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선 감독 영화 십개월

화이트 셔츠 르917(Le 17 Septembre), 팬츠와 이어 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계는 본인 소장품.

 

“어떤 의도나 목적에 맞추어
은근슬쩍 모양을 맞춘 것이 아닌
불균질한 ‘진짜’를 지닌 영화가 좋다.

아프고, 슬프고, 좌절하고, 괴롭고,
혹은 빨리 달릴 때 숨차고 하는 이런 감각의
생동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매체가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영화 십개월 감독 남궁선

결혼도 임신도 생각해본 적 없는, 오직 자기만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온 주인공 ‘미래’. 그가 자신도 모르는 새 덜컥 임신을 했다. 부모님과 남자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결혼과 출산을 얘기하지만, 미래는 이 모든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 임신은 축복이라는데 정말 그런지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막막한데 돌이킬 수도 없다. 그래서 미래는 묻고 또 묻는다. 이 경험 안에서 나아가기 위해,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남궁선 감독은 스스로의 임신 기간에 사유했던 질문의 조각들을 모아 영화 <십개월>을 만들었다. 임신했으면 당연히 엄마가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왜냐고 묻지 못했던 이들을 위해. 막막하고 두려웠던 이들을 위해. 경험할 수 없어서 잘 모른다고만 했던 이들을 위해.

 

영화 <십개월>은 급작스러운 임신으로 시작해 출산으로 가는 ‘10개월’의 여정을 그린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후 만든 작품이라고 들었다. 맞다. 어쩌면 막상 직접 경험하고서야 그것이 수많은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사건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의아했던 건 그 경험의 크기와 보편성에 비해 그 과정을 대중문화에서 온전히 주인공으로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당사자의 눈높이로 그려진 이야기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영화는 임신 이전과 출산 이후를 덜어내고, 제목처럼 딱 10개월의 시간만을 담아냈다. 10개월은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임신한 여성은 그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는다. 청년으로 시작해서 엄마로 끝나는 변이가 흥미로웠고, 그 둘이 분리된 인격이 아닌 동일 인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하나의 선상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주인공 미래는 보통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미래의 이런 질문들은 그동안 안일하게 넘기던 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미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질문들이 당연하다. 자신의 임신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데 중절이 금지되는 근거는 무엇인지, 임신 자체에 관한 책임은 특정하기 어렵지만 임신 중절의 법적 책임은 왜 정확하게 자신을 가리키는지, 그저 자신에게 위협적이고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당연한 질문들을 할 뿐이다. 미래는 프로그래머라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사항은 납득이 될 때까지 질문으로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이게 풀리질 않으니 점점 미궁 속으로…. 하지만 결국 미래의 질문들은 우리 사회가 던지고 대답할 수 있어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며 답을 찾으려 애쓰는 데도 현명한 길을 제시해주는 멘토나 응원을 보내는 이가 없다. 임신한 이후엔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곤 미래 주변의 모든 것이 장애물일 뿐이다. 그게 이 영화의 짖궂은 면이긴 한데, 사실은 많은 임신부들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가까운 설정을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 안에서 미래의 체험을 온전히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부모들은 자신의 방식이 자녀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으며, 남자친구는 자신의 역할만으로도 버겁다. 남성 산부인과 의사는 개인적인 조언을 해주지 못하고, 독신 친구의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의지할 데가 없다. 거기서 느끼는 실제적인 외로움이 이 경험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세상에 사람 하나 더 만드는 건 범죄라고 말하던 미래가 혼란 속에서도 결국 출산을 선택하게 된 데는 어떤 힘이 작용한 걸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걸 온전한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 선택에 의한 임신은 아니었고, 중절이라는 선택 앞에는 장애물이 있었고, 출산이라는 선택 앞에는 불투명한 것들이 많았다. 시원하게 선택했다기보다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화 쪽에 부딪쳐보는 쪽을 택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게 스타트업에도 몸을 던졌던 미래의 성격에 부합하는 것 같다. 그 선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조차 끊임없이 질문하고 부딪치고 경험하면서 마지막까지 놓치 않아야 할 것들을 찾아가는 것이 미래의 힘이 아닐까.

태명을 ‘카오스’로 지어서 그런지,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궁금하다. 미래라면 어떤 이름을 지었을까? 글쎄. 태명을 지을 때 카오스에서 코스모스가 나왔다는 얘기를 했으니 우주라고 지었을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오글거린다고 생각해서 다른 이름을 찾을 것 같기도 하다. 미래라면 ‘네가 나의 우주는 아니지, 너는 너의 우주지. 그런데 우주라고 하면 왠지 나의 우주 같잖아’ 하는 식으로 쓸데없이 고민했을 것 같다.

10개월의 시간 속에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끊임없는 위기의 연속이긴 한데.(웃음) 굳이 꼽자면 후반부에 혼자 남는 장면이 있다. 그 어디에도 도와줄 사람이 없고, 물리적으로도 고립된 채 혼자 누워 있는, 그 상황이 위기의 절정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를 그리면서 맞이한 위기의 순간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미래의 위기 못지 않게 험준한 순간이 있었나? 10개월에 걸쳐 일어난 일을 한 달 만에 찍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첫 촬영을 시작하면서 위기를 감지했고, 이후 매일매일 위기라고 느꼈다.

영화 만들기와 임신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두 과정이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나?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고, 한번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으며 쉴 틈 없이 진행된다는 점. 그 와중에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없어졌다 하지만 막상 끝나면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는 점이 비슷하지 않을까. 또 즐거운 만큼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도.(웃음)

이 영화를 만들면서 현실을 어디까지 반영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십개월>은 굳이 따지자면 ‘현실적인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극화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좀 더 진지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면 훨씬 성숙한 영화가 되긴 했을 텐데, 보기엔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적으로는 일부러 거리를 두거나 팝적인 톤앤매너로 환기하는 방식으로 더 쉽고 편하게 관객이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영화는 임신한 경험이 있는 여성, 없는 여성, 그리고 남성의 감상이 다를 것 같다. 그 분류를 굳이 따지자면 내 일이 될 사람과 내 일이 절대 안 될 사람, 내 일이 될지 안 될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감상은 각자의 몫이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를까 궁금하긴 했다. 지금까지의 느낌으로는 성별을 불문하고 아직 내 일이 아닌 상태로 보는 젊은 분들이 가장 쉽게 몰입하는 것 같고, 역시 성별을 떠나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가 현실에 들어와 자기 문제가 되어 있는 이들은 그보다도 더 복잡한 마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만큼 모두에게 불완전한 현실이 아닐까. 그 현실에 대한 비난을 누군가에게 돌리기보다는 그저 관객이 이 다소 모자란 인물의 열 달을 함께 보낸 마음으로 영화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랐는데, 관객 들 중에서 딱 정확히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 영화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언가? 고군분투해서 만든 첫 장편영화다. 재미있을 것 같고 즐거워서 시작한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들 게 뻔하고, 심지어 약간 하기 싫기조차 했지만 내가 만들어야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종의 과제 같은 영화였다. 그래서 해야 할 과제를 해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어떤 자유를 주는 기분이다. 만약 이 주제를 다루지 않고 다른 활동을 했으면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을 것 같다. 그걸 해소한 기분이 가장 큰 수확이다.

8년 만의 작품이다. 이전과 지금,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동일한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처음엔 영화 작업의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높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것들을 직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철학은 좀 있다. 표현은 좀 웃기지만 어떤 의도나 목적에 맞추어 은근슬쩍 모양을 맞춘 것이 아닌 불균질한 ‘진짜’를 지닌 영화가 좋다. 아프고, 슬프고, 좌절하고, 괴롭고, 혹은 빨리 달릴 때 숨차고 하는 이런 감각의 생동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매체가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관객으로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세계를 설계한다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일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화를 만들며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무엇인가? 그냥 삶의 진실. 그게 뭔진 모르지만, 거기에 대해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해피엔딩을 위해서 거짓말하지 말자. 혹은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엔딩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말자.

<십개월> 다음은 어떤 영화를 생각하고 있나?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상황인데, 어쨌든 다음 작업은 시원한 걸 하고 싶다. 갑갑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웃음)

미래라는 캐릭터가 가진 나름의 시원함은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미래의 상황은 매우 갑갑했으니까. 그래서 조금 시원하고 여기저기 넓고 박진감 있게 돌아다니는 작품을 바란다. 멍청한 애들 많이 나오는 얘기를 했으니까 똑똑한 애들이 좀 나왔으면 좋겠고. 하하. 그런 욕망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