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오 남매가 북적이던 우리 가족의 식사 시간은 언제나 치열했다. 음식을 경쟁하듯이 먹으며 자란 나는 밥에 진심인 아이였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날, 맛있는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가면 확실히 괜찮아졌다. 그러다 보니 퉁퉁한 몸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실용 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내 몸무게는 83kg에 달했다.

어느 날 살을 빼겠다고 마음먹는 계기가 생겼다. 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은 스스로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주 실망을 안겼다. 그 어떤 시작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음식을 그토록 좋아하던 내가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병행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kg을 감량한 순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마음 덕분에,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새롭게 푹 빠진 음식이 생겼다. 소곱창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고등학생이 즐겨 먹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소곱창을 배불리, 더 자주 먹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접 번 돈으로 소곱창을 마음껏 먹을 때 차오르는 행복감이 좋았다. 그 감정은 ‘내 음악으로 돈을 벌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게 내 음악 작업의 또 다른 동력이 되어주었다. 처음으로 소소하게나마 저작권료를 받은 날, 가족들과 고깃집에서 함께 식사하며 느낀 행복감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요즘 내 하루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야 시작된다. 자취 3년 차인 나와 매일 아침저녁으로 통화하는 아버지는 항상 내게 묻는다. “밥은?”, “왜 안 먹었니.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해.” 이 말이 난로보다 더 따뜻하고 친근하다는 것을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바삐 지내다 보면 가끔씩 집밥이 생각난다. 단출하지만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으로 채운 우리 집 밥상이 그립다. 시간을 내어 본가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나를 위한 찌개를 끓여놓으신다. 찌개의 종류는 그날그날 냉장고에 있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어릴 땐 정체성을 잃은 음식이라 여겼던 그 찌개를 먹으며 위로를 받는다. 난 어느새 아버지를 닮은 어른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첫인사나 안부 인사로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예전에는 힘들게 답했지만, 지금은 내 대답을 안다. 흰쌀밥 같은 가수. 담백해서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언제 어디서든 맛있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하는 사람. 그렇게 내 목소리가, 나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행복이 된다면 좋겠다. 그럴수 있도록, 오늘도 맛있게 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그 시작은 내게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범진 싱어송라이터

 

타로의 죽음 카드에는 해골만 남은 기사가 하얀 말을 타고 등장해 죽음을 고하고 있고,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로 황금빛 태양이 떠오른다. 타로에서 죽음은 끝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무언가를 새롭게 덧붙이고 싶은 순간보다, 무언가를 끝내고 싶은 순간에 더 강렬해진다. 우리가 그냥 출발이 아닌 ‘새’ 출발이란 말을 자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끝내지 못해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끝을 내는 데 걸림돌로 느끼는 대표적인 감정으로 죄책감, 자기혐오, 절망감이 있다. 해야 할 과제를 완수하지 못해 죄책감이 일고, 안일하고 게으른 자신을 혐오하며, 이미 모든 것이 망해버렸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무기력해지고 만다. 이 걸림돌은 참 무겁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 밖에 나오면 속으로 ‘춥다, 춥다’를 되뇌는 것처럼 이 걸림돌에 걸리면 ‘무겁다, 무겁다, 괴롭다’만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걸림돌을 걷어내고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나는 늘 그렇게 끝내고 새롭게 시작해왔다.

나를 용서하는 첫 번째 방법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심리학자의 유튜브 영상이나 책을 보는 것이다. ‘우울, 불안, 무기력증’ 등 키워드만 입력하면 관련 콘텐츠가 줄을 잇는다. 나의 어떤 사고 구조가 습관적으로 일상을 갉아먹고 있는지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볼 수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따듯한 응원 덕분에 주눅 든 마음이 조금은 어깨를 편다.

두 번째 방법은 절친한 친구와 통화하며 나만의 우물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혼자 방에 머물다 보면 내가 무슨 최악의 상황에 봉착한 듯 현실을 왜곡해 해석하기 마련인데, 제삼자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 친구는 나의 그, 최악의 상상을 허물어준다. 얼마 전에도 나는 2022년에 이룬 것이 전혀 없어서 실패자가 된것 같다며 그 친구에게 하소연했고, 친구는 내가 해낸 것을 읊어주며 생각보다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이루어왔음을 상기시켜줬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깊은 우물이란 상상에서 나오기 쉬운 듯하다. 친구와 대화하며 나는 무의식중에 스스로 갇혔던 자기 연민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용서하는 방법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한없이 따듯한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수보다 자신에게 더 각박하게 굴 때가 많다. 시작을 위해 힘을 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힘을 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작이란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내가 되어 출발하는 일이다. 얼마나 무거운 과거가 나를 붙잡고 있든 이제부터는 뻔뻔하게 무게를 잊고 가볍게 시작하길 바란다. 딱 자신의 맨몸이 만든 중력만큼의 무게가 실린 걸음으로. 보선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

몇 년 전 모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특강 제목은 ‘앞으로 잘할 것’. 강의실 단상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후회했다. 주제넘은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문학에 대해 말할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졌다.

강연은 질의응답으로 꾸려졌다. 미리 나눠준 점착 메모지에 학생들이 질문을 적었다. 질문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글 쓰는 방법.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그 방법을 안다면 원고 마감일을 잘 지켰을 것이다. 한 편의 글을 탈고하면 막막해진다. 나는 이전에도 몇 편의 글을 썼다. 잘하고 싶었다. 욕심도 있었다. 좋은 글을 쓰자고 다짐하며 살았다. 그러나 언제나 실패했다. 내 의도와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흔히 글쓰기를 건축에 빗대곤 한다. 작가와 건축가는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들어낸다. 그것이 완성되면 누군가 그곳에 머물길 바라며 그들은 떠난다. 빈 곳과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떠돈다. 계속해서 떠돌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

다른 하나는 글을 쓰게 된 계기. 초등학생 때는 숙제로 매일 일기를 써야 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글로 적는 일은 지겹고 귀찮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일기장에 일기 대신 시를 써도 된다고 했다. 그것은 ‘오늘도 참 보람찬 하루였다’로 일기를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과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썼다. 행과 연을 나눠 일기장을 채웠다. 그때 쓴 것이 분명 시였다고 생각한다.

한 학생에게 메일 한 통이 왔다. 간략한 자기소개와 강연을 들은 소회가 적혀 있었다. 그는 글 쓰는 자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일련의 사건으로 그의 믿음에 금이 간 것이다. 선(善)은 다양한 형태로 글에 나타난다. 아주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 때도 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한다는 건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다. 가장자리에 놓인 삶을 드러내며 안녕하냐고 묻는 것이다. 옳지 않은 걸 방관하지 않는 태도가 문학의 소명이라고 그에게 말하고싶었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는 덧붙였다. 너무 기대하며 살지 않겠다고. 기대하지 않는 삶은 글 쓰는 삶과 얼마나 멀까. 난 언제부터 내게 기대하지 않았을까. 한 해의 끝에서 뒤를 돌아본다.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생활을 비집고 들어오는 조급증과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순진한 낙관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급기야 몸을 아프게 했다. 무엇을 얻고자 그 많은 밤을 지새우며 너를 외롭게 했을까. 그게 뭐든 손에 쥘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어머님은 아내에게 전화해 당신 꿈에 내가 나왔다고 했다. 내 목소리가 어두웠다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을 주지 않으려 해도 어느순간 정이 든다고 했다.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그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할까요?

쿠바의 재즈 음악 그룹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이브라힘 페레르(Ibrahim Ferrer)는 누구나 한 번은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내게 그런 날은 “내 글은 비겁하지 않아요” 하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최지인 시인

De Alto Cedro voy para Marcané 알토 세드로에서 출발해 마르카네로 가네
Llego a Cueto, voy para Mayarí 쿠에토에 도착해 마야리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나네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Chan Chan’

영화가 데려다준 곳에서 내가 받는 마지막 질문은 늘 같았다.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제 막 첫 영화를 끝냈는데 벌써 다음을 묻다니. 너무한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그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정리되지 않은 미래 계획을 읊조렸다. 그럴 때마다 명쾌하게 결정된 ‘다음’이 없는 상태의 내가 싫었다. 사실 그보다도 싫었던 건 ‘다음’을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품 안에 계속 있을 것만 같던 영화가 상상해본 적 없는 곳까지 훨훨 날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자꾸만 겁이 났다. 이걸 넘을 수 있을까. 더 재밌는 걸 만들 수 있을까. 이보다 잘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해가 되는 건 알아서 ‘다음’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덕>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다음 영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소와 같은 매일을 보내다 하루아침에 <성덕>과 헤어지는 것도 불가능한 노릇이니, 스스로에게 어떤 단절의 시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다. 익숙한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나를 낯선 도시에 홀로 내버려두는 것은 언제나 큰 위안이 되어줬다. 봄에 다녀온 파리가 그랬고, 개봉을 준비하던 여름에 찾아간 베트남이 그랬고, 어느덧 초겨울 일본의 차례였다. 영화 GV와 북 토크가 끝나갈 무렵에 맞춰 비행기표를 끊었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마쓰야마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사흘을 지내다 오는 일정이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낯선 언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무엇도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오로지 구글 맵과 번역기, 적당한 눈치만 가지고 버텨야 한다. 나는 그게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상태가 편안했다. 자유로웠다. 먹고 싶은 걸 먹고, 내 기분에 따라 시간을 쓰고, 걷고 걷고 또 걷고, 가끔 시계를 보고, 자주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종종 욕심나는 물건들을 사면서 풍요로운 날들을 보냈다. 외롭다 싶은 순간에는 가족들과 페이스타임을 했다. 행복했다.

매일 밤, 내일은 어딜 가서 무얼 먹고 어떤 걸 구경할지 정하느라 바빴던 탓일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덕>과 헤어져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전혀 갖지 않았다. 온갖 고민을 짊어지고 도착한 곳에서, 그런 짐은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즐겁게 놀았다. 신기했다. 고맙게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거냐고 묻지 않았다. 지도를 분신처럼 붙잡고 있는 이방인에게 대뜸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문득, 꼭 낯선 땅이 아니더라도 나는 어디에서나 여행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나니 발걸음을 떼기 시작해야 다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힘차게 걷다가 잠깐씩 멈춰 서서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는 게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애써 찾아간 곳이 문을 닫아 계획이 틀어져도 별 탈 없다는 점 역시. 여행할 땐 자연스럽게 여기다 일에서는 두려움이 드는 모든 것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씩씩하게 여행을 마치고 나니 다시 시작해볼 힘이 생겼다. ‘다음’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솟았다. 그곳이 어디든 걸음을 떼기 전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열흘간의 여행을 동력 삼아 작업을 시작해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줄지 기대하면서. 오세연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