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의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샘(Sam).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TV와 영화, 잡지는 저에게 날씬해져야 한다고 말해요. ‘난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을 항상 갖게 하죠. 그래서 외모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커플 잠옷을 입은 섀넌과 엄마가 마주 보며 웃고 있다. 웃음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최고의 약이다.

섀넌은 엉덩이 한쪽에 ‘Kiss It!’이라는 문구를 타투로 새겼다. 이는 앞으로 펼쳐질 삶을 대하는 그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몸속에 실리콘 풍선을 넣은 섀넌의 체중은 빠르게 줄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는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한 남자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든 칼라(Cala)의 이마에 검은 글씨로 ‘FAT’이라고 썼다.

욕실에서 혼자 생각에 빠진 첼시(Chelsea). 비만을 둘러싼 오명과 차별은 수치심을 유발하고, 이는 누군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섀넌은 자신의 몸집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할 거란 생각에 버스 정류장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The Big O’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비만을 경험한 내 어린 시절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영국에서 비만인 몸으로 자란 나는 만약 내가 날씬했다면 내 인생에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10대는 학교를 비롯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이지 않나. 당시 난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판단되고, 놀림당하고, 무시받으며 내면의 상처를 입었다. 그때 느낀 수치심이 ‘The Big O’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프로젝트 제목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나? 암(cancer)을 완곡히 가리키는 표현인 ‘The Big C’를 참고해 지은 제목으로, 비만(obesity)의 공포가 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선다는 뜻을 담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년 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5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비만율은 3배 가까이 증가했고, 과체중 혹은 비만인 5~19세 인구수는 2016년에 이미 3억여 명에 달했다. 지금 이 지구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비만 청소년이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만이 신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반면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마른 체형을 지향하는 세상에서 살찐 몸으로 사는 건 타인의 시선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일인데 말이다. 신체 형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시대에 비만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조명하고, 편견에 도전하며 비만의 오명을 벗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다양한 여성 청소년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함께할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찾았나? 초반에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비만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10대 아이들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다녔다. 그런데 과체중 청소년에게 비만 관련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모욕을 주는 행동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때 비만이 극도로 금기시되는 주제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후 친분이 있는 의사들에게 부탁해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직업윤리상 도움을 받는 게 불가능했다.

프로젝트에 함께할 인물을 찾는 과정이 지난했지만, 그럼에도 섭외할 때 꼭 지키려 한 원칙이 있었나? ‘가장 뚱뚱한 사람’을 찾지 않는 것. 난 다양한 과체중 청소년을 사진에 담아내려 했고, 그렇기에 어떤 기준도 미리 세워두지 않았다.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이니만큼,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완전한 동의를 구한 뒤 촬영에 돌입해야 했다. 그래서 참여 의사를 밝힌 모든 아이들과 그 가족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을 진행할 때 유의한 점이 있었다면?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난 아이들과 반나절이나 하루 또는 그 이상의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작업하는 걸 즐겼다. 그래야 내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진솔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난 나를 본인의 삶으로 기꺼이 인도하는 용감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에 마법처럼 사진이 탄생했다.

 

파티에서 ‘최고의 나’를 보여주기 위해 식단 조절을 하는 섀넌.

비만의 몸으로 음식을 양껏 먹는 행위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몸무게가 2kg 줄어들어 보상으로 초콜릿을 먹은 디에나(Deana)가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

생애 첫 연인과 공원에서 포옹하고 있는 섀넌.

 

당신의 사진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여성은 섀넌(Shannon)이고, 최근 그를 찍은 작업물을 모아 사진집을 만들기도 했다. 섀넌과 어떻게 처음 만났나? 2010년, 기자로 일하던 친구가 한 건강 관련 웹사이트의 론칭 행사에 간다고 했다. 행사 주제 중 하나가 비만이라 나도 동행했는데, 그곳에서 과체중 청소년을 돕는 방과 후 프로그램 운영자와 같이 온 섀넌을 만났다. 섀넌은 수많은 기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단상에 올라 시를 읊었다.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라며 저를 가르치려 하지 말아주세요. 단 하루만 제가 되어 살아보세요.” 섀넌이 시 낭송을 마치자 방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깊이 감동한 난 섀넌과 그의 가족을 찾아가 촬영을 제안했고, 10여 년 동안 작업을 이어왔다.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바라본 섀넌의 삶은 어땠나? 섀넌은 학교에서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고, 견디다 못해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비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의학 실험에 참가해 6개월 동안 몸속에 식사량 조절을 위한 실리콘 풍선을 넣고 지낸 적도 있다. 당시 섀넌의 몸무게는 잠시 줄었다가 풍선을 제거한 후 다시 서서히 증가했다. 난 항상 그가 감량에 성공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이는 쉽게 실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섀넌은 거대한 몸으로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빠른 속도로 거쳤다. 내면이 불안정한 소녀에서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는 그를 지켜보는 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여정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라던 당신의 말이 떠오른다. 물론 그 여정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면 첫걸음을 옮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를 다정하게 보듬어주고 있는지,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과거에 비해 높아진 듯하다. 비만을 대하는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나? 인식은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편견 어린 시선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시선은 우리 사회가 비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많은 이들이 아직도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고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나. 난 비만을 개개인의 의지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향후 몇 년간 세계 곳곳의 비만 실태를 면밀히 조사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비만을 바라보는 편견이 지워지지 않은 사회에서 스스로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도 여전히 내 몸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과체중 청소년과 소통하며 나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었다. ‘The Big O’ 프로젝트는 결국 사랑에 관한 것이다. 만약 스스로를 온전히 아껴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서로 다른 모든 몸은 아름답고, 당신은 그 모습 자체로 너무나 소중하다. 이를 명심하며 당신의 사랑을 환상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나를 더 사랑하고, 주변에 사랑을 나누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