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종이 인형이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패션으로 승화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제레미 스캇은 이번 시즌에도 관객에게 ‘빅 재미’를 선사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종이 인형을 현실에 완벽하게 재현했는데, 어느 때보다 정교하게 표현된 트롱프뢰유 기법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웠다. 옷은 물론이고 모자, 이어링, 핸드백 같은 액세서리까지 2D와 3D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말이다. 대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절대 현혹되지 마라’라는 영화 <곡성>의 홍보 문구가 절로 떠올랐을 정도. 궁금증을 자아냈던 알약 통 모양의 인비테이션은 캡슐 컬렉션의 힌트였다. 쇼가 끝나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려나간 캡슐 컬렉션의 메인 아이템을 지지 하디드가 걸치고 등장한 걸 보면, 그가 ‘쇼를 위한 쇼’에 치중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