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랏빛 델피늄으로 뒤덮인 산기슭을 루브르 박물관 중앙 정원에 옮겨놓은 디올. 마치 꽃의 동굴에 들어온 듯한 쇼장은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때만 해도 라프 시몬스가 이렇게 갑자기 디올에 이별을 고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 어찌 됐건 그가 디올에서 마지막으로 선보인 옷들은 기이하게도 미래적이면서 로맨틱한 기운이 느껴졌다. 빅토리안 스타일의 언더웨어를 받쳐 입은 투명한 바이어스 컷 드레스는 오버사이즈로 재해석된 바 재킷, 새틴 소재의 가녀린 슬립 드레스, 코튼 슈미즈와 어우러진 러프한 니트, 플리팅 기법을 가미한 테일러드 재킷 등의 룩으로 이어졌다. 관능과 절제, 여성성과 남성성, 클래식과 컨템퍼러리가 한데 어우러진 새롭고 부드러운 퓨처리즘이 탄생한 것. 이토록 아름답고 현대적인 디올 레이디를 탄생시킨 채 홀연히 디올을 떠나는 그에게 아쉬움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