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영화 천막 이란희 감독 해고 노동자 이야기

 

“일 이라는 건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 같다.”

 

단편 영화 천막 이란희 감독 해고 노동자 이야기
해고 노동자의 농성 천막 안. 6년 가까이 농성을 했지만 소송에 패했고, 남은 사람은 겨우 셋뿐이다. 지칠 대로 지친 ‘재복’과 동료들은 짧은 휴가를 다녀오기로 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재복의 농성장 밖 이야기. 단편영화 <천막>에서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그린 이란희 감독은 첫 장편영화로 또 한 번 그들의 삶을 살폈다. 그가 그린 건 해고 노동자의 삶이자, 긴 시간 막막하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다.

 

<휴가>는 한 해고 노동자의 짧은 휴가를 그린 영화다. 내용은 다르지만 이전에도 단편영화 <천막>에서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 시작점에 대해 묻고 싶다. 2012년이었다. 동네 공원에서 40~50대 아저씨들 밴드의 공연을 봤는데, 알고 보니 그분들이 기타 공장의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그래서 밴드를 만들어 자신들의 투쟁을 알리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시작한 것이 <천막>과 첫 장편 <휴가>다.

해고 노동자의 여러 이야기 중 ‘휴가’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농성장 안으로 들어가보는 건 <천막>에서 했기 때문에 다음은 좀 더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농성장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집에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할 테고, 그러면서 사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간 농성 천막을 떠나서 휴가를 다녀오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해고 노동자의 휴가라는 말이 어쩐지 어색하다. 실제로 농성 중에 휴가를 쓰는 경우도 있을까?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취재한 기타 공장 노동자들은 투쟁을 12년 정도 이어온 터라 큰 재판이 끝난 후엔 자체적으로 휴가를 몇 번 다녀오긴 했다.

주인공 재복은 ‘밥’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농성장에서도, 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도 사 먹거나 거르는 법 없이 늘 직접 밥을 해 먹는다. 내가 취재한 기타 공장 노동자들 중에 밥을 하는 분이 있었다. 농성장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밥 먹었느냐고 묻고, 밥을 차려주셨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분을 모티프로 재복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밥과 관련한 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이건 밥줄 끊긴 노동자의 얘기니까 밥을 통해서 관계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마 밥 먹는 장면이 열 번은 나올 거다.(웃음)

재복의 모티프가 된 당사자도 영화를 봤을 텐데, 어떤 감상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촬영을 앞두고는 왜 본인을 캐스팅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분은 영화 후원금을 내준 사람 중 한 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자기 이야기이고, 해고 노동자가 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재복이라는 인물은 오랜 시간 농성을 이어온 것치곤 강경해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도 전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이 없다. 좀 더 강경하고 의지가 굳은 인물로 그리지 않은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복이 농성을 오래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삶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안에서 사실은 보통 사람들처럼 계속 투덜대고 흔들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관객과 가까운 인물이길 바랐다.

그렇지만 결국 재복은 가족과 친구의 만류에도 고집스럽게 휴가를 마치고 다시 농성장으로 향한다. 그게 재복의 유일한 ‘강경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재복은 아마 농성하는 게 피곤하고, 싫고, 떠나고 싶었을 거다. 그렇지만 하기로 한 거고, 끝내기로 한 거니까, 끝나는 순간에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는 내내 재복 역을 맡은 이봉하 배우에게 관심이 갔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필모그래피가 <휴가> 하나던데, 어디서 찾은 배우인가? 단편을 만들 때는 원래 알던 배우나 아마추어 배우와 작업했다. 예를 들어 내가 하는 연극 수업을 수강하는 어르신이나 실제 해고 노동자들을 출연시키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늦게 끝내면서 준비하는 기간이 촉박했고, 그래서 영화를 하면서 난생처음으로 오디션을 치렀다. 그때 온 배우인데, 일단 독립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라 좋았다. 그리고 무섭고 무뚝뚝해 보이는데, 한편으론 귀여워 보이기도 해 캐스팅했다.

촬영하면서 배우에게 특별히 요청하거나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가? 일을 잘해달라고 했다. 집에서 청소하는 장면에선 청소를 잘하셔야 한다, 반찬 만드는 장면이면 반찬을 잘 만드셔야 한다고 말했다. 가사 노동이든 아르바이트든 일하는 모습이 상당히 많은데, 그게 정말로 하는 것 같지 않으면 관객이 믿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계산하지 말고 그 일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렇게 일에 집중하다 보면 뭔가 감정이 생기기도 하니까.

재복에게 일이란 건 어떤 존재일까? 재복한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일이라는 건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해고를 당하는 건 자기라는 사람의 존재가 흔들리는 상황인 거다.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터라 영화를 찍는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기타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이 해고당해 밴드를 만들어서 투쟁하는, 실화에 가까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런데 실화에 기초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어떤 분들에게는 모욕감을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어떤 분은 사실을 왜곡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위험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이야기로 완전히 전환한 거다. 최대한 모티프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가는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그 과정이 가장 어려웠고, 많이 고민한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실화 중심으로 영화를 만드는 뻘짓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쓴 셈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게 완전히 헛고생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관찰해서 영화화할 때 내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동안 창작하면서 나만의 고집이 있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영화로 만들면 가짜 같을 거라는 생각.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상상해서 채우는 상황이 되니까 그걸 열심히 해볼 수밖에 없고, 그리고 그걸 배우들이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 진짜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상상해서 만드는 일에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작업을 통해서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변했다는 말로 들린다. 맞다. 예전에는 보이는 것만 표현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 안에서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마음도 있나? 하하. 영향을 미칠까? 안 미칠 것 같은데. 다만 노동을 키워드로 삼은 영화들이 좀 더 나오는 데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노동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노동을 다룬 영화의 수는 적으니까.

영화를 만드는 것도 노동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로서, 혹은 노동자의 관리자로서 어떤 태도를 취하려 했나? 일단 총 10회차를 찍었는데, 하루 12시간이라는 촬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촬영해서 장편 하나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최대한 현장 사람들이 불필요한 노동으로 지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촬영 전날에는 안 찍어도 되는 컷을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진행 상황을 모든 사람과 공유한 것. 일하면서 힘든 부분 중 하나가 내 일이 지금 전체 체계 안에서 무슨 일인지, 어디쯤 온 일인지 모른 채 소모적으로 일만 하는 거다. 전에 배우로 몇 편의 영화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엄청 많은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종일 기다릴 때가 많았다. 그 상황을 잘 견디는 배우도 많았지만, 나는 소외감이 들고 싫었다. 내 현장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으면 했다. 내 일이 뭔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명확히 알아야 일할 맛이 나지 않나.

다음 작품에서도 노동자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소재로 따졌을 때 노동과 관련된 문제에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쪽은 아닐 거다. 그래도 어떤 앵글이건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은 계속 잡을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천막> 촬영 당시 ‘내가 이 영화를 찍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차라리 농성장에 들어가 목소리를 보태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또다시 <휴가>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언가? 일단 나는 농성장 안으로 들어갈 만한 사람이 못 된다. 그리고 고민스러운 순간은 있었지만 영화를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만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관찰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고, 그래서 관찰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조리 있게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내게 맞는 것 같다.

결국 영화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나? 살다 보면 눈에 들어와서 계속 마음이 쓰이는 어떤 것들이 있지 않나. 거기에 내가 겪은 어떤 순간이 겹쳐지기도 하는 것.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예전에 내가 연극을 하면서 동료들이 쉽게 떠나는 공간에 남아 오랫동안 일을 하며 느낀 감정과 장기 농성을 하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비슷할 것 같았다.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점점 외로워지고, 이게 잘될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해왔던 게 있으니까 계속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서 과거의 내가 보였다. 그렇게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품은 이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분들이 하는 의미 있는 말을 내가 잘 가공해서 들려주는 일 정도로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거지만, 사회적으로는 그 정도쯤이 아닐까 싶다.

관찰자이자 전달자로서 영화를 만들면서 일관되게 잃지 말아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열심히 관찰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그분들에 대해 잘 알진 못한다. 그 점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인물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쓰거나 앵글을 잡지는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런 태도만큼은 견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