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서 낯선 가능성을 발견하고, 하나의 답에 머무르지 않은 채
자신의 표현 언어를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네 명의 젊은 작가.
영상, 퍼포먼스, 회화, 사진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열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지금.

장영해 CHANG YOUNG HAE

작가 장영해에게 몸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감각과 관계가 교차하는 변화의 장소다. 영상과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몸의 움직임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기술과 매체가 신체를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이제 작가의 시선은 신체를 둘러싼 보다 넓은 세계를 향하며 다양한 질문을 발화하는 중이다.

장영해, ‘𝄆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 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 퍼포먼스, 50’, 아트선재센터 후원, 국제갤러리 서울, 2025

스스로를 ‘현시대의 신체라는 장소를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작가’라 표현한 적이 있죠. 이때 신체를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장소’라 표현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나요?

언제나 신체의 움직임이나 감각에 따라 대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경험에 관심이 많았어요. 몸은 제게 하나의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거나, 또 외부에 의해 해석 당하는 대상에 가까워요. 물리적으로 한정되지 않은 채로 여러 감각이 교차하고 변화하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매체를 수용하는 신체의 감각을 통해 우리가 발 디딘 물리적 세계와 네트워크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바라보고자 해요. 같은 현상이라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과 영상이나 디지털 이미지로 접하는 것은 서로 다르게 감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작업은 퍼포먼스로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고 어떤 작업은 영상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초기 작업에서는 주로 폴댄스나 페어 피겨스케이팅처럼 특정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수행하는 신체 활동을 다뤘습니다. 이 시기의 작업은 어떤 주제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나요?

폴댄스나 페어 피겨스케이팅의 규칙이나 이미지들은 사회 속 젠더적 역할놀이를 충실하게 따른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운동이라 젠더에 따른 관습적인 움직임이 담겨 있고요. 그 움직임 안에서 여러 사회적인 레이어가 드러나는 동시에 수행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훈련이나 단련에 사용해왔는지도 살펴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그 움직임을 이미지로 접했을 때와 직접 목격했을 때의 감상이 완전히 다른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알고 있던 이미지가 눈앞에 그대로 보이긴 하지만, 그 이미지가 미치는 효과는 예상과 어긋날 수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그러나 새롭게 보는 경험이 제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예요.

영상과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술과 장치를 작업에 활용해왔죠. 작업은 보통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먼저 질문이 떠오르면 그에 적합한 매체를 찾아가는지, 혹은 특정한 기술이나 이미지, 현장과의 만남에서 출발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언제나 구체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해요. 그 경험은 기술이나 이미지일 때도, 특정한 현장일 때도 있고요. 서사 영화를 제작하는 일반적인 방식처럼 프리프로덕션을 마치고 정해진 기간에 촬영한 뒤 편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촬영과 편집을 반복하면서 중간 단계를 누적해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곤 해요. 그러다 보니 주제를 정하고 작업에 진입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음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거나 새로운 맥락을 만나게 됩니다. 탐구하려는 질문에 따라 매체는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편인데, 이는 던지는 질문 자체가 매체와 깊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경험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기준과,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요?

제 경험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어떤 경험이나 장면이 유독 뇌리에 오래 남으면 ‘왜 이렇게 보이지?’, ‘왜 이상하게 느껴지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때 느낀 구체적인 감상을 따라가보면서 왜 그런 감각이 생겼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지고요.

‘echo’ 설치 전경,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1’20”, 2021
장영해, ‘Glove box’, 글러브 박스, 실리콘, 혼합 재료, 75×25×110cm, 2024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감각하게 만드는지 역시 작업의 주요한 축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작업을 통해 어떤 감각을 만들어내고자 하는지, 이를 위해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돌이켜보면 제 작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가 서로 다른 감각 사이에 괴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3’이라는 작품에서는 레몬을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발사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할 수 없어요. 레몬이 어딘가에 부딪혀 터지고 난 뒤에야 소리나 냄새 같은 다른 감각을 통해 그것이 레몬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눈으로 보는 것과,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는 것 사이에 물리적인 지연이 생기는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각 감각기관이 그것을 서로 다른 시간에 인지하면서 생기는 간극에 관심이 있어요.

최근에는 ‘blur, blur’처럼 실제로 촬영된 이미지와 AI가 추론해 만든 이미지가 하나의 움직임 안에 공존하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바라보는 방식의 면에서 어떤 변화에 주목하고 있나요?

AI는 제게 방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도구이면서, 구체적으로는 그것이 인간의 지각과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두며 작업해나가고 있어요. 특히 우리가 AI를 사용하면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고요. 알고리즘의 방대한 연산이 도출한 이미지를 인간이 어떻게 지각하는지, 딥페이크로 재구성한 신체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하며 작업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간의 작업을 설명할 때 ‘폭력’과 ‘욕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키워드들은 작품 안에서 신체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나요?

거대한 추상어나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 늘 거부감을 느껴온 터라 구체적인 예시로 설명하고 싶어요. 작품 ‘𝄆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 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에서는 1시간가량 번갈아 가며 폴댄스를 추는 남녀 폴댄서의 몸짓을 통해 역할놀이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여자’와 ‘여자를 수행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에요. 눈앞에서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몸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왔던 여성성의 관습이 뒤집히는 순간이 생깁니다. 관습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로서 신체를 보여주고자 한 작업이었어요. 반면 ‘cobalt’에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현재의 내가 마주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추상적인 폭력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 ‘그것을 몇 십 년 뒤의 나는 어떻게 아카이빙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이 작업은 일제강점기에 코발트 광산이었다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이뤄졌음에도 아직 제대로 발굴되거나 보존되지 못한 채 골프장이 들어선 산을 조명합니다. 학살 피해 유가족은 자신의 스무 살 이전의 시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네 살 때 있었던 학살 사건에 관해 너무나 여러 차례 듣고 말해온 까닭에 당시를 생생히 증언하죠. 여러 증언이 섞인 그의 말과 생은 그 자체로 진실이고, 저는 그 증언과 신체를 하나의 광물처럼 바라보려 했어요. 마치 로드무비를 찍듯 그 산을 직접 오르며 촬영하고, 누군가의 것 인지 알 수 없는 뼈, 유가족의 신체, 눈 덮인 산, 골프장을 연속된 풍경으로 보여줬습니다.

개인전 설치 전경, 혼합 재료, 얼터사이드, 2024
사진: 박승만

이어진 작품 ‘annie, cobalt’는 서로 다른 두 편의 필름을 하나의 옴니버스로 구성한 작품입니다. ‘annie’에서는 동시간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며 기계 비전과 자동 이미지 생성 시스템, 미디어 스펙터클의 문제를 다루고, ‘cobalt’에서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민간인 학살의 기억이 남은 장소와 유가족의 증언을 따라가죠. 이처럼 역사적 사건과 현실의 문제를 작업으로 가져올 때, 예술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거쳤나요?

‘annie, cobalt’는 거대 서사를 처음 직접적으로 작품 안에 들여온 작업이에요. 저는 사회운동가가 세상을 향해 성명을 내는 방식과 예술 작업이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또 다르고, 또 각각이 미치는 영향 역시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작업을 통해 운동이나 이데올로기적 선전과 다른 위치에서 어떻게 발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품어오다가, 이를 처음으로 ‘annie, cobalt’에서 다루게 됐어요. 앞서 ‘cobalt’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했지만,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작품의 목적이 아니었어요. 내가 직접 겪지 못한 사건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또 이러한 사건을 대안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아카이빙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예술이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방식은 사회운동처럼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 보나요?

사회운동가가 어떤 입장이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면, 예술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꼭 하나의 입장이나 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봐요. 저 역시 작업을 통해 관람객에게 어떤 답을 주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고요. 오히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그것이 관객에게 어떻게 닿으며 어떤 새로운 질문을 촉발하는지가 제게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직접 겪지 않은 사건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로, 그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을 전달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발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편이고요.

마지막으로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작업이나 추후 선보일 프로젝트도 궁금합니다.

오는 9월에 영등포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단체전 2026 예술기술도시 <인류학 연습: 인간은 우리인가?> 참여를 앞두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cobalt’의 후속작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땅의 겹침에 대한 탐구를 가상 공간으로 확장하고, 스크린 골프를 작업에 가져와 신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먼저 ‘cobalt’의 영상 속 학살지의 골프 코스와 동일한 형태로 3D로 구현한 스크린 골프 코스의 풍경을 촬영한 뒤에, 거기에 물리적인 타격이 엔터테인먼트로 전환될 수 있도록 작동하는 기술적 조건들을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재킷, 팬츠,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티셔츠 본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