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March Issue

#서른한 살의 반란

서른하나. 즉, ‘30 더하기 1’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지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서른이 닥쳐올 때의 불안과 막막함을 지나 30대의 시작을 받아들이며 나다움에 다가가기 시작한 나이가 그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3월호는 1993년 창간한 <마리끌레르> 코리아의 ‘31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동시에 ‘World’를 주제로 방대한 콘텐츠를 담대하게 담았습니다. 특히 이달은 모두가 마리끌레르다운 우아하고 강인한 목소리를 무엇을 향해, 어떻게 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으니 3월호에 담긴 한 글자, 한 컷의 모든 결과물을 천천히 음미해주시기 바랍니다.

#웃음과 눈물을 함께

31주년 창간 기념호에는 ‘웃음’과 ‘눈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해사한 얼굴의 소녀 모델들과 마주한 제주 해녀 엄마들의 모습은 미소를 부르는 한편, 주름진 생의 이야기들은 눈시울을 붉히게 합니다. 그분들에게 바다는 어떤 곳일까요. 두려움과 안식을 동시에 안겨주는 세상. 그 바다에서 그들은 억척스럽게 주워 올린 바다의 생물들로 식구를 먹여 살리고 아이를 키워냈습니다. 그렇게 바다와 해녀의 공조는 단단한 결속력을 지니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제주 해녀 프로젝트를 위해 움직인 수많은 분들, 특히 조선희 사진작가와 와이진 수중 촬영 감독, 그리고 이경은 컨트리뷰팅 에디터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편집장을 믿고 선뜻 함께 움직여준 유선애 피처 디렉터와 김지혜 디지털 디렉터에게도요. 그 뭉클한 결과물을 바라보는 지금도 수없이 목청 높여 ‘무사’를 외치던 성산 해녀 엄마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합니다. 한나절에 걸친 인터뷰, 그 이후 2박 3일간의 촬영을 마치고 떠날 때마다 “또 언제 볼 수 있을지…”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던 그 얼굴들도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눈을 마주치면 우리가 오늘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야. 오늘이 지나도, 다음에도 안 잊어벼. 그것이 바로 사람이, 인생이 살아가는 거야.” 김옥자 해녀 엄마가 우리에게 남긴 말 한마디로 아마도 또 제주를 찾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웃어요

무해한 웃음이 지닌 힘, 그 나비효과는 무엇일까요? 김선희, 임수아 에디터가 함께 세대를 잇는 여성 코미디언들을 한데 모은 ‘Laugh Laugh Laugh’ 칼럼을 살피며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귀한 웃음을 나르며 일상을 빛내는 사명감을 지닌 이들은 유머로 이기지 않으려는 마음을 다루고, 마음의 벽을 허뭅니다. 또 잇몸을 다 드러내며 웃기를 서슴지 않는 호쾌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웃음의 선순환을 일으킵니다. 마감 막바지에 넘어온 혼신의 마지막 대지에 “수고했어요 하하하”라고 적은 편집장의 코멘트처럼, 웃음은 즐겁게 전염되곤 하니까요. 우리, 오늘도 한번 웃어볼까요.

#더 넓고 자유롭게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이맘때면 그 묵직한 등장을 알리는 ‘Gender-Free’ 필름 프로젝트. 어느새 제7회를 맞이한 이 특별한 기획은 굳건히 자리를 잡았지만, 섭외 과정은 늘 만만치 않습니다. 일찌감치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 나아간 강예솔, 안유진 에디터는 섭외의 산과 계곡을 건너 마침내 선뜻 마음을 내어준 8명의 여성 배우들을 만났습니다. 곧 공개될 영상을 통해, 여전히 여성 배우들을 위한 역할이 한정된 영화계의 프레임 안에서 꿈틀대는 이들의 뜨거운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또 잠시나마 ‘역할 바꾸기’를 통해 좁은 틀을 깨고 더 넓고 다양한 세계의 지평을 연 이들의 용감무쌍한 움직임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너와 나, 우리의 세계

지금까지 언급한 ‘세계 여성의 날’ 3종 프로젝트 외에도 자랑하고 싶은 칼럼이 넘칩니다. 정평화 패션 디렉터가 밀라노에서 촬영해 온, 구찌 앰배서더 아이유의 감도 높은 ‘Beyond Genre’ 커버 스토리는 디지털에 선공개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죠. 러브의 다양한 형태를 다룬 김지수 에디터의 ‘Antifreeze’ 화보는 마치 새로운 혹성에 안착한 듯한 다채로운 인물들의 사랑에 대한 세계관을 색다르게 담아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새로운 비주얼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선보인 장효선 에디터의 ‘Anywhere, Everywhere’ 화보는 실제와 가상을 넘나듭니다. 한편 과거의 관점이 남아 있는 서울이라는 세계에서 레트로 문물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찾아낸 최인선 에디터. 그 호기심으로 다가선 ‘Anemoia’ 화보는 겪어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향수를 지닌 요즘 잘파 세대를 겨냥했습니다. 참, 인종과 성별을 넘어 매력적인 헤어 캐릭터를 연출한 김상은 에디터의 ‘Picturesque’ 화보도 두 눈을 사로잡는 비주얼로 여러분의 미적 세계를 확장시켜줄 것입니다.

#무지개는 뜬다

해녀 엄마들과의 즐거운 동행을 위해 머문 제주도의 날씨는 참 얄궂었습니다. 하지만 먹구름이 몰고 온 비바람이 걷힌 순간, 선연한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가 촬영 팀 앞에 방긋 웃음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해녀 엄마들의 머리 뒤로 펼쳐진 무지개, 그 순간의 마법은 탄성을 자아냈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 궂은 비가 온 뒤에야 만날 수 있는 무지개는 또 다른 삶의 비밀을 일러주었습니다. 마치 고된 생을 지켜내온 해녀 엄마들의 자부심처럼, 그토록 찬란한 무지개를 또 만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날의 무지개를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3월호 지면에 실린 ‘Hue of Hug’ 제주 해녀 화보와 인터뷰뿐 아니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선보일 영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다가올 봄날, 제11회 마리끌레르 영화제(MCFF)를 통해서도 성산 제주 해녀들의 ‘숨과 힘’이 담긴 풀 버전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남은 여정을 힘차게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마리끌레르> 편집장 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