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는 ‘공식적으로’ 1933년 9월 10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공식적’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밝히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유년기때부터 나이보다 조금 어리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곤 했는데,
가족, 친지, 그리고 학교 공식 자료 ‘피셜’ 그는 1933년 생이다.

그를 ‘디자이너’ 혹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많이 표현하지만
칼 라거펠트는 디자이너이자 포토그래퍼,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캐리커쳐리스트이자 영화 디렉터였다.
물론, 이 외에도 그가 한 일은 무수하게 많다.

흰 머리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목을 완전히 가리는 하이 칼라(high-collar)를 착용하고
손가락이 없는 장갑을 즐겨 끼던 그.

그가 지난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CHANEL이라는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칼 라거펠트를 모르는 이는 없을 터.
그렇다고 칼 라거펠트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에디터 역시 그렇다.

늘 친절하고, 명석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천재 아티스트.
샤넬, 펜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책임졌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에 대해서 간결하게, 핵심만을 정리해 봤다.

칼 라거펠트 이브 생 로랑

칼 라거펠트와 이브 생 로랑

가장 왼 쪽에 서 있는 사람이 칼 라거펠트.
가운데 즈음 서 있는 남자가 이브 생 로랑이다.
1955년 국제 울 사무국(International Wool Secretariat)에서 주최하는
코트 디자인 경연 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다.
이 날을 계기로 그는 이브 생 로랑과 친분을 맺는다.

수상을 계기로 그는 발망(Balmain) 하우스의 어시스턴트로 고용되고,
총 3년 동안 수습 생활을 하게 된다.

칼 라거펠트

장 파투 아티스틱 디렉터로 일 하던 시절의 칼 라거펠트

1958년, 장 파투(Jean Patou)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된다.
몇 년 지나지 않은 1964년, 그는 미술사 공부를 위해 로마로 떠난다.
그는 항상 과거의 것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유년 시절에도 그는 “학교에서 보다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박물관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1967년, 펜디(Fendi)의 디렉터로 임명된다.
당시 그는 다람쥐 펠트, 토끼 털, 두더지 털 등을
하이패션 세계에 들여 오며 혁신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는 펜디 자매들, 그 중에서도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펜디 컬렉션을 함께 만들어 냈다.
그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함께 만든 컬렉션은,
바로 며칠 전, 2019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에서 선보여졌다.

펜디 칼 라거펠트

펜디 자매들과 칼 라거펠트

1983년. 가브리엘 샤넬이 세상을 떠난지 10여 년이 흐른 뒤,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죽었다’라는 평가를 받을 때 즈음,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다.

칼 라거펠트는 기존의 기성복라인은 물론,
오트 쿠튀르 컬렉션,
체인 백, 트위드 슈트 등 선보이는 컬렉션마다
글로벌 ‘히트’를 친다.
실제로 그가 샤넬에 합류했던 1980년대에만
전 세계에 40여개 매장을 오픈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칼 라거펠트

1984년, 이네스 드 라 프라상쥬와 칼 라거펠트

샤넬에서 일한지 약 1년 뒤인 1984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브랜드, ‘칼 라거펠트’를 출시한다.

그는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브랜드에서 일한 바 있다.
클로에(Chloe), 찰스 쥬르당(Charles Jourdan),
크리지아(Krizia) 그리고 발렌티노(Valentino).

협업에도 힘을 아끼지 않던 그였다.
2004년, 데님 브랜드 디젤(Diesel)과
데님 컬렉션을 선보이고,

칼 라거펠트 렌조 루소

디젤 창립자, 렌조 루소와 칼 라거펠트

같은 해 SPA 브랜드 H&M과도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다.

에이치앤엠 칼 라거펠트

베를린에 설치된 H&M x Karl Lagerfeld 옥외 광고

그는 즐거운 일이라면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 듯 했다.
디젤의 창립자, 렌조 루소(Renzo Russo)는
“캐주얼 브랜드인 디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준
칼 라거펠트에게 감사하다. 영광이었고,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는 놀라운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고, 진정한 아이콘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패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였다.
칼 라거펠트는 2001 무려 45kg을 감량한다.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디자인 한 옷을 입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옷은 젊고 마른 남자들에게 입혀졌다.
난 그런 남자가 아니다. 그의 옷을 입으려면 적어도 40kg은
감량해야 했다. 그리고 13달 동안 난 그만큼의 체중을 감량했다”

칼 라거펄트

2001년 디올 옴므 쇼 후

그는 에디 슬리먼의 옷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 때 에디 슬리먼이 샤넬의 후계자가 될 거란 소문까지 돌 정도로 그를 애정했다.

그가 사람 외에 가장 사랑하는 게 있었다면
2013년 입양한 고양이, 슈페트(Choupette)일 거다.

https://www.instagram.com/p/BuHz76DFmDv/

칼 라거펠트가 운명하고 하루 뒤, 슈페트 라거펠트 계정에 올라온 공식 성명이다.

칼 라거펠트는 아주 예전 한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슈페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슈페트는 독채를 갖고 있고,
시간 별로 돌봐 주는 내니(Nanny)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슈페트는 칼 라거펠트의 다양한 컬렉션의 영감이 되었다.

하물며 위키피디아도 칼 라거펠트가 진행한 샤넬 컬렉션 전체를
글로도 써 내리지 못하고 있다.
1983년부터 2019년까지.
1년의 2번의 기성복,
2번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진행하고,
1변의 공방 컬렉션,
1번의 크루즈 컬렉션을 하던 그는
그 어느 브랜드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광고 촬영, 각종 전시회,
영화 촬영까지 일삼았다.
하물며 사회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칼 라거펠트가 디렉팅한 영화 <Once Upon A Time>

 

그가 디자인했던 첫 샤넬 컬렉션, 1992년 컬렉션을 봐도
당장이라도 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1년 365일을 버릴 게 없이 살아온 사람의 일생을 글로 쓰는 일은 참 어렵다.
이것 한 번으로는 끝낼 수 없을 것 같다.

*샤넬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롤은
칼 라거펠트와 30년 이상 협력해 온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에게 모두 위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