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7년 동안 알고 지냈다. 긴 시간만큼이나 우리가 꽤 친한 편이라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그와 나에 대해 묻는다면 아주 일방적인 관계라고 설명할 것이다. 나는 계절마다 그에게 찾아와 당시의 감정을 무차별로 쏟아내고 떠나는 쪽이고, 그는 무던히 받아주는 쪽이니까. 나에게 그는 단순한 장소 이상의 거대한 몸집으로 다가오곤 한다. 언제든 떠올려 헤엄칠 수 있는 마음의 바다. 산란한 마음에 격랑의 파도가 쳐도 무심코 나를 내던질 수 있는 바다. 부풀려진 칭찬에 멋쩍어 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주문진은 그런 곳이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가량 달리면 주문진 터미널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깨어나는 감각은 후각이다. 바다를 품은 시골의 아침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빈 거리로 조용히 불어올 때 흐르는 냄새. 어느 곳에서든 그 냄새로 바다를 가늠할 수 있다. 비릿한 짠내. ‘비로소 주문진이구나’ 실감하며 버스 차문을 넘을 땐 크게 숨을 한번 쉬고 바닥에 발을 디딘다.

터미널 뒤쪽으로 난 해안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주문진 항구가 나온다. 산책로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바라보며 걷고 싶은 길을 꼽아보자면 아마 새벽의 항구가 아닐까. 해가 뜨기도 전 캄캄한 어둠이 가득한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침착하면서도 분망한 새벽 항구의 활기에 조금은 기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배들은 하나 둘 정박해 어둠 속에서 생선을 내리고 받으며 그물을 깁는다. 육지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부지런히 어항에 물을 채우는 사람들과 입찰을 나온 장화 차림의 사람들로 분주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그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이크 확성기 입찰 소리에 맞춰 장화 신은 발들이 그물을 깁고 물을 채우며 일제히 움직이는 그런 춤. 나는 항구 가장 끝자리에서 바닥으로 넘친 바닷물이 비추는 일출을 발로 부숨과 동시에 그 춤을 보며 걷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어시장을 구경하다 어느새 밝아진 항구를 뒤로하고 해안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쭉 걸어 올라간다. 영진, 연곡, 사천 바다가 줄지어 나온다. 주문진이 고향이라고 하면 가장 사랑하는 바다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는데, 물론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어느 한 곳도 좋지 않은 구석이 없다. 아무렴 어떤가. 바다는 언제나 양껏 누려도 부족하니 체력이 된다면 바닷길을 따라 이어져있지만 또렷하게 다른 세 바다를 천천히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언뜻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영진 바다에서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내고 방파제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이십여 분 걷다 보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푸르고 드넓은 연곡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그 크기가 너무도 망망해 내 몸이 아주 작게 느껴져 되레 숨이 갑갑하게 차오를 정도다. 모래사장에서 뛰면 꿈에서 뛰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데 아무리 전력을 다해 뛰어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한참을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푸른색보다 더 푸른 빛을 띄는 사천 바다에 도착한다.

사천 바다에 서면 바닷물의 투명함을 참지 못하고 매번 발을 담그고 만다. 세 곳의 바다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이내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나는 그 시간의 바다만큼 아름다운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고요하고 견고하며 푸르고 짙은 바다는 언제나 다른 모양으로 그 시간을 유영한다. 그 앞에서면 늘 그랬듯 가만히 서서 한참을 머물고 싶어진다. 두세 시간을 훌쩍 구경 하다 보면 관광객이 터뜨리는 폭죽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하는데 어느 계절에도 저녁의 바닷가는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 때 아쉬움을 포개고 몸을 움직여 사천 개드릅장칼국수의 장칼국수 한 그릇을 싹 비우면 오늘의 내가 가장 복 받은 인생이라는 얄팍한 만족에 가득 차 결국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머리카락엔 소금기를 이고 옷에는 비린내를 담고 신발에는 모래를 실어 그렇게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