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봐온 공상과학영화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릭 오웬스는 늘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컬렉션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의 해변에서 선보인 2021 F/W 컬렉션에는 넓고 각진 어깨의
케이프, 애니멀 프린트 보디수트, 저지 맥시 드레스, 무릎 보호대를 더한 것 같은 롱부츠 차림에 마스크를 쓴 모델들이 등장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늘어난 티셔츠, 커다란 퍼퍼 재킷, 포근한 카디건과 같은 ‘일상적인 아이템’이 존재했다. 릭 오웬스 식의 ‘원마일 웨어’인 셈이다. 조합이 기이해 정체 불명의 적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건지, 공격하겠다는 건지 헷갈렸다. 아마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했을 거다. 문득 1996년 개봉한 영화 <화성
침공>이 떠올랐다. 도무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화성 여자’가 등장하는 장면. 어린 나이에도 무섭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영화를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릭 오웬스의 피날레 드레스를 입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딘가 비현실적인 실루엣의 시퀸 드레스는 더없이 영화적이다. 릭 오웬스 쇼 전체가 그랬다. 아니, 지금 우리 삶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