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디자이너가 런웨이 대신 공개한 영상은 마치 정리가 잘된 요점 노트 같았다. 컬렉션에 영감을 준 대상과 새롭게 선보이는 룩의 특징 등 디자이너가 전하려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상은 디자이너들이 휴대폰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모습을 엿보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해 다양한 편집 기법을 동원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졌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니나 리치를 대표하는 향수 ‘레르 뒤 땅(L’Air du Temps)’. 평화와 부활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모티프로 한 향수병에서 영감 받아 완성한 새 시즌 룩은 다채로운 컬러와 컷아웃 디테일, 수영복에 사용하는 탄성 있는 소재, 흐르는 듯한 드레이핑 기법을 부각시키며 아름답게 표현됐다. 테일러링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과감하게 잘라내는 등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지만 경직되거나 강인한 느낌이 아니라 세련되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켜낸 건 물론이다. 무엇보다 젊고 감각적인 두 디자이너와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하우스 브랜드의 DNA가 이뤄낸 환상적인 하모니가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