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현대음악과 예술에서 받은 영감을 디자인으로 풀어내기로 유명한 록산다 일린칙은 이번 시즌만큼은 좀 더 현실적인 주제로 컬렉션에 접근했다. 다른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고독과 무너진 사회구조, 팬데믹 상황을 실감하며 생존이 달린 중요한 문제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이토록 우울한 주제를 채도 높은 선명한 컬러 팔레트로 표현하는 의외성을 보이며 놀라움을 안겼다는 것이다. “저는 패션에 낙천주의를 담아내요. 최악의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 같은 거죠.” 록산다 일린칙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또 그녀가 평소 런웨이에 등장시키던 거대한 이브닝드레스 대신 고급스러운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수트, 편안한 니트웨어 등 좀 더 실용적인 옷의 비중을 늘린 점도 현실적이었다. 록산다의 컬렉션만 보고 있으면 잠시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나 희망적인 새봄을 기다리게 된다. 디자이너가 의도한 현실도피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