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마노 설비노의 쇼장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이 모습을 보며 밀라노에서 이 디자이너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에르마노 설비노가 이를 꼿꼿하게 유지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역시 이번 컬렉션에서 오롯이 전해졌다. 과거에 비해 한층 모던한 룩이 컬렉션을 채우고 있었으니까. 매니시와 페미닌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선택한 방식은? 체크나 헤링본 패턴의 테일러드 코트, 팬츠 수트처럼 매니시한 아이템, 그리고 아주 섬세한 레이스 소재와 풍성한 프릴 장식 스커트나 드레스처럼 페미닌한 아이템이 컬렉션의 지분을 반반씩 차지했다. 이토록 극명하게 정반대 성향을 띠는 아이템을 과감하게 섞어 스타일링해 조화를 구현한 것. 그중 테일러드 코트 위에 박시한 알파카 니트 풀오버를 입은 룩은 의외로 자연스러웠고, 꽤 참신했다. 에르마노 설비노의 다음 컬렉션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