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젊은작가상 소설가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을 썼다.

 

“여자 선생은 아첨하는 기색 하나 없이 당신을 칭찬한다. 당신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건 당신이 아주 오랜만에 듣는 당신에 대한 칭찬이기 때문이다. 원래 피부가 이렇게 좋으세요? 모공이 연예인보다 더 쫀쫀한 것 같아요. 손 모델 하셔도 되겠어요, 손가락도 이쁘시고 네일 바디가 잘 잡혀 있어서. 피부과나 네일 숍에서 듣는 칭찬과 방금 들은 그 칭찬의 다른 점은 가만히 있는 당신의 몸이 아니라 당신이 실제로 방금 해낸 일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 소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중에서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소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서 한 구절을 오늘 낭독하기로 했죠. 어떤 구절을 선택했나요? “피부과나 네일 숍에서 듣는 칭찬과 방금 들은 그 칭찬의 다른 점은 가만히 있는 당신의 몸이 아니라 당신이 실제로 방금 해낸 일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타고난 것들, 그러니까 생김새나 꾸밈새와 관련한 것이 아니라 방금 한 일을 칭찬받는 경험을 오랜만에 하는 가정주부의 심정을 쓴 문장이에요. 소설 제목은 <당신 어머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가 패배하는 소설이에요. 이 장면은 주인공이 승리감을 맛보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인 것 같아서, 그리고 그첫 순간이기도 해서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이 문단이 참 좋았어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듣는 칭찬의 80%는 늘 그런 것들이었으니까요. 가정주부이건 아니건. 그렇죠. 가정주부면 가정주부여서, 대학생이면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벌써 이렇게 허리가 굵으면 어떡해’ ‘벌써 이렇게 머리숱이 적어서 어떡해’ 등 이상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하는 말들이잖아요. 그 기준에 맞으면 칭찬을 듣고, 아니면 욕을 먹고. 그런 것들을 의식하며 쓴 것 같아요.

무엇을 보고 느낄 때 유난히 쓰고 싶어지나요? 어떤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핵심적으로 생각한 장면에 도달할 때 빨리 쓰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그 장면에 도달하려고 더 빨리 쓰는 거죠. 가닥이 잡히면 더 신이 나서 쓰고요. 소설가 전상국 선생님께서 ‘신명에 붙들려서 쓴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원하는 장면에 도달했을 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질문의 의도에 맞는 답변인지는 모르겠어요. 외부적인 자극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너무 많아요. 이상한 말이지만 밥이 맛있어서도 쓰고 싶고, 화가 나서도 쓰고 싶고, 기분이 좋아서도 쓰고 싶어요.

소설을 쓸수록 소설에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나요? 확실히 장편 하나를 쓸 때마다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종종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과 제가 얼마나 닮았는지 물어보실 때가 있어요. 전혀 닮지 않았거든요. 가령 소설 《채공녀 강주룡》에서 ‘주룡’이 하루 종일 한 일을 나열한 다음에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주룡의 기운이나 기세를 저도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쓰기’니까 그렇게 부지런하게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거죠. 소설 《마르타의 일》의 주인공 ‘수아’도 일정과 목표가 딱딱 잡혀 있는 사람인데 저는 많이 흐트러진 사람이거든요. 수아를 보면서 보다 계획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그런 지점들이 생겨요. 쓰는 내내 저와 같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에게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그 정도로 믿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마치 내 방에 살고 있는 룸메이트처럼 느껴져야 독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가 사랑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교집합이 있나요?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등장인물 한 명 정도는 내가 사랑하면서 끝낼 수 있는 이야기.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작가가 끝내 사랑하게 된 인물들이 누군지 궁금해요.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스밀라’,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제루샤 애벗)’,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의 ‘히메가와 아유미’ 정도가 떠오르는데요. 스밀라는 초반부터 엄청나게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단을 읽는 순간 이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된 것 같고, 아마 앞으로도 이 사람을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키다리 아저씨》는 지난해 연말쯤 다시 읽었는데 그 전에는 단순히 고아 소녀가 후원을 받아 대학에 가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30대 작가가 되어서 다시 읽어보니 한 사람의 작가가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더라고요. 주디가 자신의 첫 이야기를 신문사에 팔고 받은 1천 달러를 그대로 아저씨에게 보내면서 드디어 작가가 되었다고, 그동안 후원해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말해요. 그 순간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제가 이 이야기를 10대, 20대, 30대에 걸쳐 읽는 셈인데 읽을 때마다 감흥이 달라요. 지금은 어떤 작가, 특히 여성 작가가 성장하는 이야기로 읽혀서 더 사랑하게 됐죠. 그리고 주디의 명랑함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유리가면》의 히메가와 아유미는 처음에는 진짜 싫어했어요.(웃음) 이야기의 주동인물이 ‘기타지마 마야’이니만큼, 기타지마 마야를 응원하면서 보기 마련이잖아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진짜 재수 없게 나오는데 이 캐릭터의 전사를 고려해보니 오히려 너무 유복하기 때문에 그가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두 사람의 왕녀’ 편 직전에 한 번 나올 텐데 그에 대한 자신의 콤플렉스마저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기타지마 마야를 향한 순정에 가까운 열망.(웃음) 그게 워낙 곧은 인물이어서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결국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이야기가 주는 힘에 대해, 그 막강함에 대해 체감할 때가 있나요? 무엇이 작가를 계속 쓰는 사람으로 머물게 하나요? 이야기가 없는 걸 상상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대상의 매력을 모른 채 소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가령 ‘대부도 포도’라고 하면 짧은 상품명에서도 서사가 나오거든요. 어디서 온포도라는 것,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포도는 사지 않죠. 어떤 브랜드가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 창시되었고, 어떤 디자이너가 만들었고, 어떤 철학을 갖고 디자인해 왔는지가 필요한 건데. 존재하는 이상 서사가 있어야 하고요. 그 서사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갈리는 것뿐이지 서사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죠. 요새 집에 혼자 있다 보니까 계속 넷플릭스를 틀어두거든요. <빅뱅이론> 같은 고전 미드들을 많이 봐요. 왜 우리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을 때 “안사요” 하고 답하잖아요. 영어에도 그 표현을 쓰더라고요. “I don’t buy it”. ‘지금 당신이 하는 말 하나도 안 믿어’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하더라고요. 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믿을 만한 스토리여야 한다는 기조에서 나온 관용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나 서사가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더라고요.

듣다 보니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서사가 있다는 말, 그게 이야기가 지닌 근본적인 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고파는 데 비유를 한 김에 말하자면 예컨대 아이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티브 잡스가 ‘이거 팔리겠어?’하고 만들었다면 누가 사겠어요. 당연히 이게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겠죠. 자기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최고이고 정답이라고 생각해야지 사는 사람도 설득 될 거란 말이에요. 저도 쓸 때만큼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최고의 이야기라고 믿으면서 쓰는 것 같아요. 다 쓰고 나서 독자분들 앞에서 겸손의 태도를 갖는 것과는 별개로.

‘쓰는 당신’이 가진 것 중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물리적으로는 허리고요. 정서적으로는 방금 전 이야기한 스밀라가 그러했듯 아무리 잘돼도 내가 소수자고 패배자였다는 감각은 잊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다고 이 사실에서 피해 의식을 건져 올리겠다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도 춤 신청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과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적어도 무엇은 쓰고 싶지 않나요? 그런 건 딱히 제한을 두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인간의 복잡성을 믿기 때문에 누구나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이해하는 서사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늘 있는데, 그럼에도 절대로 이해해줘서는 안 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아요. 서사적으로는 범죄자들로차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같은 일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에 대해서는 서사로 풀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 서사가 그들의 변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변명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는 주의하고 싶어요.

앞으로 쓰게 될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몇 년째 약을 팔고 있는데.(웃음) 경성 어번 판타지물을 쓰고 있어요. 경성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인데 어번 판타지물이에요. 좀 부담이 되더라고요. 마무리가 잘 안 되는 이야기인데··· 어째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