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팔찌, 수건 스커트, 과자봉투 백… 그런데 이게 다일까?

@BALENCIAGA

쿨한 로고의 캡 모자나 웨이브 로고의 티셔츠, 텍스트만 박혀 있는 듯한 지갑 같은 건 그야말로 국민템인데, 험한 것이 나올 법한 너덜너덜한 디스트로이드 스웨터나 티셔츠에 셔츠를 붙인 T-셔츠 셔츠, 오버핏 패딩 같은 건 정말이지 패션이란 뭘까, 하는 근원적 의문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시즌마다 하나씩 나오는 화제성 짙은 아이템들은 전세계적인 밈이 되어 발렌시아가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부풀리고 있는데, 이쯤 되면 ‘의도’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어요. 다이소 테이프 같은 팔찌를 보기 위해 온라인 숍에 들어가서는 몇 번의 클릭 끝에 안경이나 백, 참을 장바구니에 넣어버리니까 말이에요. 발렌시아가의 재미있는 행보를 바라보며, 어쩐지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박참새 시인의 수상 소감이 떠오릅니다. “허락된 범위의 구역에서 나 혼자 깡패이고 싶습니다.” 패션이 허락한 깡패, 발렌시아가를 이해하려면 발렌시아가가 옷만큼이나 관심 있는 다른 무언가를 파악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ABOUT 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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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는 쿠틔르 하우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스페인 태생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1937년 프랑스 파리에 쿠틔르 하우스를 열었고요, 화가 벨라스케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첫 번째 컬렉션으로 단 하루 만에 파리 최고의 쿠튀리에로 떠올랐습니다. 발렌시아가는 디자인, 패턴, 재봉 등 옷을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가브리엘 샤넬은 그에 대해 ‘발렌시아가만이 진정한 꾸뛰리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한 땀 한 땀 수놓은 예술 작품 같은 옷이 아닌, 좀 더 유행에 민감하고 편리한 프레타 포르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발렌시아가는 1968년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2021년,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뎀나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은퇴 이후 처음으로 발렌시아가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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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희귀한 아카이브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30점의 쿠틔르 작품과 20점의 형태학적 마네킹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패션이 여성에 대한 엄격한 이상을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루엣과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발렌시아가의 철학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전시에는 시대의 아이콘인 잉그리드 버그만, 아그네스 드빌, 모나 비스마르크 외에도 왕족들과 사교계 유명 인사, 예술가, 그리고 하우스의 직원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정교한 작품들이 선보였습니다. 드레스들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루엣의 민감성과 고유성을 고려해 제작되었는데요. 옷을 보고 그 옷의 주인에 대해 상상하고 짐작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개인화되었고 디테일이 살아있었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주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레이스 켈리의 40번째 생일을 위해 맞춤 제작되었던 드레스도 선보였는데요, 이 드레스의 복각품은 뎀나의 쿠틔르 컬렉션에서 착용되어 과거 헤리티지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CLOSET CAMPA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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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에는 ‘옷장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2000년에 처음 선보였던 아이코닉한 핸드백 ‘르 시티 백’의 귀환을 기념하며 듀오 포토그래퍼인 이네즈와 비누드(Inez & Vinoodh)가 캠페인을 촬영, 감독했어요. 배우 노윤서, 니콜라 펠츠, 킴 카다시안, 의상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패트리샤 필드 등의 옷장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사랑하는 물건들이 아카이브 형식으로 전시되어 마지 박물관이나 갤러리처럼 꾸며진 옷장 앞에서 르 시티 백과 함께 선보였어요. 개인이 사랑하는 물건들이 얼마나 사소한 차이들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 차이들과는 또 관계없이 모두가 사랑하는 르 시티백이라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캠페인인 것 같습니다.

BALENCIAGA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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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눈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무드와 태도를 확실히 드러내 주기도 합니다. 여기 뎀나가 선정한 아티스트들의 플레이리스트가 있습니다. ‘음악은 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발렌시아가 문화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뎀나는 말합니다. 뎀나의플레이리스트 공개를 필두로 2021년에는 레코딩 아티스트, 배우, 작가, 그리고 TV 호스트인 가장 성공한 드랙퀸 ‘루폴(Ru Paul)’, 2022년 애시드 아랍(Acid Arab)과 아야 나카무라(Aya Nakamura), 핑크 마티니(Pink Martini)와 함께 발렌시아가를 위한 플레이리스트들을 공개했습니다. 특히, 2023년에는 영국 그룹 아카이브와 함께 약 24시간 분량의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했는데요, 이 플레이리스트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된 발렌시아가 뮤직 아카이브 상품의 택 안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상품을 구매한 뒤 스마트폰으로 칩을 스캔해 들을 수 있었죠. 제이제이 요한슨(Jay-jay Johanson),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와의 플레이리스트까지 나이와 성별, 장르를 가리지 않는 협업은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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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는 2019년부터 패션쇼 무대에 사용되는 집기와 요소들을 렌탈, 재사용, 재활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2023년 겨울 쇼는 행사 기간 사용되는 에너지와 장비들을 최소화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죠. 바닥과 런웨이, 벽을 엎은 흰색 카펫은 회수한 뒤 세척해 재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했고요, 목재 패널로 완성한 벽 구조물은 쇼가 끝난 후 목재 팰릿으로 재가공하여 합판 제조나 원예 산업을 위해 보내졌습니다. 의자는 다음 쇼를 위해 보관했고 음향과 조명 장비는 쇼가 끝난 후 업체에 반납했다고 하네요. 쇼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전기차를 이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였습니다. 패션쇼에 사용된 모든 에너지는 탄소 발자국으로 계산되어 금액으로 환산해 산림녹화 사업에 기부되고 있는데요, 서인도에 56,000그루 이상의 과일나무가 심어져 수백 가구의 지역 주민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발렌시아가는 환경친화적 소재에도 관심을 보입니다. 버섯의 균사체에서 추출한 최첨단 소재인 EPHEA™로 가죽과 흡사한 소재감의 맥시 후디드 랩 코트를 만들었습니다. 아티스트이자 건축가, 가구 디자이너인 해리 누리에프(HARRY NURIEV)와 협업해 발렌시아가의 오래된 재고를 활용해 소파를 만들기도 했고요. 100% 재활용된 에코닐 섬유로 만든 나일론 벨트와 백도 만들었습니다. 주로 작업복 제작에 사용되는 소재이죠. 부티나 스피드 러너에도 리사이클 니트를 사용했고요. 공식적인 자원 순환 프로그램도 런칭했습니다. 플랫폼 리플런트(Reflaunt)와 함께 발렌시아가 제품의 전문적인 위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레디 투 웨어 및 액세서리를 재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아이템을 지정된 스토어에 반납하거나 수거를 신청하면 문서화, 인증을 거친 뒤 전 세계 25개 이상의 마켓과 리플런트에 등록되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됩니다. 발렌시아가 스토어 크레딧이나 현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고요. 증강현실을 통해 농사를 지어볼 수도 있습니다. 지구의 날을 기념해 재생 농업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만들었거든요.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토질 개선 기술을 활용해 농사를 지어볼 수 있습니다. 발렌시아가 옷을 입은 쿨한 농부 캐릭터가 우리를 도와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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