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지방 광역시, 제주도를 제외한 열두 곳의 지역 축제를 다니며 완성한 책 <전국축제자랑>을 읽기 전까지 ‘K스러움’의 정수가 전국의 지역 축제에 농축돼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처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건가요? 김혼비(이하 김) K적인 것에 대해 늘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싫으면서도 끌리는 때가 있잖아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고요. ‘K스러움’에 대해 파보고 싶었는데 축제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건 축제에는 K가 빛을 발하는 조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지역 축제는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잖아요. 문화적인 것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볼 여력은 안 되지만 어떻게든 이어 붙여야 하고요. 그 가운데 K스러움이 만개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역적 특색, 그리고 나름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은 하
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까지 버무려지고요. 지역 축제에 가면 무조건이겠다고 생각했어요.

K스러움이 만개하는, 대혼란의 축제가 펼쳐지는 가운데 그 속에서 주변인으로 서성이고, 쭈뼛대는 두 분의 모습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돌아보면 미진한 취재력 덕분에 획득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박태하(이하 박) 축제 관계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거나, 열심히 참여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냈다면 그것대로 장점이 있었겠죠. 하지만 저희 성격상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들이 책에 더 담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더 깊이 들어갔다면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쓰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해요. 감정적으로 동화되기 쉬운 사람들이라 한번 빠지면 끝도 없거든요. 안 봐도 왜 그런지 사정을 알 것 같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쵸, 그러셨구나’ 하면서.

그러잖아도 영암왕인문화축제 편에서 ‘우리만 해도 고작 이틀 있었을 뿐인데 누가 왕인에 관심조차 갖지 않으면 괜히 섭섭하다’라고 썼어요. 이틀 만에 동화된.(웃음) 그늘진 것을 못 본 체하지 못하는 두 분의 내적 갈등이 이 책의 주요한 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누군가에게는 잘 알지 못하는 지방의 작은 지역이지만 그곳을 우주와 같은 곳이라 여기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잘 지나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 분투가 결실을 맺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심란해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거죠. 동네에서 누가 봐도 잘 안 될 것 같은 자리에 새 가게가 들어선 걸 볼 때, 심지어 열심히 일하고 계신 걸 볼 때 드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책에도 ‘어쩌려고 그래’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저희한테는 그 마음이 아주 커요. “어쩌려고 그래” 하면서 들썩들썩하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때로는 어설프고, 때로는 키치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혼잡한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우리는 결코 놓을 수 없다’는 문장에 그 심정이 담겨 있는 것 같고요. 쉽게 단죄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두 분이 사랑하는 K, 용납할 수 없는 K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늘 양가적인 마음이 들어요. 단적인 이야기지만 제가 몹시 싫어하는 K 중 하나는 K-오지랖이거든요. 갑자기 훅 들어와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묻는다거나,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느냐, 무슨 일 있느냐, 결혼은 했느냐 같은 질문을 쏟아내는 걸 볼 때 너무 끈적끈적하고 피곤해요. 근데 말 못할 곤경에 처해 있는 누군가를 돕는 건 결국 그런 분들이더라고요. 저는 누가 힘들어 보여도 상대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묻지 않는 게 예의고 배려라고 생각해서 살짝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는 편인데요. 반면에 넓은 오지랖으로 타인에게 쉽게 침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근데 그런 침투가 절망적인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도
움과 온정이 되는 걸 종종 목격하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순간들에요. 그럴 때마다 오지랖이 떠받치는 어떤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박태하 작가님은 어떠세요? 김혼비의 답이 너무 멋있어서 덧붙이면 이상해질 것 같은데요. 감탄하면서 들었어. 진짜 멋있었어.(웃음) 밀양아리랑대축제야말로 K의 정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걸 다 때려넣은 하이테크 스펙터클 개막식은 정말 기괴한데 거기 밀양 시민들이 시민 배우로 1천 명씩이나 지원하신단 말이에요. 행사장 곳곳에는 유학도 있고 독립군도 있고 아랑규수선발대회 같은 싫은 행사들도 뒤엉키고요. 전 이래야 K라고 봐요. 김혼비가 말한 양면성이자 혼종성이죠. 좋은 것만 갖고 있다면 ‘좋은 걸 보고 왔네?’ 했겠지만 우리 마음을 들끓게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그 가운데 짜증 나는 것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걸 품어가면서 꾸역꾸역 봉합해 끌어가는 모습들이 진짜 K스러운 것 같아요. 모든 게 섞여 있고, 애써 분리되지 않는 것 같아요. 따로 생각해봐도 결국 이 지점에서 만나더라고요. 왜 갑자기 울먹여?(웃음)

동화되셨어.(웃음) 개막식 때 저희 옆자리에 앉아서 보던 분들이 눈물이 살짝 맺힌 채 박수를 치시더라고요. ‘우리 밀양이 이런 걸 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어요. 한국이 워낙 국가주의가 세니까 국제 스포츠 경기를 보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자기 고장에 대해 이런 감정을 표출하는 건 요즘 보기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희끼리는 빵 터졌던 장면에서 어떤 분들은 그렇게 계시니까 그건 그것대로 좋으면서도 심란하고.

이런 경험이 거듭되다 보면 유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조심하게 되는 것도, 고려하게 되는 것도 많아질 것 같아요. 어떤 축제 프로그램은 비합리적이고 웃기지만 그걸 즐기는 사람까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어요. 벌교꼬막축제에서 갑자기 신발 던지기를 하면 왜 여기서 저런 걸 하느냐며 웃게 되잖아요. 근데 실제로 참여하면 또 재미있거든요.(웃음)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이건 웃겨서 쓴 건 아니지만 밀양아리랑대축제 편에서 소개한 ‘아랑규수선발대회’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행사지만 독자들이 책을 읽다가 ‘그런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뭐야?’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양양연어축제에서 맨손고기잡기를 하는 분들도 그렇고요.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올랐다”라는 말처럼 어떤 프로그램이 거기에 있으면 참여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프로그램에 더 주목했어요.

결국 이 책에서 웃게 되는 건 이 모든 것이 누구도 웃기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잖아요. 그걸 두 분이 천연덕스럽게 잘 표현하셨고요. 읽다 보면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K-진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도대체 K-진정성 뭘까요?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할 때 우리는 그걸 진정성이 있다고 표현하잖아요. 근데 그걸 ‘무엇을’, ‘어떻게’ 최선을 다할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 K-진정성인 것 같아요. 그저 이것저것 많이 꿰는 데 열심일 게 아니라 왜 꿰지? 어디다 쓰지? 하던 대로 하면 되나? 이건 좀 그렇지 않나? 이런 고민을 하면서 열심히 꿰야 할 텐데, 방향성과 지향점에 대한 고민을 덜한 상태로 그저 열심히만 질주한다고나 할까요? 그게 K-진정성의 특징이 아닐까 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 지향적인 모습, 그로 인해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됩니다. 작은 지역 축제가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예전에 외국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출장을 오면 신기했던 게 있어요. 일본만 해도 출장을 가면 오사카 갔다가 나고야 갔다가 후쿠오카 가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서울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거예요. 주요한 것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까 부산조차도 갈 일이 없는 거죠. 그게 편리하면서도 소름 끼치더라고요. 한국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때 서울과 지방이 함께 발전할 방법을 고민해야 했는데 GDP, OECD 같은 것에 꽂혀서 어떻게든 빠르게 가시적 성과만 내려다 보니 서울에만 집중한 거죠. 그 결과,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확 올라갔잖아요. 외국 사람들도 서울이 아주 멋있다고 하고. 근데 이게 결국 지방은 버리고 간 거거든요. 축제도 결국은 마찬가지예요.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할 때 깊이보다는 시각적인 화려함과 그럴싸한 모양새에 훨씬 치중하는 느낌? 지역 축제들이 이런 요소의 집합체 같아요.

다채롭게 혼란스러워하고 심란해하다 또 실컷 웃다가도 문득문득 낭만적 순간이 빛을 내요. 예를 들어 빗발 떨어지는 소리가 가득한 간이식당 한편에서 무화과 동동주를 마시는 영암의 오후 같은. 두 분이 각자 품고 있는 낭만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리산산청곶감축제 편에 쓴 장면인데요. 정초에 연을 날리는 대회를 본 거예요. 정오 무렵 둘이 강가 자갈밭에 철퍼덕 앉아서 연 날리는 모습을 보는데, 경치도 참 예쁘거든요. 옆에 앉은 김혼비는 실을 보려고 실눈을 뜨고 있고… 그런 순간이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배경 삼아 대금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고요. 마음이 살랑거리는 순간이었어요. 저에게 가장 황홀한 건 책에도 썼지만 밀양아리랑대축제에서 고등학생들이 밀양아리랑을 자기네들 나름대로 고민해 바꿔서 공연하는 장면이었어요.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꽤 많은 학생들이 진지하게 공연에 참가하더라고요. 아리랑을 개사해서 랩을 하고, 반 전체가 밀양아리랑 리믹스 버전에 맞춰 칼군무를 준비하고, 신시사이저를 가지고 나와서 EDM으로 편곡한 아리랑을 들려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다 쭈뼛쭈뼛하면서 무대에 나와요. 여기가 <고등래퍼> 같은 화려한 무대도 아니라서 친구들에게 “대체 그런 데 왜 나가?” 하는 놀림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요. 그런데도 무대에 올랐다는 게 너무 좋았고, 또 잘했어요. 근데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나중에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녹음할 걸 하고 후회되더라고요. 지나가버리면 끝나는 공연이고, 다시 볼 수도 없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어느 순간부터 참 황홀하더라고요.

책까지 출간한 지금, 이제는 무엇이 새롭게 보이고 느껴지나요? 곶감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거나.(웃음) 맞아요. 그런 게 참 큰 것 같아요. 지역 농가에 관심을 더 갖게 됐어요. 직접 주문하기도 하고. 사소하게는 사과 하나를 살 때도 생산지가 안동인지 청송인지 따져보게 되고요. 지방을 보는 눈이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기도 했어요. 막연하게 인구 몇 명, 이런 식으로 인지하던 때와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왔어요. 언론이 지나치게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보도한다는 걸 새삼 느껴요. 태풍 뉴스 전할 때 너무하잖아요. 비껴가서 제주도로 경로가 바뀌었는데 그게 뭐가 다행이야 싶은. 사회적 의제들 역시 수도권과 대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교육 수준을 가진 이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도 눈에 걸리고요. 근데 여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SNS상에 거의 없고, 목소리도 거의 내지 않은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하지 싶죠.

축제를 취재할 목적으로 처음 충남 예산에 갈 때 두 분이 이렇게 변화하게 될 줄 예상했나요? 아니요.(웃음) 첫 출장 때는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신나서 출발했고, 다녀와서도 ‘너무 재밌다, K스럽다’ 하고 좋아했고요. 그러다 의령에서 전환점을 만났어요. 의병 분들을 만나고 코가 꿰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웃음) 이 축제들이 저희를 많이 바꿨어요. 지역 신문사에서 일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지역 신문 채용 공고를 보기도 했고요. 좀 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전주에 지역 이야기를 꾸준히 하시고 책을 내는 강준만 교수님이 계신데 이분을 찾아가 ‘저희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여쭤볼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이쯤 되니 이 책의 부제인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를 쓰다가 정작 가장 진심이 된 건 두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 ‘데’를 띄어 쓰면 ‘이상한 데 진심인’이 되잖아요. 저희가 실제로 이상한 데 진심이기도 했어요. 부제가 정해진 걸 보고 왠지 우리한테 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근데 사실 맞으니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