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의 열기

이제훈의 열기

지금껏 본 적 없던 거칠고 뜨거운 이제훈이 나타났다.

니트 터틀넥 슬리브리스 톱 프라다(Prada).
니트 터틀넥 슬리브리스 톱 프라다(Prada).

화보 촬영을 마치고 이제훈과 마주 앉아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의 45분쯤은 영화 <박열>에 대해, 나머지 10분은 연기와 영화 그리고 마지막 5분은 그의 사적인 일상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박열>의 개봉을 목전에 둔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질문에 혹여 빠뜨린 내용은 없는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가며 말을 이어가는 것 같았다.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최적의 단어를 찾아가며 문장을 재차 고치고 다듬어 대답을 내놓았다. 이번에 연기 한 작품은 어떤 영화냐는 짧은 질문에는 새 작품에 관해서라면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는 듯 명확한 호흡으로 답했다. 주요 인물들의 삶과 심리부터 스토리 전개, 영화에 담긴 메시지와 배경이 된 시대의 역사적 사실까지. 그가 내어놓은 답변은 모두 매우 또렷하고 자세했다.

배우 이제훈이 드라마 <시그널> <내일 그대와>,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등 여러 작품을 끝마친 직후 만난 영화 <박열>. 실존 인물인 주인공 ‘박열’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다. 가진 건 오로지 신념뿐인 스물두 살의 청년이 핍박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굳은 의지를 드러낸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력을 상대로 달려들길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제훈은 이토록 뜨겁고 단단한 청춘 박열을 연기했다. 배우의 길에 들어선 이래 가장 새로운 인물로 살았다는 그는 이제 막 작품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보통의 삶으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오버사이즈 재킷, 쇼츠 모두 페르드르 알렌느(Perdre Haleine), 브이넥 니트 톱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슈즈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
오버사이즈 재킷, 쇼츠 모두 페르드르 알렌느(Perdre Haleine), 브이넥 니트 톱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슈즈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
셔츠와 팬츠 모두 질샌더(Jil Sander).
셔츠와 팬츠 모두 질샌더(Jil Sander).
니트 터틀넥 슬리브리스 톱 프라다(Prada), 화이트 셔츠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팬츠, 스트랩 샌들 모두 프라다(Prada).
니트 터틀넥 슬리브리스 톱 프라다(Prada), 화이트 셔츠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팬츠, 스트랩 샌들 모두 프라다(Prada).
스컬 패턴 베스트 구찌(Gucci), 블루 그러데이션 셔츠, 데님 쇼츠 모두 질샌더(Jil Sander).
스컬 패턴 베스트 구찌(Gucci), 블루 그러데이션 셔츠, 데님 쇼츠 모두 질샌더(Jil Sander).

영화 <박열>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포스터부터 범상치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제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어제 처음 <박열>의 완성본을 봤다. 내가 봐도 새로운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말끔한 모습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터라 이미지를 한번 뒤집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차였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때마침 반가운 제안을 해 맡은 역할이다.

배우로서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이니 촬영할 때 마음가짐이 다른 때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박열>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 읽었을 때는 그저 놀랍기만 했었다. 이렇게 엄청난 삶을 산 인물을 모르고 살았다니. 박열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다 아나키스트가 되고, 당시 조선 사람으로선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는 동경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펼친 대단한 위인이다. 박열의 삶을 자세히 알게 된 후에는 부담감이 점점 더 커졌다. 영화적 재미 이상의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열이라는 인물의 숭고한 삶을 더 묵직하고 진중하게 담아내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의 섣부른 해석으로 행여 이야기가 왜곡되어 전달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고. 그래서 이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어는 때보다도 나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였던 것 같다.

부담스러운 만큼 공부도 많이 했겠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녹여내야 했기 때문에 우선 다양한 자료를 많이 찾아 읽었다. 그중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을 특히 여러 번 봤다.

 

체크 재킷과 셔츠 모두 프라다(Prada), 베이지 쇼츠 노앙(Nohant).
체크 재킷과 셔츠 모두 프라다(Prada), 베이지 쇼츠 노앙(Nohant).
네이비 수트, 셔츠, 슈즈 모두 구찌(Gucci).
네이비 수트, 셔츠, 슈즈 모두 구찌(Gucci).

작품의 시대 배경이 일제강점기인데다 주인공은 실존했던 독립운동가다. 관객의 시각이 한층 날카롭고 예민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의 이야기는 늘 민감한 소재니까. 그래서 모든 장면에 더 조심스럽게 임했다. 상상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감정을 마구 내보이는 식이 아니라, 대본에 나오는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와 대사 한 줄 한 줄을 촘촘하게 설계해 연기해야 했다. 단순하게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한 식상한 표현들은 배제하려 노력했고, 모든 테이크에 담긴 의미를 재차 곱씹어 생각하는 데 공들였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영화들을 보면 대개 일본 세력에 맞서 싸우는 액션이 주를 이룬다. <박열>은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당시의 인물들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에 부딪혔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해방의 역사를 새롭게 풀어낸 뜻깊은 영화다.

촬영 현장에서 육체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박열의 실제 외모와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매번 몇 시간에 걸친 정교한 분장 과정을 거쳤다. 나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많이 힘들었을 거다. 애써 한 분장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촬영 기간에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극 중 박열이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는데 그러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 여러 이유로 내내 굶었다. 영화 촬영장에 오는 밥차의 식단이 맛있기로 유명한데, 밥때마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단백질 셰이크만 마셨다. 지금 생각해도 괴로운 순간이었다.

박열처럼 지켜내고 싶은 신념이 있나?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게 내 인생의 첫째다. 여유가 좀 생기면 일상적인 즐거움도 찾고 싶은데 아직은 그 방법을 잘 모른다. 다만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연기를 아주 잘하고 싶고, 또 좋은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거다.

좋은 작품, 좋은 연기란 무얼까? 어릴 때부터 영화를 아주 많이 봤다. 그때부터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행복해지는 걸 느끼곤 했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을 남긴 영화는 몇 년이 지나 다시 봐도 처음 보고 느낀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영화가 좋은 영화 아닐까 싶다. 그런 작품을 위해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곧 좋은 연기일 테고.

영화 속 박열은 스물두 살이다. 이제훈의 20대 초반은 어땠나? 눈빛이 반짝반짝했던 것 같다.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았고, 본격적으로 연기자를 꿈꾸기 시작한 때였거든. 한편으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때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배우의 길에 이렇게 나를 내던져도 될까 하는 생각에 혼란을 느꼈었다. 조금 겪고 나서 보니 연기자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이고, 또 그 선택이 타당했다는 걸 매번 증명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배우의 길에 들어선 걸 후회한 적도 있을 것 같다.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다만 일을 하면서 한창 바쁠 때는 괜찮은데, 작품 사이에 시간이 나면 어딘가 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채워나가는 방법을 열심히 찾는 중이다. 좁은 생각에 갇히지 않게 세상을 좀 더 넓게 둘러보며 지내면 마음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 공허함은 쉬지 않고 가열차게 달려왔기 때문에 드는 걸지도 모른다. 드라마 <시그널>부터 <내일 그대와>에 이어 <박열>, 지금 촬영 중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까지.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일했다. 특별히 그러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이 작품만 끝나면 쉴 수 있겠구나 싶다가도 곧바로 또 마음이 가는 작품을 만나는 일이 반복됐다. 한 작품을 마치면 캐릭터의 여운에 좀 오래 휩싸이는 편인데, 그렇다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편도 아니다.

 

화이트 니트 카디건 일레븐티(Eleventy), 화이트 니트 피케 셔츠 맨온더분(Man on the Boon).
화이트 니트 카디건 일레븐티(Eleventy), 화이트 니트 피케 셔츠 맨온더분(Man on the Boon).

ⓒ MARIECLAIREKOREA 사전동의 없이 본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About the Author:

연관 검색어
Hide and Ride

Hide and Ride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비타민 커플 이준, 정소민이 브라운관을 벗어나 카메라 앞에 섰다.

이준 재킷 닐 바렛(Neil Barrett),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이어링 아이노(AiN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소민 원피스 헨릭 빕스코브 바이 비이커(Henrik Vibskov by Beaker), 샤 원피스 와이씨에이치(YCH),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이준 재킷 닐 바렛(Neil Barrett),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이어링 아이노(AiN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소민 원피스 헨릭 빕스코브 바이 비이커(Henrik Vibskov by Beaker), 샤 원피스 와이씨에이치(YCH),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셔츠 와코 마리아(Wacko Maria).
셔츠 와코 마리아(Wacko Maria).
블라우스 다홍(Dahong), 원피스 앳코너(a.t.corner),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블라우스 다홍(Dahong), 원피스 앳코너(a.t.corner),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JUNG SO MIN 

채송화처럼 여린 정소민은 드라마 속 ‘변미영’보다 훨씬 씩씩하게 촬영에 임했다. 꼼꼼히 모니터를 확인하고 시안과 똑같은 포즈를 바로 취하는가 하면 시원시원한 웃음으로 주변 사람들은 물론 이준까지 웃게 만들며 촬영을 리드했다.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정소민은 또 한 번의 화양연화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이하 <아이해>) 시청률이 31%를 넘었다.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일단 다양한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각 인물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로운 것 같다. 나 역시 다음회 대본이 궁금하다. 무엇보다 재밌게 봐주시고 계속 관심 가져주시는 시청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에 ‘변미영’ 계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일반인이 변미영으로 빙의해 운영하는 계정이다. 변미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방증이다. 변미영과 정소민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가? 변미영 계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트위터를 안 하지만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너무 감사하다. 변미영은 지금의 나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예전의 나와는 굉장히 다르다. 예민함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요즘의 나는 거의 나무늘보에 가깝다. 여러모로 미영이와 비슷하다.

변미영은 유도 선수의 꿈이 좌절된 후 오랜 ‘취준생’ 기간을 거쳐 인턴 매니저가 됐다. 정소민에게도 무언가를 위해 오랫동안 움츠린 시간이 있었나?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이 항상 취준생이라는 느낌을 준다. 작품에 들어가면 취직이 되는 것이고, 그 전까지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준비하는 취준생 같은 기분이 든다.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했을지 생각해본 적 있나? 연기자가 아니면 솔직히 상상이 잘 안 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좋고 재미있고 즐겁다. 그에 따른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그걸 다 감당할 만큼 연기하는 일을 사랑한다. 아마도 배우가 아니었다면 원래 전공을 살려서 무용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극 중에서 엔터테인먼트사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실제와 반대의 입장에 서보니 어떤가? 촬영 중이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안 배우님’ 소리가 튀어나오고, 무의식중에 차 문을 열어주고 챙기게 되는 나를 보며 너무 웃기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고생하는 우리 매니저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방영분까지는 아직 안중희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둘의 로맨스가 결실을 이룬다면 꼭 하고 싶은 데이트 신은? 그냥 손잡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나의 현실 로망이기도 하다.

상대 배우 이준과의 호흡은 어떤가? 더할 나위 없다. 최고다.

<아빠는 딸>에 이어 <아이해>까지, 개성이 분명한 캐릭터를 맡았다. 또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어떤 역할인가?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한 연애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내 나이대의 보통 여자를 연기해보고 싶다.

 

이준 니트 톱과 팬츠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정소민 블라우스 르메르(Lemaire), 스커트 스튜디오 톰보이(Studio Tomboy),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000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준 니트 톱과 팬츠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정소민 블라우스 르메르(Lemaire), 스커트 스튜디오 톰보이(Studio Tomboy),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000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준 재킷 닐 바렛(Neil Barrett),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이어링 아이노(AiNo). 정소민 원피스 헨릭 빕스코브 바이 비이커(Henrik Vibskov by Beaker), 샤 원피스 와이씨에이치(YCH),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이준 재킷 닐 바렛(Neil Barrett),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이어링 아이노(AiNo).
정소민 원피스 헨릭 빕스코브 바이 비이커(Henrik Vibskov by Beaker), 샤 원피스 와이씨에이치(YCH),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LEE JUN 

이준은 밤샘 작업에 이은 화보 촬영에도 지친 기색 없이 유쾌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이 장난기 많은 청년이 카메라 앞에 서면 눈빛을 백팔십도로 바꾸며 완벽하게 ‘안중희’로 변신한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이준이 특별한 건 색기 넘치는 눈빛 때문도, 장난기 많은 미소 때문도 아니다. 이준이 가진 의외성, 예측 불가능성은 뻔한 역할도 ‘이준이라서 특별한’ 무언가로 만들어버린다. 조각 같은 얼굴이나 훤칠한 몸매처럼 배우에게 필수로 여겨지는 조건들이 이준 앞에서만 이상하게 무용지물인 이유다. 어느 순간, 이준은 이미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됐다.

일주일에 촬영이 비는 날이 하루라고 들었다. 오늘은 촬영을 하지만 보통 뭐 하고 지내나? 일단 잔다. 나는 수면욕이 매우 강하다. 재미있는 대답을 하고 싶은데 촬영 중에는 여가 시간이 너무 뻔하다.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대본을 본다. 인스타그램도 가끔 하고(웃음) 개인 SNS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재미있다.

이준이 이토록 완전한 주말 가족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이해> 작품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해야겠다는 결심은 언제 섰나? 이렇게 긴 호흡의 드라마를 해본 적이 없다. 미니시리즈가 보통 16부작이니까 그 기준으로 치면 호흡이 3배나 길다. 궁금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있었지만 배울 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미니시리즈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끝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50부작이니 캐릭터도 점점 풍성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시청자 연령층도 더 넓어진 것 같다. 드라마 출연 소식이 알려졌을 때 할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다. 효도했다.(웃음)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과 현장 분위기도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캐릭터 특성상 초반에는 혼자 찍는 신이 많았다. 초반에는 기대한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금도 사실 한수(김영철)의 집 안에서 촬영하는 신 외에는 거의 미영(정 소민)과만 찍는다. 한수 집 안 신은 KBS 스튜디오에서 주 1회 대대적으로 촬영하는데,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프로 의식에 감탄하곤 한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거의 흐트러짐 없이 촬영이 착착 진행되고, 그 안에 진한 감정 연기도 살아 있다. 역시 선생님들께 가장 많이 배우고 있다.

‘발연기로 곤욕을 치르는 아이돌 출신 배우 안중희’ 역할이다. 다행히 이준은 이제 믿고 보는 배우가 됐지만 ‘안중희’가 가진 고민을 하던 시절도 있었을 것 같다. 연기하면서 어땠나? 내가 발연기 했다는 얘기냐?(웃음) 가수로 데뷔했다고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만 난 영화 <닌자 어쌔씬>으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고, 꾸준히 작품을 해왔다. 캐릭터는 캐릭터로 보이기를 바랄 뿐, 실제로 과하게 감정이입을 해서 연기하지는 않았다.

연기했던 발연기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최근에 극중극인 <오마이보스>의 상대 여배우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중희가 감정이 메마른 캐릭터여서 갈피를 못 잡는 장면이었는데 시청자 반응이 좋았다. 여러 버전으로 연기했는데 멜로 장면에 나의 전작인 <갑동이> ‘태오’ 가 나왔다는 반응이더라. 사실 초반에 ‘발연기’를 연기하는 부분은 이걸 진짜 국어책 읽듯이 해야 하는지, 과하고 웃기게 해야 하는지 너무 고민됐다. 중희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면에 외로움이 있는데다 발연기까지 해야 해서 그 감정선을 오가는 게 많이 어려웠다.

안중희에게는 아버지의 정을 느껴보지 못해 생긴 트라우마와 결핍이 있다. 이준에게 결핍이 있다면 무엇인가? 특별히 없다. 있어도 나만 알 거다.(웃음)

상대 배우 정소민과의 멜로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함께 연기하면서 어떤 걸 느끼고 있나? 아직은 관계 설정상 달콤할 수만은 없다. 중희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다. 무의식중에 미영이를 바라볼 때는 무장해제됐다가 본인의 행동을 자각할 때는 스스로 미쳤다고 자책한다. 보시는 분들이 그 감정 차이를 자연스럽게 느끼셨으면 좋겠다. 소민 씨는 정말 좋은 배우다. 유쾌하고 상대 배우를 배려해준다. 소민 씨가 미영이를 연기해서 조금은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미영’이 더욱 사랑스러워진다고 생각한다.

극 중에서 안중희는 미영에게 ‘츤데레’처럼 군다. 실제 이준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대하나? 잘해주는 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웃음)

작품 밖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이준에 대해 잘 모르겠다. 일단 이준은 영화형 인간인가, 음악형 인간인가, 책형 인간인가? 영화와 음악 중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영화와 즐겨 들은 음악은? 영화는 <미녀와 야수>, 음악은 캐시미어 캣(Cashmere Cat)의 ‘Quit’.

이준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집에서 쉬는 것.

7월이다. <아이해>가 끝나고 짧게라도 쉴 계획이 있나? 있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 드라마 종료 직후에는 일단 팬들과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지만 국내외에서 팬미팅을 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집에서 원 없이 쉬고 싶다. 내가 워낙 집돌이라.

 

1707mcmgcelmr013_05

 

ⓒ MARIECLAIREKOREA 사전동의 없이 본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About the Author:

연관 검색어
,
이준기의 동력

이준기의 동력

배우 이준기는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그렇게 나아간다.

m-22570_r1

‘현장에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하는 연기’.

이제 배우 이준기의 작품을 보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인터뷰가 한 사람에 대한 단 몇 시간 분량의 단편적 인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배우 이준기를 두고 유난하고도 맹목적인 확신이 든 이유는 한 시간 동안 나눈 대화의 밀도 때문일거다. 연기에 대한 갈증과 욕심을 이토록 적극적이고도 가감 없이 토로하는 배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지금 막 연기의 재미를 깨우친 신인 배우가 아니라 13년 차 배우라면 더더욱. 대화 도중 그는 1년에 한 작품은 ‘하고 싶다’는 말을 곧바로 ‘해야 한다’라고 정정했다.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이준기는 그렇게 나아간다. 올여름 그는 tvN 심리 수사극 <크리미널 마인드> 의 NCI 요원 ‘현준’이 되어 다시 뛰고 구른다. 2005년부터 미국 CBS에서 방영돼 시즌 12까지 큰 사랑을 받은 바로 그 작품이다. 극성스러운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대작의 리메이크작, 창사 이래 최대 제작비를 투입한 tvN의 2017년 하반기 야심작이라는 부담을 뛰어넘는 것 역시 기대와 설렘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평생을 배우이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상상했을 때 고통스럽다기보다 되레 기쁘고 당연한 듯 여겨진다면 그게 바로 진짜 평생 해도 되는 일일 것이다.

 

패턴 셔츠 프라다(Prada), 쇼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네크리스와 뱅글 모두 토마스 사보(Thomas Sabo).
패턴 셔츠 프라다(Prada), 쇼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네크리스와 뱅글 모두 토마스 사보(Thomas Sabo).
셔츠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쇼츠 컬러 바이 무이(Kolor by MUE), 네크리스와 링 모두 불레또(Bulletto), 슈즈 에르메스(Hermes), 가죽 재킷 닐 바렛(Neil Barrett),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쇼츠 컬러 바이 무이(Kolor by MUE), 네크리스와 링 모두 불레또(Bulletto), 슈즈 에르메스(Hermes), 가죽 재킷 닐 바렛(Neil Barrett),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에트로(Etro), 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팬츠 발렌티노(Valentino), 벨트 생 로랑(Saint Laurent), 액세서리 모두 불레또(Bulletto).
재킷 에트로(Etro), 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팬츠 발렌티노(Valentino), 벨트 생 로랑(Saint Laurent), 액세서리 모두 불레또(Bulletto).
재킷 발렌티노 바이 무이(Valentino by MUE), 네이비 점프수트 에르메스(Hermes), 레드 패턴 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브라운 슈즈 푼크트(Punkt), 네크리스와 링 모두 토마스 사보(Thomas Sabo), 버건디 삭스 엔젤삭스(Angel Socks).
재킷 발렌티노 바이 무이(Valentino by MUE), 네이비 점프수트 에르메스(Hermes), 레드 패턴 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브라운 슈즈 푼크트(Punkt), 네크리스와 링 모두 토마스 사보(Thomas Sabo), 버건디 삭스 엔젤삭스(Angel Socks).
베스트 윈도우(Window00), 재킷 발렌티노(Valentino), 스카프 에르메스(Hermes).
베스트 윈도우(Window00), 재킷 발렌티노(Valentino), 스카프 에르메스(Hermes).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이후 10년 만에 요원으로 살고 있다. 오랜만에 하는 현대물이기도 하고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살아 숨 쉬는, 날것 같은 이준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범죄 심리 수사극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애를 담은 작품이다. ‘현준’이라는 캐릭터는 원작 드라마의 어떤 역할이라기보다 한국 정서에 맞게 창조된 인물에 가깝다. 냉철한 프로파일러들이 모여 있는 수사팀에 스카우트된 요원으로 동정심과 이타심이 강하다. 돌발적이고 다혈질 ‘오지라퍼’에 아픔도 지니고 있다. 이런 성격 때문에 피해자와 수사기관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데, 극 초반에는 팀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현준’ 캐릭터만 보면 일종의 성장물처럼 느껴진다. 현준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각성하면서 보다 냉철해지고, 수사팀에 도움을 줄 만큼 성장한다. 청소년기를 아프게 보냈지만 이후 여러 사건을 겪으며 특별수사팀에 합류해 차츰 발전해가는 인물이다. 현준의 인간적인 면을 통해 시청자들이 극에 동화되었으면 좋겠다. 아픈 청소년기라니··· 이미 많은 작품에서 ‘사연 있는 남자’를 맡지 않았나. 이준기 하면 느껴지는 특유의 슬픈 정서가 있다. 맞다. 작가님들이 항상 좀 나를 그렇게, 항상 부모님을 여의고···.(웃음) 내가 양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를 통해 양극의 감정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상황을 그리고 싶어 하신다. 그런 쓰임새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만 같은 감정선이라도 작품마다 다르게 표현해야 하니까, 항상 어렵다.

 

매 작품 고생도 한다. 이번 작품 역시 액션 신이 많다. 굳이 고생을 찾아 다닌 건 아닌데 작가님들이 대본을 쓰다 어느 순간 나를 좀 굴리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웃음) 또 내가 굴러야 이제 시청자들도 뭔가 좀 보는 것 같지 않을까? 나 역시 역동적인 표현을 좋아하다 보니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는 편이다. 그럼 그걸 또 감독님들이 잘 받아주신다.

이쯤 되니 이준기가 하면 로맨스도 막 스펙터클할 거 같다. 에어컨 바람 쐬며 실장 혹은 회장 아들 역할 하고 싶다. 매년 꿈꾸고 있다.(웃음)

일전에 1년에 한 작품은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다. 가능하면 지금보다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1년에 최소 두 작품은 했으면 싶은데 드라마 한 작품 하고 나면 반년이 지나 있다. 그렇다고 매 작품을 1월에 시작해 6월에 끝내는 게 아니니까 시기가 애매하게 걸치면 항상 아쉽다. 배우에겐 이력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데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서는 욕심이 크다. 매번 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고,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영화에서 임팩트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 관객을 놀래키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관계자들도 만나고 있다. 대부분이 ‘이준기 유명한 거 알지’ 하시는데 그럼 나는 ‘이런 건 못 보셨잖아요’ 하면서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배우 이준기로만 너무 열심히 사는 건 아닌가?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때로 외로워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늘 책임감을 느끼며 살기 때문에 그게 나를 외롭게 한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배우 이준기일 때는 열심히 연기하고, 인간 이준기일 때는 인생을 편하게 누리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은 나와는 맞지 않다. 일하는 시간 외에도 ‘내가 뭘 더 해야 하지?’ 혹은 ‘어떤 걸 잘못 하고 있지?’ 자문하며 냉정하게 자기평가를 하는 편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받은 만큼 좋은 기운을 돌려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 때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내가 채우지 못할 경우 날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왜 대중의 변화에 못 맞춰가고 있나 다시 돌아본다. 이 일련의 사고 과정이 이제는 무척 자연스러워졌다.

평생 배우 해야겠다. 종종 ‘너 배우 할래? 대중 배우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는다. 대중 배우라는 단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대중을 신경 쓰는 배우임엔 틀림없다. 선배들은 대중의 반응에 연연하고 주변 눈치를 보면 연기하기 힘들어지니까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충고도 한다. 하지만 대중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안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타적 성향의 사람들이 상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오늘 만난 이준기는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배우인 것 같다. 맞다. 나는 그런 배우다. 다행스러운 건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작은 상처에도 작아지고, 중심이 쉽게 흔들리곤 하는데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아직까지 큰 스트레스는 없다. 그런데 이 또한 확신할 수는 없는 게 왜 나이가 들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하지 않나. 요즘엔 나에게 이런 여린 면이 있었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전에는 일주일이면 끝냈을 고민을 한 달 동안 부여잡고 있기도 하고.

비관이 심했다면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특유의 에너지 덕분에 매번 새롭게 일어나지 않았나? 좀 쉬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우 혼자 잘한다고 작품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요소가 모여 시너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조바심을 낸다는 거다. 근데 마냥 고민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왜 실패하지?’ 하고 혼자 생각하기보다 내겐 현장에서 몸으로 답을 찾는 방식이 맞다. 작품을 하는 중에만 얻을 수 있는 각성이 분명 있다. 가령 ‘내가 왜 이걸 또 하고 있지? 왜 발전이 없지?’ 하는 식의 질문은 현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어야 생기는 의문이고, 거기서 부딪혀야만 답을 구할 수 있다. 현장에 있고 싶다. 계속.

현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겠다. 심지어 쪽대본도 좋다고 했다. 이 정도면 일중독 아닌가.(웃음) 외우는 걸 좋아해서.(웃음) 배우의 일만으로 매 순간을 채울 수는 없으니 쉴 때는 연기 외에 앨범 녹음이나 공연 형식의 팬미팅도 하고 있다.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새 감정과 감각을 깨우치고 자극받는다. 배우는 자기만의 소스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배우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를 분산하면 소모될 거라 생각할 법한데, 되레 반대다. 작품할 시간을 미뤄가며 팬행사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팬들도 있다.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고.(웃음) 그게 아니다. 배우마다 쉬는 시간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다를 텐데 이게 내 휴식의 방법일 뿐이다.

일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느낌이다. 되게 심심하지 않나?

심심하다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 같다. 예전엔 이런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정작 지인들에게 좋은 말은 못 듣는다. 여행도 많이 하고 취미도 가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라고 하는데 집과 촬영 현장, 일과 연관된 장소 외에는 별다른 동선이 없다. 대만에 여러 번 가봤지만 정작 아는 건 별로 없는 것도 그래서다. 호텔과 공연장 외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관계자들이 이왕 온 김에 관광도 하고 쇼핑도 즐기라고 권하지만 일 다 끝났는데 다른 사람들이 쓰는 돈으로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면서 뭐하러 남아 있나 싶다. 그런 건 내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고 정중히 사양한다. 그리고 충분히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팬들과 함께하는 이런 추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물론이다.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대신 내 인터뷰가 좀 심심하다. 어떤 기자들은 ‘그래서 배우 이준기는 알겠고, 평소 인간 이준기는 어떤 사람이냐’고 질문한다. 다른 배우들처럼 일상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서로 좀 난감하다. 인터뷰를 위해서 뭐라도 해봐야 하나 패러글라이딩이라도 할까 싶고.(웃음) 그래서 인터뷰할 때 ‘그때 다리 부러질 뻔했잖아요’ 하는 식의 이야기라도 들려드려야 할 것 같고 말이다. 잡지를 읽는 독자들도 그런 부분을 재미있어 하니까.

그래도 일상 이야기를 하자면 술을 즐긴다고 들었다. 그래서 팬들이 걱정이 많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가볍게 풀어질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 나누는 걸 즐기는데 사람들 사는 이야기 들으면서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표현하는 것을 일로 삼다 보니 차분히 바라보고 듣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한데 술자리를 그렇게 진지하게 만들어버린다고. 마지막엔 결국 일 이야기를 하니까.(웃음) 심지어 요즘은 술 마시며 많이 운다. 전에는 누가 울면 ‘뭐냐 추하다, 취한 거 아니야?’ 하며 타박했는데 나이가 드는 건지 취한 것도 아닌데 어떤 대화가 툭 마음을 건드리면 눈물이 주르르 떨어진다.

아침에 이불킥 좀 했겠다. 처음 몇 번은 이불킥인데 지금은 다 아니까 ‘배우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해버리고 그냥 운다.(웃음) 그래도 술 먹고 화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이왕 울 거면 예쁘게 울어야지. 배우처럼.

취중에도 배우처럼이라니, 천상 배우다. 난 천상 배우는 아닌 거 같다. 메소드 연기를 해내는 최고의 배우는 아닐지 모른다. 최대한 극 속으로 들어가서 몰입하고 잘하려고 하는 배우일 뿐이다. 그래서 더 긴장해야 한다. ‘연기 천재’ 배우들처럼은 못하더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면 말이다.

 

베스트, 슈즈, 벨트 모두 윈도우(Window00), 팬츠 리바이스(Levi’s), 스카프, 키 체인으로 활용한 브레이슬릿, 양팔의 레더 뱅글 모두 에르메스(Hermes), 반지 불레또(Bulletto).
베스트, 슈즈, 벨트 모두 윈도우(Window00), 팬츠 리바이스(Levi’s), 스카프, 키 체인으로 활용한 브레이슬릿, 양팔의 레더 뱅글 모두 에르메스(Hermes), 반지 불레또(Bulletto).

 

ⓒ MARIECLAIREKOREA 사전동의 없이 본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About the Author:

연관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