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피비 필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했다. 여인의 관능미를 매혹적으로 드러내는 슬립 드레스. 디자이너의 의도는 한 치의 오차 없이 관객에게 닿았고 그녀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우선 덴마크 아티스트 FOS가 선사한 오렌지, 옐로, 블루 컬러 블록 텐트부터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빛, 고즈넉한 석양이 연상될 만큼 예뻤다. 대부분의 룩에 매치된 V자형 레이스 슬립 톱과 슬립 드레스는 실크와 니트, 가죽을 한데 조합해 한결 더 특별해 보였고, 피비 필로 특유의 로맨틱한 여성성을 고스란히 대변한 아워글라스 실루엣의 코트 역시 좋았다. 풍선처럼 봉긋하게 솟은 퍼프소매 블라우스나 몸을 타이트하게 감싸는 발레리나 니트 드레스(등을 따라 끈을 길게 늘어뜨려 뒷모습까지 신경 쓴 세심함을 보라!)는 또 어떤가. 곳곳에 배치된 가죽 에이프런 튜닉이나 잘생긴 와이드 팬츠에서도 컬렉션 전체의 균형을 맞추려는 피비 필로의 영민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여심을 올랑거리게 만든 세린느는 역시(!) 세린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