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니푸르의 이마 마켓

 

인도 북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지역 마니푸르(Manipur)의 주도 임팔(Imphal).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어머니 시장’은 다채로운 색감과 매콤한 향미가 뒤섞이며 분주하다. 근처 록탁 호수(Loktak Lake)에서 잡아 올린 살 오른 황금잉어를 차지하기 위해 생선 가판대에 줄지어 선 부인들의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벽부터 집을 나선 이들은 제철 과일과 생선이 즐비한 노점을 둘러보며 최상급 상품을 고르려 애쓴다.

그 옆으로는 온화한 표정의 노파들이 그릇과 대나무 바구니 진열대 뒤에 앉아 자신을 찾아올 몇 안 되는 손님들을 조용히 기다린다. 적극적인 상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탕과 쌀 튀김을 내밀고 농담을 건네며 호객 행위를 한다. 또 다른 상인들은 옆 가게 상인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잠시 앉아서 찐 밥과 생선 튀김으로 요기를 하기도 하고, 쪽잠을 자기도 한다. 본격적인 장사에 나서기 전 상인들은 시장의 수호신이자 부와 일의 운을 관장하는 이마 이모이누를 기리는 사당에 잠시 들러 그날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인도 마니푸르의 이마 마켓

 

미얀마와 인도의 경계에 위치한 평화로운 도시 임팔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마 마켓(Ima Keithel, 마니푸르 현지어로 어‘ 머니 시장’)은 오직 여성들이 관리하고 운영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약 1만 명의 여성들이 음식부터 직물, 칼, 장난감, 종교 물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에서 온 물건들을 판매한다.

이마 시장의 상인들은 각각 자신의 노점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운영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등록을 하고, 후에 자매나 딸 혹은 며느리에게 노점을 물려준다. 물건을 옮기는 몇몇 짐꾼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남자는 이 시장에서 일할 수 없다. 35년간 이곳에서 생선을 팔아온 70세 노파 랄리타 소이밤(Lalita Soibam)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은 항상 여자들이 관리해왔어요. 주변에 남자가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요.” 48세의 바나나 노점상 빅토리아 오이밤(Victoria Oibam)이 덧붙인다. “여기서는 골치 아픈 집안 문제라든가 장사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심지어 수년간 만나지 못한 친구 이야기도 꺼낼 수 있죠. 집에서는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요.”

 

 

이 독특한 시장에서 여성들은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이마의 여성 상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냄으로써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자녀와 남편을 지켜냈다. 이마 여성들의 부상은 16세기 시장이 탄생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 마니푸르는 봉건적 군사 정부가 통치하던 때로, 남성들은 강제 노역을 하거나 이웃 나라인 버마(지금의 미얀마)와 치르는 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이때 홀로 남겨진 여성들은 가정과 어린 자녀, 밭과 시장 등 모든 것을 돌봐야 했다. 마니푸르의 중심에 자리한 임팔의 지역적 특징 덕분에 이마는 잉여 식량을 교환할 수 있는 임시 야외 시장으로 기능했고, 서서히 마니푸르의 경제 중심지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 여성들은 점차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마니푸르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프리요란 잔 싱(Ch. Priyoranjan Singh)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마 시장은 마니푸르 주 전역에서 공수한 상품과 뉴스가 모이고 공유되는 장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역동성이 집약되는 일종의 국민의회가 되었습니다.”

 

인도 마니푸르의 이마 마켓

인도 마니푸르의 이마 마켓

 

이마 시장과 이곳의 어머니들은 오늘날 마니푸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4년, 이마의 여성들은 불에 탄 방갈로를 재건하기 위해 남편의 강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국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시장을 폐쇄했고,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식민 통치를 멈추도록 압박했다. 또 1939년에는 이 지역에서 난 쌀을 인도의 다른 지역으로 팔도록 하는 영국의 정책에 반발해 또다시 군대에 맞섰다. 이때 맨손으로 저항했던 많은 여성이 심각한 부상을 입고 투옥당하기도 했다. 이른바 아니슈바 누필란(The Anishuba Nupilan 또는 제2차 여성전쟁)은 마니푸르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고, 매년 12월 12일 특별 기념관에서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인도 마니푸르의 이마 마켓

인도 마니푸르의 이마 마켓

 

여성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느 화창한 겨울 아침, 한 무리의 정치인이 중앙정부와 회담하기 위해 델리로 향하는 길에 어머니들의 덕담을 들으려 이마 시장에 들른다. 상인들은 장사를 멈추고, 이마 시장 대표들의 연설을 듣기 위해 중앙 출입구에 모인다. 연설 말미에 이르자, 정치인들은 땅에 엎드리고 어머니들은 일어나 주먹을 위로 불끈 쥐어 보이며 응원의 함성을 지른다. 정치인들은 연설이 끝나고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어머니들이 내지르는 기쁨과 저항의 외침 속에서 이렇게 화답한다. “모든 운동의 시발점인 이마 시장 어머니들의 정신을 이어받겠습니다.”

30분 후, 다시 고요가 찾아오고 시장은 일상을 되찾는다. 우아하고 화려한 색감의 전통 의상 파넥(Phanek)을 차려입은 옷감 상인들은 셔츠와 숄 더미 뒤에 앉아 자신들이 파는 제품의 품질이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 연신 자랑을 늘어놓는다. 34세의 젊은 칼파나 차누 아코이잠(Kalpana Chanu Akoijam)은 10년 전 처음 직물 파는 일을 시작했다. 이마 시장은 전통적으로 결혼한 중년 여성들만이 운영해왔는데, 아코이잠은 이 시장에서 일하는 최초의 미혼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자 때문에 자유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룬 것이 자랑스럽고, 결혼하게 되더라도 남편에게는 단 한 푼도 요구하지 않을 거예요. 내 소유의 노점을 갖고 싶은데 아직 팔겠다는 사람이 없네요.” 아코이잠은 단호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는 이마 시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상점과 슈퍼마켓, 은행 같은 시설을 지으려고 시도했다. 이에 이마 시장 어머니들은 몇 주간 대규모 파업을 했고, 이 사태는 마니푸르 전역의 경제 마비로 이어졌다. 2005년 정부가 조정안을 제시하자 어머니들은 시장 부지를 사수하기 위해서 급기야 2년 6개월 동안 시장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직물 상인이자 시장을 운영하는 여러 여성 단체 중 한 곳의 수장인 70세의 라데사나 라즈쿠마리(Radhesana Rajkumari)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밤낮으로 이곳에서 물건을 팔고, 음식을 만들고,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 당시 내 아들과 오빠가 죽었지만 장례식에 가지 않았어요. 이 시장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독립 후 인도연합에 편입되면서 마니푸르는 10년간 인도 군대와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몇몇 반군 단체가 일으킨 전쟁으로 피폐했다. 애꿎은 민간인들이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2004년, 인도 준군사 조직에 의해 체포된 한 젊은 여성 운동가가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총에 맞아 사망 후 시신이 훼손된 채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12명의 벌거벗은 이마 시장 상인들이 막사 앞에서 ‘인도 군사들아, 우리도 강간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마니푸르에서 일어난 역사상 가장 대담한 항거였다. 여성들의 기개에 놀라고 당황한 인도 당국은 도심에서 준군사 조직을 철군하고, 1958년부터 시행해온 임팔의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마의 상인들과 지역 경찰의 관계는 크게 개선되었다. “나는 수시로 이마의 상인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종종 범죄 예방과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단서를 제공해주었어요.” 시 경찰청장 K. 찬드라셰카르 싱(K. Chandrashekhar Singh)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마 상인들의 자발적 단체인 메이라 파이비(Meira Paibi 혹은 여성 횃불 전달자)는 마약과 알코올, 가정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밤거리를 순찰하고 다녔다. 또한 캠페인을 통해 지역사회를 통합하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던 불안한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마니푸르는 평안을 찾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군사 활동이 줄어들면서 점차 관광객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마 시장이 마니푸르의 주요 명소 중 하나로 꼽히면서 지방정부는 마니푸르를 외부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이마 시장은 이대로 유지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마 시장만의 독특한 특성을 보존해야 합니다.” 마니푸르의 주지사 나즈마 헵툴라(Najma Heptulla) 박사는 이같이 선언했다. 임팔의 골짜기에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이마 시장 상인들은 금속 상자에 남은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으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현재 중앙정부에 맞서 또 다른 시위가 진행 중이다. 불을 붙인 수천 개의 촛불이 시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