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기상이변은 경신된다. 매일 전해지는 폭우와 폭설, 폭염의 경보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무분별하게 생명을 죽이고, 먹고, 낭비하고, 버린다. 그 가운데 절망을 딛고 내일에 오늘의 재난을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라, 재앙의 시나리오대로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내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늘, 우리, 이곳임을 믿는 새 시대의 새 사람들. 이들이 쟁취할 내일에 대하여.

다샤 김

1995, 제철 식물 레시피 창작자 겸 통・번역가 (@haveyoueverhadkimchi)
채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법을 개발하는 제철 식물 레시피 창작자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해 소개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으며 요리를 매개로 지속 가능성과 환경, 동물권 등 다양한 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백 명의 어설픈 비건이 낫다.
자연을 회복하는 일은 한 명이 1백 명 분의 노동을 해서 이룰 수 없다.


행동의 시작
채식은 스님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에 한국으로 여행 온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며 비거니즘을 처음 접했다. 그 후 잇몸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약해진 잇몸으로는 대부분의 육류를 씹기 힘들었고, 그렇게 고기를 먹지 않으니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을 체감했다. 일주일에 5일은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체질이었는데, 더 이상 체기로 고생하는 일이 없었고 여러 차례 수술한 잇몸 염증도 재발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더없이 신기한 경험이었고, 이는 본격적인 채식으로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요리하는 과정에서 육류는 대부분 재료 고유의 향을 가리고 숨기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반면 채소 요리는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이 사실을 인지함과 더불어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육류를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채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행동과 실천 비거니즘을 실천한 지 4년이 넘었고, 자연스럽게 제로 웨이스트도 지향하고 있다. 유기농 채소를 활용한 비건 레시피를 개발하며 동물 성분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식사의 장점과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또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하지 않기, 텀블러 하나를 열심히 사용하기, 중고 물품 구매하기, 리필 숍에서 생필품 구매하기 등을 실천하며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삶을 추구한다. 소규모지만 직접 농사도 지어보고 음식물 찌꺼기도 자연적인 방법으로 퇴비로 만들어 쓰고 있다.

주변과 나누는 방법 비거니즘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강요보다 회유가 필요하다. 내가 채식의 긍정적인 면을 알리는 방법은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는데,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비건으로 요리해 대접하며 비건 음식도 아름답고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한다. 요즘 친구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백 명의 어설픈 비건이 낫다.’ 자연을 회복하는 일은 한 명이 1백 명 분의 노동을 해서 이룰 수 없다. 개인이 주변에 조금씩 전파하며 거미줄이 넓어지듯 다수로 확장되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영향을 준 것들 비거니즘 계간지 <물결>. <물결>은 ‘물고기’ 대신 ‘물살이’, ‘마리’ 대신 ‘명’ 등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편집 원칙을 적용하는 잡지다. 그 표현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는데 계속 접하고 읽다 보니 나 역시 어느새 일상에서도 종 평등을 지향하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매호 첫 장에 실리는 현희진 편집장의 글을 특히 좋아한다. 더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낙담 속 희망 씨앗을 심고 새 잎이 돋는, 너무나 경이로우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에서 희망을 얻는다. 아픈 땅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랄 수 없다. 다행히 아직 지구는 씨앗을 틔울 힘을 잃지 않았다. 몇 세기에 걸쳐 유해 물질로 몸살을 앓아온 우리의 흙에서, 아직도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채소가 자라고 있다. 지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견디기 힘들 만큼 힘들고 지칠 때면 농부들을 찾아간다. 변화하는 기후와 오염된 땅에 대해 알아가며 어떤 작물을 건강하게 기를 수 있을지 매일 새로운 연구를 하는 그분들을 보며 나도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우리가 바꿀 내일은 모든 식당에 비건 메뉴가 생기고 모든 슈퍼마켓과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서 비건 제품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만큼 채식이 당연하고 흔한, 특별할 것 없는 식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