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을 것이 충분한데 다른 생명체의 것까지 탐내지 말자.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만들자. 남아서 버리는 음식, 내가 구하러 가자!

마사후미와 어떤 식으로 식사했더라, 하고 빵에 잼을 바르면서 생각해보 았지만, 아득히 먼 기억처럼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식탁에는 무엇이 차려져 있었는지. 아침 식사를 차렸 던 기억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침 식사와 함께 도시락을 만들었던 시기 도 있었다. 겨울, 아직 어두운 주방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요리 순서를 생 각하며 다급하게 달걀을 굽고 채소를 볶았다. 겨우 떠올린 그 광경도 남 의 일처럼 아련했다. 그리고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 자신과 그런 생 활이. 가쿠다 미쓰요, <종이달> 중에서

 

마사후미와 어떤 식으로 식사했더라, 하고 빵에 잼을 바르면서 생각해보았지만, 아득히 먼 기억처럼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식탁에는 무엇이 차려져 있었는지. 아침 식사를 차렸던 기억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침 식사와 함께 도시락을 만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겨울, 아직 어두운 주방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요리 순서를 생각하며 다급하게 달걀을 굽고 채소를 볶았다. 겨우 떠올린 그 광경도 남의 일처럼 아련했다. 그리고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 자신과 그런 생활이. – 가쿠다 미쓰요, <종이달> 중에서

 

‘리카’와 내연남 ‘고타’가 호텔 룸서비스로 주문한 미국식 아침을 먹고 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쿡쿡 웃음이 터지는 즐거운 조찬이다. 남편 ‘마사후미’와 함께 식사하던 시간은 떠오르지 않는다. 혼자서 요리하던 순간만을 겨우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감정이입은 좀처럼 되지 않는다.

<종이달>은 은행에서 시간제 사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주부가 공금을 횡령하게 되는 이야기다. 리카는 은행에서 빼돌린 돈을 전부 젊은 애인 고타와 사귀는 데 쓴다. 위 내용은 고급 호텔에서 고타와 식사하는 장면. 리카는 점차 허황된 세계로 빠져들고, 횡령 사실을 들켜 외국으로 도피한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 돈이 아닌 것을 쓰고, 자기 사람이 아닌 사람과 만나며, 자기가 아닌 생활을 만끽하는 어리석음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리카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일본에서 종이달은 사진관에 만들어 달아놓은 가짜 달로, 그 아래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는 제목을 단 이 소설은, 리카와 고타의 거짓말과 횡령으로 가능했던 연애담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이 상황에서 리카는 그런 자신이 남 같다고 느끼지 않고, 실제 자신을 남처럼 느꼈다고 고백한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가 싶으면서도 리카를 비난할 수 없는 마음은, 그게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 행복을 느끼는 법을 잊어버리고, 지금 자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게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식사 장면을 묘사한 글로 시작한 건 음식물 쓰레기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과정이다. 음식물 쓰레기,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버리는 것이 가장 환경에 이로울까?

일단 불필요한 구매를 줄인다. 아깝게 버리는 음식이 없도록 적절한 양을 사는 것이 관건. 냉장고에서 자주 썩는 음식이 있다면 구매량을 조절한다. 로컬 푸드를 먹는 것도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되도록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구매하고, 택배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보다는 직접 가서 산다. 같은 음식이라면 포장이 덜 된 것을 고른다.

저장법도 다양하게. 냉장과 냉동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무조건 냉장고에 넣기보다는 음식에 알맞은 저장 방법을 찾는다. 곡류와 견과류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오히려 발암 물질을 생성한다. 과일 상자에 신문지를 깔고 감자나 고구마, 양파를 담아 베란다에 둔다. 그늘지고 바람이 잘 들면 오케이. 냉장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냉장고 청소를 자주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음식이 10% 증가하면 전기 소비량도 3.5% 늘어난다. 냉장고를 적절히 비우면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

음식은 되도록 남기지 않는다. 외식할 때는 용기를 가지고 가서 남은 음식을 싸서 온다. 반찬 만들기 귀찮은 날에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나는 카레를 만들 때 소스는 소스대로 따로 만들고 채소는 먹을 때마다 한 번 먹을 양만 따로 굽거나 볶는다. 이렇게 하는 편이 음식을 덜 낭비할 수 있다. 음식을 덜 남기기 위한 조리법을 개발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음식물 생산량은 40억 톤인데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16억 톤이다. 버려지는 음식이 16억 톤이라는데 인류의 4분의 1은 굶고 있다. 내가 못 먹을 것 같은 음식을 이웃과 나누는 건 어떨까? ‘내가 음식을 구하러 갈게’ 는 독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푸드 셰어링(food sharing) 프로젝트다. 빵집이나 슈퍼마켓, 식당에서 팔고 남은 음식을 나누는 이 프로젝트는 2012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2천5백 회 이상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과 영국에서는 앱을 이용해 어떤 레스토랑에서 남은 음식을 싸게 파는지 소비자에게 알려준다. 뉴욕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박람회를 열어 쓰레기 처리 기술을 소개하고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 요리 대회를 연다. 보스턴에서는 팔리지 않은 음식을 노숙자와 빈곤층에게 나눠 주어 매달 14 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

그래도 남는 음식은 어떻게 할까? 나는 집에서 썩히기를 시도해보았 다. 화분에 흙을 담고 음식물을 묻어 베란다에 두었다. 파리가 꼬이지 않 도록 양파 망으로 덮고 창가에 두어 볕도 쐬어주었다. 구더기가 생기는 바람에 포기했는데, 등산 갔을 때 과일 껍질을 새 먹으라고 던져두고 오던 생각이 나서 음식물을 산에 묻으면 어떨까 싶어졌다.

음식물 쓰레기와 삽을 들고 근처 산으로 갔다. 혼자 살아서 음식물 쓰레기 양이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과일이나 채소 껍질처럼 썩혀도 무방한 것이라 굳이 비닐봉투에 담아 수거할 필요 없이 산에 묻는 쪽이 환경에 더 이롭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삽질을 하는 게 좀 힘들었지만 다 묻고 나면 뿌듯했다. 흙투성이가 된 손을 약수터에서 씻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쓰레기를 담았던 봉투에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담아 왔다. 봉지를 채우는 데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세상에, 몇 걸음 걷지 않아 봉투는 금세 불룩해졌다. 평소 등산을 갈 때는 푸른 나무 이파리와 가지 각색 꽃들이 눈에 들어오고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반가운 새소리가 들렸는데, 집게와 봉투를 들고 돌아본 산의 구석구석은 비닐 조각, 휴지, 깨진 그릇투성이였다. 산에 쓰레기를 묻고, 산의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일을 꾸준히 계속할 작정이었다.

산에 쓰레기 묻는 일을 그만둔 건 몇 달 전, ‘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본 뒤다. 표지판이 원래 있었는지 새로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제야 보았다. 그동안 내가 쓰레기를 산에 무단으로 투기해 왔다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발각되어 벌금을 물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후로는 다시 음식물 쓰레기를 규격 봉투에 담아 내놓게 되었지만, 내 손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미 상해버린 음식물이 재활용된다는 사실이 찜찜했다. 그대로 바다에 버려서 물고기들이 먹거나 재활용해서 가축의 사료로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런 걸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래도 되는 걸까, 싶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퇴비화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글을 포스팅해 읽었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내가 썩히기에 실패한 이유는음식물을 말리지 않아 수분 조절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서 다시 도전 해보는 중이다. 내가 만든 것은 우여곡절 실패담뿐이고 퇴비함 만들기를 다시 시작한 지는 몇 주 안 지났으니, 이달에는 친구의 성공담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준비물은 스티로폼 상자 2개. 하나에는 음식물을 바로 넣어두고, 다른 하나는 본격적으로 퇴비로 숙성시키는 데 사용한다. 음식물을 상자에 넣기 전에 물기가 많은 음식은 채반에 밭쳐 말려두는 것이 좋다. 흙과 음식물을 3:1의 비율로 넣어 뚜껑을 닫아두고 하루에 한 번 정도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젓는다. 2주 후 다른 퇴비함으로 옮기고 기존 퇴비함에는 새로운 음식물을 넣어 다시 숙성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퇴비함에 먼지를 넣어두면 잘 썩고, 낙엽을 함께 썩히면 훌륭한 퇴비가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흙과 섞으면 냄새가 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퇴비함은 입구가 넓은 게 좋다.

중국의 한 농업과학 기술 회사에서는 바퀴벌레를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다. 건물의 1층에서 40억 마리의 바퀴벌레가 하루 2백 톤의 음식물을 먹고, 죽은 바퀴벌레와 알들은 퇴비화해서 2층의 스마트 팜에 뿌린다. (나는 바퀴벌레에 대한 편견 때문에 관련 글과 사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실제로 이곳 농장의 상품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한다.)

그게 어떤 쓰레기건, 일단 내놓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원칙에 의거해 되도록 음식을 버리지 않는다. 일단 음식을 많이 하기보다 조금 모자라다 싶게 만든다. 쓰레기 문제가 아니어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정도를 넘는 양을 먹었을 때보다 조금 아쉬운 듯이 먹었을 때 더 맛있다고 느낀다. 최근에 본 한 다큐멘터리에서 과일이나 채소의 영양소가 대부분 껍질에 많다고 해서 슬슬 껍질 먹기를 시도하고 있다. 감이나 참외는 껍질째 먹어보니 맛과 식감이 색다르고 좋았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마음이 너그러운 날에는 쇼핑을 할 때 일부러 상품 가치가 떨어진 것을 고르기도 한다.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매립과 소각 중 나는 매립이 더 친환경적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개팅조차 하지 않는 나는 (그래서 10년 째 혼자) 음식물 쓰레기도 자연스럽게 땅에서 썩히는 게 지구에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은 엄청난 착각) 쓰레기를 소각하면 쓰레기의 양은 97%까지 줄어든다. 소각재는 공사할 때 바닥재로 재활용할 수 있고, 소각할 때 발생하는 열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소각률은 5.6%로 매우 낮다. 덴마크는 53%, 일본은 80% 이상이라는데, 왜 우리는 소각하지 않는 것일까? 주민들이 소각장 건립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소각장이 생기면 아무래도 지역 이미지에 좋을 리 없으니, 소각장을 세우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가 보다. 일본에서는 소각장을 설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 슬슬 그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은 가장 슬픈 소식은 물범이 펭귄을 잡아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범의 먹이가 되는 크릴새우를 인간들이 어획해가니, 순하디순한 물 범이 펭귄을 공격해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크릴새우를 먹거나 바르지 않아도 됩니다. 크릴새우에 있는 오메가-3는 우리가 이미 먹고 있는 김이나 미역에 충분히 있습니다.” 남극의 한 과학자가 전한 메시지다. 우리가 먹을 것이 충분한데 물범의 것까지 탐내지 말자.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만들자. 남아 버리는 음식, 내가 구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