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케이 래퍼

블랙 셔츠와 벨트 모두 프라다(Prada), 팬츠와 슈즈 모두 본인 소장품.

식케이 래퍼

장갑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이어링 모니카비나더(MONICA VINADER).

식케이 래퍼

수트 재킷과 팬츠 모두 벨루티(Berluti), 체인 네크리스와 블랙 가죽 가방 모두 프라다(Prada), 이어링 모니카비나더(MONICA VINADER), 링은 모두 일레란느(ILLE LAN).

오늘도 작업하다가 온 건가? 오늘은 뭘 하다 왔나? 담이 걸려서 침 맞고 치료받고 왔다.

식 케이는 무대 아니면 작업실에 있는다는 말이 있어서 당연히 작업실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예외다. 평소에는 대체로 집에만 있는다. 안방을 작업실로 만들어놔서 매일 거기서 작업만 한다.

집을 작업실로 만든 이유가 있나?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아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그러지 않으면 작업을 놓을 것 같아 안방을 작업실로 만들었다. 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 그런데 지나치게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 같긴 하다.

일이 곧 일상인 삶인가? 아직까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일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럼 일의 범주에 있는 건 어떤 건가? 괴리감이 있다. 음악만 생각하면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음악만 할 수는 없으니까. 무대도 준비해야 하고, 음반 아트워크나 뮤직비디오 같은 비주얼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모두 좋아하니까 하는 거지만.

상반기는 정규 음반 <FL1P>와 해외 투어로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이후에 싱글을 4곡이나 발매했다. 사실 계획에 있던 일은 아니다. 모두 만들어뒀던 곡인데 지금과 시기가 잘 맞아떨어지니까 내자는 의견이 있어서 발매한 거다. ‘Why You?’도 ‘Water’도 원래 다른 음반에 수록할 곡이었는데, 갑자기 싱글로 먼저 선보이게 됐다.

평소 계획이 어긋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정도면 꽤 혼란스러운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그렇다. 그런데 모든 게 계획대로 될 순 없으니까 내려놓으려고 한다. 계획에  집착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아져서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더라.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망치는 상황도 만들게 되고. 그래서 요즘에는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겨도 그런가 보다 하려고 한다. 사실 ‘Water’ 피처링 멤버에 재범이 형(박재범)이 없었는데, 갑자기 하고 싶다고 해서 계획보다 곡이 길어진 거다. 오늘 화보를 찍으면서 이렇게 물에 흠뻑 젖게 될 줄도 몰랐고.(웃음) 뭔가 행사 하나 한 느낌이다.

혹시 또 다른 음반의 발매 계획이 있나? 물론이다. 더 나올 거다. 9월 초에 프로듀서 GXXD(걸넥스트도어), 뮤지션 쿠기랑 같이 6곡을 수록한 프로젝트 음반을 선보인다. 그다음에는 프로듀서 구스범스랑 협업한 음반도 나온다. 아, 딩고랑 같이 하는 하이어뮤직 단체 싱글 앨범이 먼저다.

요즘 다양한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전에는 식 케이 음악의 프로듀서는 무조건 그루비룸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말이다. 더 많은 프로듀서와 작업할수록 절대적인 작업량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싱글 앨범을 낸다고 해서 딱 한 곡만 작업하는 게 아니라 몇 곡을 만들어보고 그중 몇 곡을 발매한다. 그러니까 숫자로 따지면 작업하는 프로듀서의 수와 작업량이 비례하는 거다.

매번 새로운 프로듀서와 작업을 시도하는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프로듀서를 더 이상 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작업하면서 많은 프로듀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다. 그들도 그들만의 영향력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곡에 프로듀서 이름을 붙인다. 앞으로 더 많은 프로듀서와 작업할 생각이다.

프로듀서와의 호흡을 어떻게 판단하나? 이 사람과 잘 맞을지, 맞지 않을지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 첫인상에서 거의 판가름 난다. 나는 어떤 사람의 첫인상이 좋지 않으면 평생 좋지 않게 보는 편이다. 첫 단추가 절반이 아니라 거의 90%다. 그래서 누가 음악을 보내준다고 해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만나서 얘기를 해본 다음에 잘 맞을 것 같으면 같이한다.

그럼 첫인상이 좋지 않으면 음악적으로 호기심이 드는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어도 협업을 안 하나? 대개 음악이 괜찮으면, 만났을 때도 긍정적인 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프로듀서들이 식 케이라는 뮤지션과 작업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뭘 어떻게 뽑아내야 하는지 아니까. 나와 같이하는 사람들은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잘 맞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작업물에 관해 의견을 나눌 때 나쁜 사람 되고 싶지 않아서 대충 좋은 말로 넘어가지 않는 점도. 나는 듣고 바로 ‘좋다’, ‘구리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 단호함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다.

작업물에 대해 냉정하고 솔직하면 작업의 속도와 효율이 좋아지긴 한다. 그런 것 같다. 난 게으른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프로듀싱을 해볼 생각은 없나? 전혀 안 해봤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나중에 한다면 모를까. 지금은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굳이 내가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아트워크나 비디오 작업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내 곡으로, 내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작업물인데 내가 더 잘했으면 혼자 다 했지. 더 좋은 퀄리티를 위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중요하다.

한 인터뷰에서 너무 허슬러로 비치는 건 원치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음악적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 카이엔 프리스타일’이라는 곡에서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인정하기도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열심히 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어떤 건가? 너무 쉽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운드든 비주얼이든 아트워크든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 많이 한다는 이유로 퀄리티가 저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한 말이다.

어떤 퀄리티인지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별로일 거라고 추측하는 생각들 말인가? 들어보고도 어느 뮤지션이 낸 거랑 비슷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려면 장르를 바꾸면 된다. 그러면 새로워 보일 테니까. 그런 사람들은 장르를 바꾸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사운드를 더 제대로 내고 싶은 거다.

그런 반응에 어떻게 대응하나? 이제는 신경 안 쓴다. 그것도 스트레스받는 거니까 웬만하면 흘려버린다. 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고, 누군가는 내 음악에 영향을 받을 만큼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절대적인 작업량이 많은데도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방법은 뭔가? 따로 없다. 그만큼 시간을 많이 들이는 거다.

수준 높은 사운드도 그렇지만, 언제 들어도 트렌디하게 느껴지는 것이 특유의 매력이다. 4년 전에 낸 곡을 지금 들어도 큰 괴리가 없고, 얼마 전 발매한 ‘Water’는 묵혀둔 곡이라고 하기엔 지금 트렌드와 잘 맞는다. 곡 작업을 할 때 트렌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드나? 음악에 있어서는 내가 트렌디하다고 생각하고 낸다.

신기한 게 언제 들어도 트렌디하게 느껴지는데, 클래식이과는 또 다른 개념인 것 같다. 언젠간 클래식하게 느껴질 거다. 트렌디한 게 오랜 시간 사랑받으면 결국 클래식이 된다. 명반이 되는 거다.

지금까지 낸 곡 중 10~20년쯤 지났을 때 명반 타이틀을 받을 것 같은 곡은 어떤 건가? 내 작업물은 다 좋다. 아마 여러 카테고리에서, 다양한 장소에서 내 곡이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걸 들어볼까 싶을 때 그 섹션에 내가 있을 거고, 다른 걸 들어보려고 해도 거기에 내 음악이 있을 거다.

그럼 식 케이란 사람 자체는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나? 왔다 갔다 한다. 청자일 때는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고, 음악을 만들 때는 트렌드의 중심에 있으려고 한다.

청자일 때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듣나? 많은 사람과 함께할 때는 요즘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모두 다 아는 옛날 노래를 듣기도 하고, 내가 만든 곡을 중간에 슥 들려주기도 하고.(웃음)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듣나? 아주 많이 듣는다. 아마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내 곡일 거다.

가장 많이 들은 곡은? 대부분 아직 발매되지 않은 곡을 많이 듣는다. 그만큼 많이 듣고 고민한 다음에 세상에 내놓는다.

상반기 행보를 살펴보면, 2019년은 식 케이의 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꽉 찬 행보를 보였다. 정규 음반 <FL1P>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해외 투어도 성공적이었다. 유럽 5개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호주, 그리고 서울에서 열린 마지막 공연까지 객석을 꽉 채웠다. 정말 좋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히 하려고 한 일을 하고 온 듯한 느낌도 든다.

너무 들뜨지 않으려는 태도인 건가? 심지어 유럽 공연에서는 환호와 브라를 받았다(서구권 공연 문화 중 아티스트에게 인정의 표시로 속옷을 던지는 문화가 있다). 물론 관객의 호응에 많이 놀라고 감동도 받았다. 브라보와 브라를 동시에 받았으니까.(웃음) 처음 간 도시가 파리였는데 호응이 워낙 좋아서 놀랐다. 원래 잘 긴장하지 않는데 하마터면 긴장할 뻔했다. 반응이 좋아서 심지어 크라우드 서핑(관객 위로 뛰어드는 행위)도 했다. 어‘ , 뭐지? 나 지금 된다’ 이런 느낌이었다. 영국에서도 재미있었다. 관객 반응이 진짜 좋았다.

슈퍼스타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좀 그랬다. 서울 공연도 좋았다. 무대도 크고. 이번 해외 투어가 여러모로 잘돼서 기분이 좋다. 반응도 좋고 투어 하면서 다친 사람도 없고 사고도 없었다.

다음 투어 때 가보고 싶은 도시나 해보고 싶은 건? 아시아 투어를 해보고 싶다. 가보고 싶은 곳이 진짜 많다. 대만, 태국, 베트남 다 가고 싶다.

이번 상반기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관에 들어가기 전에 기억날 것 같은 순간들.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여름을 보냈으니, 이제 잠시 휴가를 보내도 될 것 같다. 휴가 계획…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 휴가 계획은 일할 때 계획 짜듯 잘 세워지지가 않는다. 일 안 하는 날 쉴 수 있지만, 노는 것도 한두 번이라.

잘 안 놀지 않나? 노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좋긴 한데, 그래서. 노는 걸로 스트레스가 풀리면 좋은데, 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요즘은 뭘 새롭게 해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쉼에 있어서는 되게 소심한 사람 같다.

음악 밖으로 벗어나기 힘든 건가? 그렇다. 방 밖으로 나가기 힘들다.

연말이나 돼야 휴가를 보내게 될까? 왠지 공연하고 있을 것 같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느라 한 해를 돌아볼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식케이 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