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보는 내내 영화 <아가씨>의 히데코가 떠올랐다. 극 중 그녀가 입은 옷의 길고 가는 실루엣이 생각나는 앤티크한 드레스들이 런웨이에 잔뜩 펼쳐졌으니까. 컬렉션은 그만큼 고풍스럽고 우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1650년대 앙리에타 마리아 여왕의 귀족적인 의상이 이번 쇼에 영감을 준 메인 테마. 앞섶에 블랙 그로그랭 리본을 층층이 단 블루 자카드 재킷과 팬츠로 시작한 쇼는 어깨 위와 목선, 헴라인을 다채롭게 변주한 롱 앤 린 실루엣의 드레스를 줄줄이 선보였다. 후반부는 늘 그렇듯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떠오르는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의 차지. 유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진 플라워 프린트, 더없이 섬세하게 빚은 레이스와 프릴 장식의 아리따운 심포니까지. 에뎀의 매혹적인 서정시가 이렇게 또 한 편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