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시작 시간을 엄수하기로 유명한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 아니나 다를까, 저녁 6시에 ‘칼같이’ 맞춰 거대한 원형 런웨이 위로 디자이너가 야심차게 준비한 65가지 룩이 모습을 드러냈다. 흥을 돋우는 음악 대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 런웨이에 팀 버튼의 영화 <비틀쥬스>, 록 밴드 키스의 멤버 진 시몬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동시대적인 고스 룩이 풍성하게 소개되었다. 레이스로 장식한 커다란 스웨트셔츠, 펑크 무드가 다분한 데님과 가죽 재킷, 동화에 등장할 법한 거대한 케이프 코트, 극적인 헤어와 메이크업은 하나같이 마크 제이콥스가 의도한 ‘모던 고스 룩’을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했다.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독특한 패션 아이덴티티가 다소 진부할 수 있는 테마에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게 녹아든 점이 주목할 만했다. 그야말로 궁극적인 ‘패션 판타지’를 마주할 수 있었던, 뉴욕 컬렉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