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또렷한 취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이들의 시선은 귀중한 경로가 된다.
날 선 감각을 지닌 25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에게서
요즘 보고, 듣고, 읽고, 사고, 즐기는 것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김참새

미술가

김참새

경쾌한 색이 돋보이고 명랑한 분위기가 얼핏 느껴지는 미술가 김참새의 작품에는 가장 내밀한 감정이 녹아 있다. 그가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아름답게 꺼내 보이는 사적인 마음은 사려 깊은 위로가 되어 관객에게 닿는다.

Place

야쿠모 사료(Yakumo Saryo) 오가타 신이치로(Ogata Shinichiro)는 본인이 태어난 나라의 전통문화를 작업에 녹여내는 일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가 만든 레 스토랑 야쿠모 사료 또한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오래된 일본 주택을 개조해 완성했다. 예약이 필수인 곳이라 연락 후 찾아갔는데, 디자이너의 취향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일본 고유의 정서가 밥 먹는 행위 하나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순히 밥을 먹었다기보다는 한 편의 짧은 일본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통도사 억지로 드러내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한국 전통문화를 좋아해 그 근본이 되는 공간인 사찰을 즐겨 찾는다. 그중 경남 양산에 자리한 통도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사찰로, 한국의 3대 사찰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자주 접할 수 있는 서울의 절들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오래된 나무들, 벗겨진 페인트의 은은한 색감,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 형언하기 어려운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절의 분위기와 크기에 압도당한 건 이곳이 처음이었다. 화창한 날도 좋지만, 특히 비 오는 가을날에 찾아가보길 권한다.

 

What’s In My D Bag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D-BOX’ EBS에서 운영하는 OTT로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른 작품, 독립 애니메이션,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해 2008년쯤부터 구독하기 시작해 꾸준히 챙겨 보고 있다. 최근에 본 작품 중에서는 프랑스 감독 클레르 시셰(ClaireSichez)가 만든 애니메이션 <러브 플랜(L’ Amour en Plan)>이 기억에 남는다. 심각한 분위기와 상반되는 예쁜 색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팟캐스트 <비밀보장> 송은이와 김숙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듣고 있으면 친한 언니들이 옆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웃겨주는 기분이 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만의 고민이 아니구나’ 하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여러 회차를 연속으로 재생해둔 채 그림을 그릴 때도 많다. 처음부터 챙겨 들었으니 나도 ‘땡땡이’(‘비보’ 청취자를 뜻하는 이름) 중 한 명이다. 새로운 회차가 공개되는 수요일을 늘 기다린다.

 

Person

임윤찬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그려내는 힘 있고 아름다운 선율이 참 좋다. 천재적인 연주는 물론, 눈을 가리는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소년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조금도 없고, 콩쿠르에 나온 이유는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등수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들으며 그가 피아노에 흠뻑 빠져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에 그토록 깊이 몰입한 사람을 오랜만에 보았고, 그게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가 피아노와 함께 앞으로 얼마나 멋지게 성장할지 기대된다.

 

Shopping List

스피도의 패스트스킨 하이퍼 엘리트 미러 수경 수경계의 에르메스라 할 만한 제품. 수경에 이만한 돈을 투자해야 하나 싶어 망설이다가 일본에 갔을 때 한국보다 저렴하게 판매해 구매했다. 사용해보니 예상보다 꽤 만족스러웠다. 패킹이 강력해 수영하고 나면 눈 주위에 판다 같은 자국이 생긴다는 게 유일한 단점. 하지만 다른 어떤 수경보다도 이 제품이 제일 좋고, 지금은 동일 모델을 다른 컬러로 새로 구입해 쓰고 있다. 수경 하나를 오래오래 쓰고 싶은, 수경에 진심인 수영 애호가에게 권한다.

 

Exhibition / Book / Movie

피에르 위그의 전시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를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 파리의 피노 컬렉션(Pinaut Collection)에서 진행한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궁금증을 품고 있던 작품인 ‘(Untitled) Human Mask’를 두 눈으로 봤을 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 좋은 충격에 휩싸였다.

 

영화 <애프터 양> 내게 2022년 최고의 영화였는데, 아직까지 이보다 좋은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인공지능 로봇 ‘양’이 작동을 멈춘 후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는 가족의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여러 번 보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두 번 더 감상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참여한 OST를 들으면 영화 속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