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이라 말해보면 어떨까? 부산 연제구에 위치한 망미주공아파트는 내가 6살 때부터 10살까지 산, 유년 시절의 동네다. 여름이면 아파트 단지 내 아무 나무나 붙잡고 흔들어도 하늘소가 열매처럼 떨어졌고, 귀여운 거북이와 무서운 잉어가 모여 사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으며, 뒤편 개울가에는 도롱뇽이 살 만큼 자연 친화적인 동네다. 10년 전쯤 이 아파트가 유명세를 탄 적이 있는데, ‘테라스동’ 덕분이다. 테라스동은 다른 복도식 동과 달리 작은 산의 경사면에 단독주택이 줄지어 지은 형태로, 윗집의 마당이 아랫집의 옥상이 되는 신기한 구조다. 다시 검색해보니, 망미주공아파트의 테라스동은 국내 아파트를 통틀어 매우 희귀한 형태라나?

친구와 함께 연제구를 다시 여행한다면, 당연히 하늘소가 떨어지던 나무부터 흔들어볼 것이고, 이후 동네를 거닐며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어린 시절 한창 뛰놀다 배꼽시계가 울리면 무턱대고 찾아가 밥 달라고 떼쓰던 당시 친구 승호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개미기사식당에 가서 돼지불백과 김치찌개를 시켜 먹을 것이다. 지금은 ‘뉴트로’나 ‘숨은 동네 맛집’이라는 말로 꽤 유명해진 것 같던데, 개미기사식당은 3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을 뿐, 숨은 적 없이 늘 같은 음식을 팔았고, 연제구의 역사를 함께한 맛집이다. 가격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6천 원에 돼지 불백은 물론 흰 쌀밥과 반찬을 맘껏 더 먹을 수 있다는 건 보기 드문 호사가 아닐까? 기사 식당은 택시 기사들만 찾는 식당이 아니라, 장기간 운행이 일상인 기사들이 자주 찾을 만큼 맛있는 음식을 파는 집이라는 걸 개미기사식당의 음식을 맛보면 알 수 있다.

한껏 배를 채운 뒤에는 소화시킬 겸, 종종걸음으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추억을 늘어놓는 것도 좋은 여행일 것이다. “저 빌라에 살던 친구의 누나는 예쁘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 했어, 저 아파트에 살던 친구는 가수가 될 거라 큰소리 뻥뻥 쳤는데, 그게 어찌나 웃기던지 코미디언이 되면 대성할 친구였지.” 그렇게 연제구민 최고의 산책로인 수영강을 거닐다, 요즘 동네 감각 있는 젊은이들이 차린 망미동 인근 ‘망리단길’에 위치한 귀여운 카페를 골라 커피 한 잔 마시며 부쩍 달라진 동네를 보며 세월을 체감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 아닐까.

그러다 해질녘 쯤, 다시 허기질 때가 오면 친구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연산역 앞 연제구의 명물 파라다이스 떡볶이. 지도 앱에는 간판에 쓰인 것과 달리 ‘떡볶이 천국’으로 나오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천국’을 찾아가는 게 쉬울 리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이 분식집의 메인 메뉴는 떡볶이 덮밥과 떡볶이, 오뎅 그리고 김밥이다. 이 가게의 특별함은 떡볶이에 당면을 한 움큼 넣어 볶아준다는 것과 중식 볶음밥에 떡볶이 덮밥처럼 맛볼 수 있다는 것. 그 황홀한 떡볶이 맛을 묘사하자면, 홍시처럼 빨간 소스에, 만만하게 달지만 먹다 보면 은은한 매운맛이 느껴지는 깊은 맛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떡볶이가 1인분에 2천 원이라는 것.

일반적으로 부산 여행을 떠올리면, 호캉스를 누리거나, 한밤에 광안대교를 마주하거나, 해운대 회센터를 가거나, 영화의 전당을 누비는 것처럼 명소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제구를 여행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뻔한 거리를 거닐고, 익숙한 음식을 먹는 것과는 다른 새로움이 있을 것이다. 연제구는 오래된 망미주공아파트 단지 특유의 정취와 변하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식당 그리고 젊은이들이 만든 거리가 공존하는 값진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