 두고 작은 쓰레기통으로 한 번 더 사용하고 버린다. 외출할 때는 말려둔 비닐봉지 중 두세 장을 챙겨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둔다. 개별 포장하지 않고 과일이나 채소를 직접 골라 담을 수 있도록 판매하는 슈퍼를 이용한다. 슈퍼 한편에 새 비닐봉지가 있지만 가방 속에서 헌 비닐봉지를 꺼내 식재료들을 담는다. 번거로워 보이겠지만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텀블러나 손수건을 챙기는 일처럼 습관이 된다. 전혀 불편하지 않다.

정말로 불편한 것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 때문에 코에 빨대가 끼어 숨을 못 쉬게 된 거북을 대면하는 순간이다. 비닐봉지를 삼킨 고래를, 배 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 하늘을 날아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새들을 만나야 하는 순간이다.

분해되는 데 5백 년에서 1천 년이 걸린다는 비닐봉지 한 장이 실제로 쓰이는 시간은 15분이라고 한다. 꺼내서 잠깐 쓰고 버리기만 하면 되는 15분짜리 편리함은 자유로움이 아니라 편협함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15분 간 편리하고자 땅과 바다, 하늘은 오염되고 이웃 생물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그 병듦과 죽음이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른 존재에게 폐를 끼치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진짜일 리 없다. 내가 편리한 일이 네가 불편해지는 일임을, 내가 편리한 일이 네가 죽는 일임을 기억한다면 편리함이 진짜 자유가 아님을, 눈가리개를 하고 나 자신조차 볼 수 없게 만든 무시무시한 중독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작은 수고들을 곁들인다면 소박한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 행복을 누리는 간단한 방법을 공유하고 싶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일회용품을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텀블러를 갖고 다니자.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거절하자. “플라스틱 컵은 필요 없어요.” 음료 옆에 나란히 놓인 빨대를 카운터에 되돌려주자. 그리고 단호하게 거절하자. “빨대는 쓰지 않을게요.”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인 일회용 물티슈는 얌전히 거절하고 대신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서 수돗물로 손을 씻자. “물티슈는 사용하지 않아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자. 그리고 당당하게 거절하자. “냅킨은 필요 없어요.” 에코백에 채소를 담고 계산을 마친 뒤에는 다회용 장바구니를 꺼내자. 마트에 갈 때는 배낭을 메자. ‘절실하게’ ‘거절하자.’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어제 우리가 놓친 5천2백만 봉지 중 한 봉지의 거절을 하자. 바다 생물들이 해파리나 오징어라고 착각해서 먹고 있다는, 우리가 무심코 버린 비닐봉지 한 장을 그렇게 되가져오자.

 

SOUND BY 제로웨이스트 칼럼 리더, 김성식

4인조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레떼아모르의 김성식이 최정화 작가가 연재 중인 제로웨이스트 에세이의 칼럼 리더가 되어 에세이의 몇몇 문장을 낭독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 삶의 방식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스며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