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결혼

지속 가능한 결혼식
박재용 & 서새롬

 

비혼주의자 둘의 결혼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하고 지금의 남편에게 “우리 아이의 아빠가 되어줄래?”라고 제안하면서 우리의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내게 결혼은 배우자를 맞는 행위라기보다는 가족의 탄생에 더 가까웠다. 일종의 생활 동반자로서 함께 살고 삶을 배우며, 아이라는 작은 존재를 키우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결혼식 각각 미술관 큐레이터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우리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결혼식을 피치 못해 가야 하는 경조사가 아니라 궁금해서 한번 가보고 싶은 행사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공인 행사보다는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게끔 기획하는 데 힘썼다. 이 즐거운 축제의 테마는 ‘지속 가능성’. 아이, 그러니까 미래 세대를 생각하며 결심한 결혼이니만큼 삶, 관계, 지구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갈 이야기의 지속 가능성을 결혼식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온라인 청첩장과 드레스코드 우리는 종이 청첩장 대신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기 위해 드레스와 턱시도 대신 각자 입고 싶은 옷을 중고로 구매했고, 예식장도 서울시에서 무상으로 대여하는 용산가족공원으로 정했다. 하객들에게는 드레스 코드를 정해주었다. ‘옷장에 꼭 한 벌은 있는 가장 화려한 옷’. 예식 전에 우리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 모은 물건을 파는 플리마켓을 열었고, 피로연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도 했다. 결혼식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했다. 그 덕분에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축의금은 계좌 이체는 물론 미국의 온라인 지불 시스템인 페이팔,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축의금 사용처도 선택하게끔 세팅해두었다.

평범한 행사 누구의 아들이나 딸이 결혼한다고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족인 두 개인의 모습으로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보겠다고 기획한 행사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결혼식이 아니라 현대미술 프로젝트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이만큼 평범한 결혼식이 또 있을까? 우리 두 사람은 결혼식이라고 해서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시는 입을 일 없는 옷을 입고, 해보지 않은 메이크업을 하고, 그날에 특화된 행동을 하는 게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것 아닐까.

 

존재 양식의 변화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얼마 전, 혼주 대신 모셨던 10명의 친구로 구성한 ‘결혼자문위원’에게 짧은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인생의 맛’이라는 이름의 레이어드 젤라토를 만들어 주었던 젤라티에 ‘녹기 전에’에 들러 젤라토를 먹으며 결혼 1주년을 기념했다. 결혼식을 우리 두 사람답게 올렸듯, 결혼기념일도 우리답게 보냈다. 최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배우 조현철이 수상 소감을 말하기에 앞서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다며 한 말이 있다.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어쩌면 결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함께 지속할 수 있는 존재 양식의 변화이니 말이다.

 

 

 

협소 신혼 주택
정진욱 & 이유림

 

협소 신혼 주택 둘 다 공간 디자인을 업으로 삼다 보니, 신혼 생활의 시작은 우리 손이 닿은 곳에서 하길 바랐다. 또 획일화된 공간을 피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공간을 찾고 싶었지만, ‘찾는 것보다는 우리가 만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마음껏 기획할 수 있는 주택에 눈이 갔고, 들일 수 있는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크기는 협소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협소 주택 우리가 가진 최대 예산 3억원으로 서울 시내에 위치한 주택을 찾으려면 그 수가 많지 않을 뿐더러, 지은 지 40~50년이 된 건물이 대부분이다. 이런 건물은 보통 난방, 수도 등의 시설이 노후해 수리에 비용이 많이 든다. 다행히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2007년에 완공해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때문인지 난방, 배수, 방수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신혼집인 동시에 사무실이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동네에 이런 집이 있었나?’ 하고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계단이나 도로에 맞닿은 주택을 원했는데, 이 집이 딱 그랬다. 게다가 강아지들과 산책하기에 좋은 성곽길과 공원도 바로 뒤에 있으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집을 결정한 우리는 반지, 드레스, 결혼식 등 일련의 과정을 최대한 간소화했다. 우리의 첫 집을 완성하기 위해.

 

이치 하우스 1층 8평(약 26㎡), 2층 7평(23㎡) 규모의 작은 주택이다. 1층은 아파트로 치면 거실 겸 주방 역할을 한다. 하지만 흔히 필수 가전이라고 하는 TV나 가스레인지는 없다. 지인들을 초대하고 둘이 앉아 일할 수 있도록 1층 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긴 테이블을 두었다. 이와 반대로 공간이 부족할 때 쉽게 샤워부스로 대체할 수 있는 욕조는 2층 침실에 큼지막하게 놓았다. 둘 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반신욕을 하는 걸 큰 행복으로 삼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즘 입욕제 대신 약초를 넣는 약초 입욕에 푹 빠져있다. 다양한 주제로 이상형 월드컵을 하면 한 치의 오차없이 다른 걸 고르는 우리가 과연 무탈하게 이 공간에 서로의 취향을 잘 녹여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공간이 작으니 공간에 넣고 싶은 요소의 우선순위가 오히려 명확해졌고,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관은 같다는 걸 이 집을 만들며 알게 되었다. 연애하는 7년 동안 다르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이다.(웃음)

 

 

이치 하우스의 미래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 우리가 이끌어가는 건축사무소의 모토이자 신념이다.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녹여낸 이 집은 우리 부부를, 진정 우리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웨딩
임종혁 & 신지혜

 

제로 웨이스트 결혼식 제로 웨이스트, 말 그대로 ‘쓰레기가 없는 결혼식을 만들자’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웰니스 문화 기획자인 나는 사람과 자연, 동물이 사이좋게 공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가치관이 결혼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 것이다. 친환경적 기조가 이전보단 대중에게 익숙하긴 하지만, 참고할 만한 에코 프렌들리 결혼식 사례는 찾기 힘들었다. ‘까짓 거 내가 처음으로 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결혼식은 그동안 내가 쌓은 경험을 모두 풀어놓는 자리가 되었다.

가치관의 결합 결혼 준비의 시작은 지금의 남편이 된 그 당시 남자 친구에게 내 계획을 알리는 것이었다. 지인을 많이 모아두고 성대한 호텔 결혼식을 올리길 꿈꾸던 남편은 ‘제로 웨이스트 결혼식’을 하겠다는 내 말을 듣고 아쉬워했지만, 내가 지향하는 삶을 묵묵히 공감해주는 사람이다 보니 이내 아쉬움을 걷어내고 결혼식 기획에 동참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면 남편은 나의 다양한 기획안을 좁혀 주는 역할을 했고, 웨딩 플래너의 도움 없이 결혼식의 모든 준비 과정과 결과를 오롯이 우리가 만들어냈다.

 

버려지는 것이 없으려면 홀을 꾸미는 장식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소는 푸른 나무와 꽃이 가득한 곳으로 정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음식. 어른들도 많이 참석하시기 때문에 100% 비건 메뉴를 준비하기는 어려웠다. 많은 케이터링 업체를 만나보고 어렵사리 우리 기준에 맞는 팀을 찾았고, 제철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비건 푸드를 준비했다. 하객은 이 음식을 일회 용기 대신 다회 용기에 담아 먹었고, 냅킨 자리에는 소창 손수건을 올려두었다. 장식을 위해 잠깐 쓰이는 꽃은 키우는 과정에서도, 예식장에 옮기는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꽃 대신 뿌리 식물을 세팅했고, 그 식물들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하객에게 답례품으로 드렸다. 에코 라이프의 기본은 재사용. 재생 용지에 인쇄한 청첩장은 잘라서 예식 당일 테이블 세팅 소품으로 변신했고, 장식용 패브릭은 신혼집의 커튼과 쿠션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새로운 가정, 생명이 연결된다는 의미를 담아 양가 어머니가 나무에 흙을 덮고 물을 주는 세리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무해한 결혼식을 하고 싶다면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건, 알다시피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최대한 쓰레기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에 매달리다 실패하기보단 대체재를 사용하는 정도로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일회 용기 대신 다회 용기, 냅킨 대신 손수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신혼여행 대신 세계 봉사 여행
홍석남 & 김현영

 

1년간의 신혼여행 프러포즈 다음으로 이어진 건 남편의 놀라운 제안이었다. 서로를 위해 모든 걸 써도 모자란 신혼여행을 하자고. 게다가 1년이나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말이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라는 생각에 흥미가 생겼다. 근데 5성급 리조트, 달콤한 샴페인 같은 신혼여행의 정석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정반대로 흘러갈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화장실을 짓고,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 만들기 대회를 열고 있었다.(웃음)

분명히 신혼여행이라고 했다 3백55일 동안 28개국을 누비는 우리 부부의 신혼 횡단기가 시작됐다. 보육원의 화장실을 지어주거나 식량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시작해 쓰레기가 유일한 장난감인 아이들의 환경을 바꿔주기 위해 장난감 만들기 대회를 열고, 도로가 개발되지 않은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밤중 교통사고 방지 모자’를 만들어 펀딩도 진행했다. 우리가 모든 시간을 전부 봉사에 바친 건 아니다. 히말라야 트레킹도 하고 신혼여행의 성지, 몰디브에도 갔다. 물론 평범하진 않았다. 여행 비용이 단돈 1백만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작은 돈으로 어찌 그렇게 신나고 알차게 즐겼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여행의 선물 24시간 내내 붙어 있으니, 다툼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화해하는 방법이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들 하지 않나. 우리는 긴 여행을 통해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때문일까. 우린 지금도 툭닥거려도 그때뿐, 오래가지 않는다. 여행 전, 우리는 서로 바라는 점이 참 많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인 여행을 하다 보니 저절로 깨달았다. 상대가 내 옆에 그저 건강하게 존재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그럼에도 봉사 여행 물론 편안한 휴양지에서 보내는 신혼여행도 의미 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동안 ‘이 사람과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매 순간 들었다. 서로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행 전, 우리는 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은 나눌 때 더 커진다’라는 진부한 표현만큼 우리의 신혼여행을 완벽히 설명할 문장이 없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작은 것도 쪼개 나누니 오히려 더 얻고 행복해진 건 우리 부부였다. 이 감정이 참 신기했다. 우리가 부부가 되며, 이런 감정과 느낌을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곧 태어날 아이와함께떠나는여행을설레는맘으로기다리면서.

 

 

 

게르 신혼집
강한빈 & 박지영

 

한국판 게르 작은 화단이라도 화초를 가꾸며 마당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집에 애착이 더 생기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가진 터라 현대인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나 빌라는 우리의 선택지 목록에는 없었다. 때마침, 전북 장수에 아내의 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어 이곳에서 살기로 한 우리가 소박하게 마련할 수 있는 주거 형태는 이동식 주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선택하는 이동식 주택의 형태는 컨테이너다. 그런데 절대 컨테이너 주택에 살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다면, 형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발휘한 상상력의 결과는 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주택인 게르다.

미완성 신혼집 우리는 건축 전문가인 부모님과 가족의 도움으로 게르를 지어 올렸다. 게르 전문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건축 기간은 오래 걸렸다. 땅을 다지고 덱을 까는 것으로 시작한 게르 짓기. 덱 위에 큰 골조를 올리고 지붕살을 끼워 넣는다. 게르의 골조를 양털로 덮고, 비를 막아 줄 방수 천, 하얀 천막 등을 차례로 덧씌워 어엿한 집의 모양을 갖춰나갔다.

 

 

신혼 생활의 방식 우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게르를 체험해보기도 했다. 게르 전문가가 와서 샅샅이 뜯어보면 이게 무슨 방식이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하지만 괜찮다. 어설퍼도 오롯이 우리 둘과 가족의 힘으로 쌓아 올린 첫 신혼집이니까. 결국 우리 머릿속에 그린 게르와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었지만 이 또한 괜찮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란 애정으로 고쳐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둥근 게르처럼 우리가 평범한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선택했다면 이만큼 기대하고 기다렸을까? 어설프지만, 스쳐 지나갈 집이 아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 공간을 나눌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 각진 곳 없는 게르처럼, 둥글고 자연스러워지는 지금의 우리가 좋다.

 

 

 

귀촌 신혼 일기
오의진 & 이정민

 

탈서울 라이프 각각 패션업계와 광고업계에 몸담던 우리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지쳐 있었다. 막연하게 젊은 시절은 도시에서 열심히 살고, 은퇴 후에나 한적한 시골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의 지친 모습이 어슴푸레 보였던 걸까. “도시에서 크게 이루고자 하는 게 없다면 시골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아.” 부모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결혼과 동시에 귀촌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귀촌 준비 결혼 준비가 곧 귀촌 준비였다. 드레스를 알아보는 동시에, 우리가 농사짓고 살아갈 지역의 목록을 정리했고, 신혼여행지를 고르며 부모님이 계신 전북 임실행을 결정했다. 그런데 임실에서 빈집을 구하기가 어려웠
다. 그렇다고 폐가를 고쳐 사는 건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여의치 않았다. 임실 생활을 먼저 익히고 집은 차차 지어 올릴 것을 감안해, 우선 농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탈서울 라이프를 꾸려가는 중이다.

 

 

풍요 속의 빈곤SNS에 귀촌 생활을 검색하면 사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알짜배기 정보는 별로 없다. 직접 찾아가서 묻고 몸으로 부딪혀 얻는 경험만이 정보다운 정보다. 전기는 어떻게 연결하는지, 물은 문제없이 나오는지. 이처럼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임실의 신혼 생활이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인생의 동반자 같던 로켓 배송, 새벽 배송이 없는 생활이란.(웃음) 가끔은 도시의 인프라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우리는 도시의 빠른 속도와 편안함 대신, 시골의 느리고 조용한 평온을 선택했으니까.

리틀 포레스트 회사에서 바쁘게 하루를 보내던 도시생활과 달리, 이곳에선 모든 일과에 여유가 생겼다. 아침에 눈뜨면 닭에게 사료와 물을 주고, 밤새 닭이 낳아놓은 달걀을 챙겨 간단히 아침상을 차린다. 무더운 날에는 이른 아침과 초저녁에만 밭일을 하고 오후는 베이킹, 우리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편집, 인스타 툰 등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흙을 매만져 씨앗을 뿌리는 봄, 초록이 무성한 여름에는 고구마와 고추를 심고, 가을엔 이 작물을 모두 수확한다. 여름에는 풀벌레와 매미 소리가,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이 더해져 우리의 보금자리에 운치를 더한다. 농사는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노동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수확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흙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따는 일련의 과정에서 커다란 성취감도 얻는다. 마트에서만 보던 채소와 과일이 자라나는 과정은 도시에선 느끼기 힘든, 매 순간 보람의 연속이다.

귀촌 신혼 일기 이곳에 우리 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도시에서는 매일같이 사람들과 부딪으며 살았다면, 지금은 우리 부부, 강아지 ‘쿠모’와 부대끼며 사는 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