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하고, 유쾌하다.’ 도자 작품에서 쉬이 들지 않는 감상이다. 도자기가 갖는 무게감과 진중함을 덜어내는 작업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성향에서 출발한 작업이지 않나 싶다. 질문에서 언급한 대로 진중함이 있는 작품들은 볼 때 굉장히 멋있고, 잘생겼다는 생각은 들지만 만들고 싶은 흥미를 느끼지는 못한다. 이 마음이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렇다고 작업 과정이 진지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완성작을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진지함을 전해야 하나 싶은 거다. 보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유쾌하기도 한 도자기를 만들고 싶었다.
도자 작업 밖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라 들었다.
오히려 도자기를 잘 안 본다. ‘도자기’라는 영역으로 작업을 한정 짓고 싶지 않은데다, 본 것과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의 영역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내 안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말에서 작업을 시작하려는 편이다. 형태보다 그 안에 담고 싶은 언어가 먼저인 셈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항상 자기 전에 나만의 소설을 상상으로 쓰는 데, 어제는 사건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만들면 오늘은 그게 왜 일어났는지 인물의 과거로 돌아가고 내일은 실체가 밝혀지고,(웃음) 그렇게 며칠간 한 편을 쓴다. 거기서 나온 간단한 말이나 단어가 작업의 주제가 되는 거다. 물론 낮에 불현듯 나는 생각에서 출발할 때도 있고.
쓰이는 폰트도 작업마다 다르다. 폰트 작업에서 드러나는 취향이나 기조는 무엇인가?
역시 완전히 직관에 의존해서 선택한다. 오목을 예로 들면, 전체적인 판을 짜고 계획적으로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의 수를 보고 그때그때 둘 자리를 찾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다. 어떤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르면 둥근 형태가 어울리겠다, 아주 반듯한 게 좋겠다라는 식으로 기본적인 구조는 정하되 확정하진 않는다. 우선 한 글자를 써보고 확인하고, 또 다음 글자를 붙여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새로 해보고. 밑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직접 써보면서 확인하는 편이다.
도자기의 모양이나 질감에 대한 관점도 묻고 싶다. 표면이 매끈하고 정교하기보다 손맛이 살아 있는, 불규칙한 질감을 드러내는 작업이 많은 편이다.
사실 물레를 잘 못 차서 손으로 만든 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게 내 취향임을 알게 됐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물레가 대개 세련된 느낌이라면 나는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것에 마음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하게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도로의 상처를 시멘트로 메운 모습이다. 애써서 상처가 없던 것처럼 메우려 노력했지만 처음처럼 완벽해 보이지 않는, 어쩔 수 없이 자국이 보이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그 취향이 도자기를 만들 때도 적용된다. 만드는 과정이 보이는 듯한, 잘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어딘가 못생긴. (웃음)
일러스트와 그래픽 작업도 경험한 적이 있다 들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작업에 영향을 미칠 때도 있나?
두 작업은 지금도 하고 있는, 가장 큰 취미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되게 재미있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를 내 도자 작업에 시도할 때도 있다. 가끔 도자기만으로는 다 보여주지 못했다 싶을 때가 있는데, 이를 그래픽이나 일러스트 작업으로 연결 지으면 표현의 범위가 더 커진다.
평소 광고에 관심이 많은데, 이미지와 카피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걸 보는 즐거움이 크다. 카피로 인해 흔한 사진이 생명력을 갖기도 하지 않나. 이러한 합을 표현하고자 다양한 장르를 제멋대로 조합하거나 장르를 오가며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최근 향수 브랜드 본투스탠드아웃(BORNTOSTANDOUT)과 협업해 일러스트와 그래픽 작업을 작품화하는 시도를 해봤는데, 이게 현대판 시서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계속해서 작가로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다.
그래서인가? 마리끌레르와의 협업으로 NFT 작품을 만드는 작업에도 과감히 참여를 결정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고 흥미로운 지점이 보였다. 내가 하는 작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도될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데, 이번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자 항아리에 한글로 적힌 ‘마리끌레르’ 글자가 인상 깊은 작품이다.
물레로 제작한 항아리에 글씨를 쓰는 작업은 남편 민승기 작가와 ‘인생은 협업’이라는 주제로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다. 나와 달리 물레를 차서 작업을 하는 민승기 작가는 보다 매끈하고 정교한 형태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번 작업은 그가 분청도자기 기법으로 빚은 청자 항아리에 내가 ‘마리끌레르’라는 글자를 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과거와 현대 모두를 아우르면서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봐도 어색하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폰트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끌’을 표현하는 것이. (웃음)
‘ㄹ’이 너무 많더라. (웃음) 우선 글씨체는 독특하게 변형시켜서 지나치게 새롭게 보이려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다.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고정되어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동시에 언제 봐도 이상하지 않는 형태를 고민했다. 그게 마리끌레르라는 매체와 청자 항아리를 떠올렸을 때 내가 가지는 인상이다. 무수히 많은 시도를 거듭하면서 변화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하는. 그래서 간결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서체로 쓰되 글자별로 획의 길이나 두께는 조금씩 다르게 조정했다. ‘마’는 첫 글자니까 힘을 주기 위해 두껍게, ‘끌’은 가장 획이 많으니까 보다 얇게. 한 자 한 자 쓰고 몇 걸음 물러나 보고, 다시 쓰고 보고. 금칠이 어렵기도 하지만 비율을 신경 쓰다보니 5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 뭔가 중구난방인 것 같은데 묘하게 조화로운 결과.
NFT 작품이라 가상의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겠지만, 이 작품의 쓰임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쓰임과 해석은 보고 쓰는 이의 자유다. 이 작품을 만든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바람을 담았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각자에게 얼마나 와닿는 작품이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주 쓰는 문구가 있는데, 내 작업을 ‘쓰는 사람과 어울리는 도자기’라 칭한다. 어쨌든 나를 떠나면 각자의 공간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 더욱 궁금할 뿐이다.
스스로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길 바라나?
내일이 궁금한 작가. 어제의 내가 없으면 오늘의 작업은 없다. 그리고 오늘 어떤 작업을 했기에 다음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내가 가진 근본 안에서 조금씩 변화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나 역시 내일은 어떨지 모른다. 그 궁금증이 다음 작업을 하게끔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