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 야마모토는 언제나 그랬듯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가득한 컬렉션을 공개했다. 검은 카펫이 깔린 런웨이와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조명 사이에 선 모델들의 룩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살펴보면 모두 다른 디테일을 지녔다. 특히 핸드 페인팅으로 찍어낸 듯한 독특하고 예술적인 패턴과 끝부분을 흰색의 얇은 천으로 감아 마무리한 패브릭, 고스적인 옷핀과 사슬 장식을 가미한 룩들은 전성기의 아카이브에서 꺼내오기라도 한 것처럼 요지 야마모토의 DNA를 명징하게 담고 있었다. 많은 하우스 브랜드가 경쟁이라도 하듯 어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내세우는 중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트렌드를 포착해야 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반발심일까? 몇 남지 않은 노장의 무대는 유독 귀하게 느껴진다. 자신만의 속도로 여전하고 고유한 것을 만들어내는, 77세의 요지 야마모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