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로샤는 런웨이 쇼 대신 소규모 프레젠테이션을 열어 새 컬렉션을 공개했다. 전도유망한 젊은 디자이너가 만든 감각적인 옷들이 전통적인 런웨이 형태로 기록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지만, 시몬 로샤의 옷은 어떤 공간에 있어도 제 몫을 다하며 빛을 발했다. 전매특허인 볼륨 디테일은 기존보다 더 섬세해졌고, 머리 장식과 액세서리는 언제나처럼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고풍스러운 요소를 현대적 미감으로 변주하는 걸출한 능력은 이제 정점에 선 듯 완벽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고전적이지만, 반대로 캐주얼한 운동화를 신어도 어울릴 정도로 동시대성을 띠기 때문이다. 비록 각성과 폭발, 실용성과 예감이라는 네 개의 단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심오하고 짧은 설명은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사랑스러움을 고루하지 않은 방식으로 정의하는 그의 실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