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물들을 위해 대체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모르겠다면 새로운 버전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지구를 살리는 만트라를 기억하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만트라 제로 웨이스트

나는 조명이 어두운 공간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카페나 음식점의 인테리어는 블랙 계열의 약간 차가운 느낌에 널찍하고 천장이 높은 곳,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이 좋다. 좋아하는 소설들도 블루 계열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존 치버,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와 필립 K. 딕의소설들에 깊이 매료되었다. 약간의 신경증적 요소와 착란 상태도 즐기는 편이다.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는 대체로 극단적이다. 상황을 극한으로 끌고 가 독자에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고 사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수용소 도시>는 밸러드가 그린 도시의 미래다. 고층 건물이 사방으로 펼쳐진 형태다. 이 도시는 수용소를 닮아 있다. 바깥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가 사방으로 아무런 한계 없이 뻗어 있는’ 도시 지옥, ‘3000층을 올라가는데 10분밖에 안 걸리는’ 초고층 건물 지옥이다. 화학과 대학생인 M은 비행 기계를 만들기 위해 자유로운 공간을 찾으려 하지만 범죄자나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 뿐이다.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의 사람들은 사방이 트인 공간을 상상하지 못한다. 미래의 도시에서 과학의 임무는 ‘존재하는 지식을 보완하고, 과거의 발견을 체계화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도시 바깥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도시 바깥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도시에 인간이 사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있는 도시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현준의 <공간의 미래>에 따르면 도시화 비율이 80% 이상이면 도시화가 완성된 거라고 한다. 한국의 도시화 비율은 91%라고 하니,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는 셈이다. 유현준은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완성을 넘어선 단계이며, 지난 50년간 녹지를 택지로 만드는 일을 했다면 이제 택지를 녹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 마을을 아파트 단지로 바꿀 게 아니라 자연녹지를 회복할 단계라는 것이다. 인구가 밀집한 지역과 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곳을 분명히 나누어 개발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주변을 둘러싼 벽과 바깥 거리의 불빛을 가리켰다.
“이 모든 건 우리가 만든 거잖아요.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은 바로 이거겠죠.
우리가 건설하기 전에 이곳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항상 이곳에 있었다네.” 의사가 말했다.
“벽돌이나 대들보 하나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같은 구조체가 존재했다는 걸세.
자네도 시간에 시작이나 끝이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고 있겠지. 도시 또한 시간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고, 그만큼 오래 계속될걸세.”
“누군가 첫 벽돌을 놓은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M이 주장했다.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요.”
“미신일세. 그런 걸 믿는 건 과학자들뿐이고, 심지어 그들조차도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 (…)”

–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수용소 도시> 중에 –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6월 8일부터 8월 8일까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라는 전시가 열린다. 전시는 총 3개의 집으로 구성된다. ‘비극의 오이코스’에서는 기후 위기로 죽어가는 지구의 생태계를, ‘집의 체계: 짓는 집-부수는 집’에서는 살림집과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사물의 생애 주기를, ‘B-플렉스’에서는 벌, 새, 나비들의 생존을 돕는 집을 전시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전시는 인간의 살림집으로 인한 쓰레기들을 부유하는 영상으로 흘려보내는 거대한 화면이다. 세계 탄소 배출량의 40%가 건설 산업에서 발생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전자 제품들, 또 집에서 내보낸 일회용 플라스틱들을 그곳에서 만나는 기분은 전시장에 놓인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대로 내놓은 듯 얼굴을 달아오르
게 만들었다. 인간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가,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편하게 해주는 발달된 문명이 다른 생물들에게는 죽음을 뜻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가장 덜 신경을 쓰는 것도 물이다.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물을 펑펑 틀어놓고 샤워하는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았고, 버튼만 내리면 쉽게 오물을 버릴 수 있는데 변기를 개조해서 하수구 오염을 줄이는 실천을 시도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수처리 시설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저녁마다 집 앞에 쌓여 있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바로바로 그 부피와 질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물을 통해 흘려 보내는 쓰레기들은 보이지 않는 곳, 땅 아래로 깊숙이 흘러들어갔다. 내가 얼마큼 버렸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최초의 하수구가 설치된 곳은 1880년의 미국이라고 한다. 이때는 오물을 정화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미시시피강으로 흘려보냈다. 그 결과 1926년에는 근방의 하류 64km 내의 물고기가 모두 죽고 단 세 마리만이 살아남았다. 이후 하수처리 시설이 가동되기 시작한 게 1938년의 일이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물을 아끼기 위해 처음 실천한 건 화학제품 쓰지 않기와 세숫대야 사용이다. 세정을 위한 화학제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 집에는 세탁기가 없다. 빨래는 과탄산수소를 섞은 물에 담갔다가 모두 손빨래를 하고, 청소할 때는 세제 대신 EM 용액을 사용한다. 10분의 1, 1백 분의 1로 희석해서 각각 설거지와 걸레질을 할 때 사용한다. 미생물을 이용한 EM 용액으로 청소를 하면 청소한 뒤에도 미생물의 작용으로 살균 효과가 지속된다고 한다. 탈취 효과도 상당하다.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기 때문에 아로마 오일 같은 향 제품을 사용할 수 없는데(인간에게는 위안이 되는 이 향기가 고양이에게는 악취고, 간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EM 용액을 뿌리면 다른 향이 덧씌워지는 게 아니라 냄새가 사라진다. EM 용액은 마을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나누어 주니 인근 주민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날짜를 알아두자. 비누는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방산시장에 가면 솝 누들을 1kg에 6천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솝 누들로 비누를 만드는 방법은 똥손이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정제수와 섞어서 밀가루 반죽을 하는 것처럼 조물락거려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굳히면 끝이다. 아로마 오일을 떨어뜨려 향을 첨가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다. 나는 쓰고 난 종이컵을 모아두었다가 솝 누들을 붓고, 먹다 남은 맥주를 섞어 젓가락으로 휘젓는다. 솝 누들이 적당히 녹으면 꾹꾹 누른 다음 종이컵 윗부분을 접어서 입구를 잘 닫는다. 그늘에 2~3일 뒀다가 딱딱하게 굳었을 때 종이를 벗겨내면 완성된다. 전혀 어렵지 않다. 나는 거품이 잘 난다는 이유로 맥주를 선호하는데 맥주가 없을 때는 화이트 와인으로도 만들었고 소주나 청주로도 가능하다. 소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부가 곱고, 맥주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머릿결이 풍성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먹고 남은 술은 비누 제조를 위해 빈 스파게티 소스 병에 담아두자. 그 비누로 손도 씻고 세수도 하고 샤워도 목욕도 한다.

머리는 베이킹파우더로 감고 린스 대신 식초 탄 물을 사용한다. 물과 식초를 9:1 비율로 섞어서 분무했다가 씻어낸다. 로즈메리를 식초에 담갔다가 사용하면 더 향긋한 린스가 된다. 손을 씻거나 세수할 때는 대야를 사용한다. 수도꼭지를 틀어두고 그냥 흘려보내는 물을 절약할 수 있다. 귀차니즘 때문에 그냥 수도꼭지를 트는 일을 줄이기 위해 좋아하는 소재인 나무로 된 대야를 사용하고 있다. 나무의 촉감을 즐길 수 있어 한 번이라도 손이 더 간다.

집에서 사용하는 사물의 생애 주기를 늘이는 요령은 신제품의 유혹을 견디는 것이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바다로 뛰어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오디세우스처럼 더 좋아진 신상품을 보면서도 사지 않고 참는 것이다. 나는 10년 이상 된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는데, 최신 제품과 비교하면 청소기가 아니라 골동품처럼 보인다. 이쯤이면 디자인이 멋지고 사양이 훨씬 좋아진 새 제품으로 바꿀 때가 되었는데 싶지만, 청소기는 여전히 쓰레기를 빨아들이는 제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최신형 청소기는 ‘내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새로 나온 청소기가 눈에 아른거리지만(게다가 가격대도 낮아서 사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아니다, 아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냉장고는 사용하지 않는다. 친구가 쓰던 냉장고를 받기로 했는데 그 일이 미뤄지는 바람에 한동안 냉장고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별로 불편하지 않아서 계속 그렇게 살게 되었다. 소음에 민감한 편인데 냉장고의 소음을 듣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몸이 편안해하는 걸 느꼈다. 그렇게 5년째 냉장고 없이 살고 있다. 따로 저장하지 않고 그날 먹을 분량을 사서 그날 먹을 양만큼 요리해 먹는다. 그날 먹을 양식만 걱정해도 된다는 사실은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미래에 대한 불필요한 염려가 사라지고 그저 오늘을 즐기게 된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고 제습기도 없다. 다양한 제습기를 직접 만들어보았다. 솔방울, 숯, 베이킹파우더, 소금…, 이 중 가장 효율이 높았던 제습 방법은 얼음을 이용한 경우였다. 페트병에 얼음을 얼린다. 넓은 그릇을 받치고 망을 올리고 그 위에 얼린 페트병을 올려둔다. 그러면 페트병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그릇에 흘러내리기 시작하는데 상당한 양의 제습이 가능하다.

꼭 냉장고가 아니더라도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굳이 가지느라 불편하진 않은지 체크해보자. 내려놓는 만큼 집은 더 넓어진다. 지난달에는 식기건조대를 포기했다는 에세이를 읽고 이거다 싶어 시도해보았다. 식기를 건조하지 않고 바로 행주로 닦으면 오케이. 싱크대를 이전보다 1,5배 더 넓게 쓸 수 있어 오히려 더 편하다. 기존 제품들이 내게 꼭 필요한지 반문하라. 당신은 더 넓은 공간에서 여유로워질 것이다.

물 다음으로 인간이 많이 소비하는 것은 콘크리트로, 매년 1백억 톤이 생산된다고 한다. 인간은 콘크리트로 된 건물에서 태어나 콘크리트로 된 집에서 살다가 콘크리트로 된 길을 걷고, 콘크리트로 된 다리를 건너 콘크리트로 된 또 다른 건물로 이동한다. 콘트리트는 제조 과정에서 전 세계 공업용수의 10%를 사용하고,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8%를 차지하며, 먼지로 인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태양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동안 열섬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건축 쓰레기의 양은 상당하다. 1996년 하루 평균 2만8천4백25톤, 2000년 7만8천7백77톤, 2004년 14만8천4백89톤, 2013년 18만8천4백89톤으로 급속도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 폐기물의 주된 구성 물질인 시멘트에 함유된 중금속 가운데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6가크롬은 암을 일으킨다. 알레르기와 피부염을 유발하고 아토피성 질환을 악화시키며 장기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2023년이면 골재 자원은 고갈된다.

그 와중에 버려진 화물 컨테이너로 집을 짓는다는 발상이 반갑다. 스위스의 프라이탁 플래그십 스토어, 프랑스의 대학교 기숙사, 대만의 스타벅스가 그 시작이다. 한국에도 SJ 쿤스트할레(예술가들의 활동 공간), 건대의 커먼그라운드, 서울숲 언더스탠드에비뉴가 폐컨테이너를 이용한 복합 공간들이다.

인간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다른 생물들에게 끼치는 폐해는 이미 투 머치다. 우리 삶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못되었다고 하니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신상품 구매를 멈추는 일부터 시작하자. 최신 전자 제품이 당신을 유혹할 때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슬슬 골동품을 닮아가는 구 버전의 사물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기억하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지구를 살리는 만트라를 기억하자.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