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 쿠튀르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그리자유를 아십니까?” 이 질문에서 그가 옷의 본질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색으로 그림을 그려 형태와 볼륨을 강조하는 16세기 화풍인 그리자유로 새 컬렉션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때문일까? 발렌티노의 1968년 올 화이트 컬렉션이 연상되는 드레스들이 쇼의 포문을 열었다. 이 덕분에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소재의 대비, 극적인 볼륨이 부각됐음은 물론이다. 화이트 드레스 행렬 사이사이에 섬광 같은 네온 컬러 드레스를 배치했고, 후반부로 갈수록 이국적인 프린트와 살구색, 짙은 가지색, 연보라색으로 과감하게 채색해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천천히 나풀거리는 깃털 장식, 한 폭의 그림 같은 비즈 자수, 섬세함이 극치를 보여주는 레이스와 시폰 소재로 꾸민, 하나같이 꿈결에나 볼 법한 드레스로 컬렉션이 채워졌다. 쇼가 끝난 뒤 터져 나오는 기립 박수는 이번 시즌 더욱 우렁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