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여성 인터뷰집 퀴어 논바이너리 페미니스트

 

책을 완성해 출간한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홀가분해요. 제 손을 떠났으니까요. 저의 길고 집요했던 집착에서 벗어나 이 대화들이 드넓은 곳으로 멀리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하게 읽히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은 1990년대생 여성 10명과 주고받은 대화가 실린 인터뷰집입니다. 여성 중에서도 1990년대생과 나눈 대화를 묶은 이유를 듣고 싶어요. 이 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2019년 <마리끌레르> 3월호에서 기획한 ‘90년생 여자 사람’이라는 기사예요. 1990년대생 여성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느낀 지는 오래됐어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변화의 중심에 1990년대생 여성들이 있잖아요. 제가 만난 1990년대생 여성들은 여성주의적 시각뿐 아니라 사회적 목소리, 즉 성소수자, 장애인, 아동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 환경과 동물권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이에 대해 할 말이 서로 많은 거죠. 나아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젊은 창작자들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웠어요. 성공의 과정에 서 있는, 이제 막 자기 역사를 쓰기 시작한 사람이 품은 추진력과 생생한 힘이 참 좋았어요. ‘저 사람의 삶이 참 멋있구나’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나도 저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혹은 ‘저 사람처럼 새롭게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태 살아와 놓고선.(웃음) 인터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잠시라도 움직일 수 있는 일이라면 제겐 1990년대생들과 나눈 대화가 마음을 크게 움직인 거예요.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어떤 이들인가요? 선정한 기준이 있었나요? 배우 이주영, 프로듀서 겸 DJ예지, 뮤지션 황소윤, 작가 김초엽, <문명특급> MC 재재를 비롯해 총 10인의 여성을 인터뷰했어요. 선정 기준이라면 동시대 여자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이었으면 했어요. 이 책이 세대론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20~30대 많은 여성들이 왜 이토록 이들을 사랑하고 지지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새 세대가 어떤 세상을 희망하고 기대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그들이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새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 제목을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이라고 지었어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인가요? 책을 다 쓰고 보니 이 10명의 사람들이 모두 내일로 느껴지는 일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내일 벌어질 일을 반 발자국 앞서 오늘 한다는 점에서 가깝고 구체적인 미래인 내일들이라 부르게 됐어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은 간혹 오직 여성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제목에서 지칭하는 ‘우리’의 범위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이 책은 여성 독자를 위합니다. 아주 극진히 모시고 싶어요.(웃음) 물론 오직 여성 독자만을 위하는 건 아니에요. 바람이 있다면 20대 남자들이 많이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존재를, 그리고 10명과 나눈 대화를 궁금해하는 이들이라면 여자든, 남자든, 퀴어든, 논바이너리든 그 누구라도 저는 다 우리라고 부르고 싶어요.

10인의 인터뷰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본인을 자극한 말이 있다면 무언가요? 패션모델 박서희 인터뷰의 도입부 글이 꽤 길어요. 한 번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패션지가 여성주의 이슈를 다룬 건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때때로 패션지가 여성들에의 ‘꾸밈 노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이 책을 쓰면서도 종종 내가 지금 이 일을 해도 되는지 자격을 의심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때 서희 씨가 한 말이 큰 힘이 됐어요. “내가 100% 옳지 않아도, 신념을 완벽하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더라도 그 가까이에 가보려는 노력은 계속 할 거예요.” 마치 제게 하는 말 같더라고요. 우리가 지금 발 디딘 산업 안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10인의 인터뷰에서 공통 질문이 딱 하나 있었어요. ‘삶 속에서 되고 싶고, 기꺼이 사랑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면요?’ 비관하거나 혐오하는 일이야말로 간편하고 쉽잖아요. 어렵지만 낙관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고쳐 앉아보고,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 공통 질문에 직접 답해본다면요? 번번이 실패하지만 끝내 회복해 털고 일어나는 여자들.

시작의 글 말미에 ‘이들을 통해 이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왔고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무엇을 가졌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는 문장을 적어두었어요. 이 책을 통해 깨달은 ‘나’와 나아가고자 하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10년 넘게 매거진에서 일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이 책을 쓰면서 최소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어떤 태도로 전해야 할지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이 고민한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제가 조금 달라졌고요. 미디어 산업이 급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대화를 ‘읽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튜브나 팟캐스트로도 대화를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는 대화의 속도를 쫓아가야 하잖아요. 하지만 ‘읽는’ 대화는 그 대화의 속도를 읽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매체의 방식은 변화하겠지만 인터뷰를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어요.

이렇게 새로운 사유를 거친 지금, ‘여성’에 관한 또 하나의 책을 쓸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더 너그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랑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