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웨어와 하이엔드 패션 사이의 간극을 조화롭게 좁히는 데 능한 글렌 마르탱의 실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명곡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이 웅장하게 울려 퍼진 무대엔 벨에포크 시대 패션을 힙하게 재해석한 52벌의 룩이 쏟아져 나왔다. 관전 포인트는 난해하지만 와이프로젝트 고유의 개성을 쿨하게 담아낸 실루엣. 버튼이 사선으로 달린 후디에 비대칭 스커트를 매치하거나 한쪽 어깨와 배꼽이 훤히 드러나게 스타일링한 톱과 부츠 컷 진 팬츠 등 글렌 마르탱 특유의 과감한 스타일링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 쇄골을 훤히 드러낸 1890년대 블랙 새틴 이브닝드레스며 빈티지한 파이톤 가죽 스커트 수트 등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룩 역시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남녀의 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한 액세서리나 귀가 떨어져나갈 듯 볼드한 이어링 등 디자이너의 위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찾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패션은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비틀고 드러내는지가 중요하죠.” 이 영민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