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든 넘치는 것, 즉 푸짐한 것에 익숙해져 있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정보도 다양할수록 삶이 윤택해진다고 느낀다. 먹고 입고 바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 하나라도 더 잘 먹고 입고 바르면 더 건강하고 예뻐질 거라고 기대한다. 에디터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맥시멀리스트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바쁜 아침에도 스킨과 로션만 바르기는 아쉽고, 식당에 둘이 가서 메뉴 세 가지는 시켜야 직성이 풀리고, 원 플러스 원 제품은 무조건 사고 만다. 이런 생활 습관은 음식을 먹을 때 더 두드러진다. 식탐이 많은 편이라 하루 세끼도 모자라 간식과 야식을 늘 달고 살고, 2~3일에 한 번씩은 음식에 각종 술을 곁들여 식사를 한다. 무엇보다 내 모토가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면 된다고, 좋은 사람들과 음식과 술을 나누는 삶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없고, 굶는 다이어트 같은 건 도전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늘어나는 허리둘레와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팔뚝과 팅팅 부은 얼굴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한두 해다. 또 하루하루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 40대 초반이라는 나이까지 거든다. 선배들의 조언은 단순 무식한 다이어트가 아닌 식이 조절을 권하고 있었다. “운동은 그냥 숨쉬기처럼 해야하는 거야. 앞으로 평생 꾸준히 하면 돼. 그런데 해독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 더 나이 들면 굶는 것도 못 하거든.” “알고 보면 지금 네가 먹고 있는 게
다 독이야.” “피부 타입은 알면서 왜 네 몸에 맞는 음식은 안 찾니?”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어쩌면, 내 인생의 낙이라고 여기는 즐겁게 먹고 마시는 행위를 더 오래 누리려면 지금 디톡스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해독이든 간헐적 단식이든 뭐든 해보자는 마음에 조사에 들어갔다. 포털 사이트에는 해독이나 디톡스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정보가 넘쳐난다. 이 중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는 사실 쉽지 않았다. 우선 ‘방법이 쉽고 기간이 길지 않으며 무조건 굶지 않을 것’이라는 나만의 조건을 만들었다. 조사하다 보니 간헐적 단식은 나 같은 직장맘에겐 무리일 것 같아 해독을 선택했다. 이 중 비교적 기간이 짧은 해독 주스 디톡스는 하루에 두 끼는 주스를 마시고 한 끼는 일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채소나 과일을 직접 삶고 갈아 마시는 건 귀찮았고, 시중에 판매하는 해독 주스는 값도 비싸고 효과를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되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찾다 보니, 모 블로거가 소개하는 해독주스 프로그램이 내게 적합해 보였다. 사실 단식이든 해독이든 전문가(가정의학 전문의나 한의사 혹은 식이요법을 공부한 사람들)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전문가는 대개 한약과 함께 병원마다 내세우는 프로그램을 권해 주스만으로 효과를 보고자 하는 내 목표와 거리가 있어 건너뛰었다(하지만 평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체질 진단이나 인바디 같은 기본적인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선택한 해독 주스 프로그램은 총 21일짜리로, 평소 식습관과 체질, 체격에 따라 영양소를 맞춘 해독 주스 레시피에 따라 주스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공복 시간을 늘리고 인슐린 저항이 없는 식단으로 한 번 해독한 몸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비결. 따라서 모든 인스턴트 음식 중지, 하루에 물 2L 이상 마시기, 일반 식사 조절 등 지켜야 할 사항은 생각보다 많았다. 다행히 해독 주스 만드는 방법은 시중에 판매하는 파우더를 이용하는 것이라 쉽고 간편했다. 해독 주스 레시피와 함께 블로거가 파우더를 구매하는 곳까지 알려준다. 원료 또한 원산지와 유기농 인증 여부를 꼼꼼하게 체크한 것들이라 믿음이 갔다. 평소 변비가 심하고 육류, 어류 가리지 않는 식습관에, 미팅이나 술자리가 많은 나는 사과·케일즙을 기본으로 하는 그린 주스를 매일 아침에 마시고, 아몬드 우유와 현미 가루를 넣은 주스로 저녁을 대신했다(구체적인 레시피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자세하게 공유하진 않는다). 처음 3일은
세끼 모두 해독 주스를 마셨는데, 2일 차가 되니 두통이 나타났다. 건강이 호전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반응인 명현 현상 중 하나라고 힘들면 바로 하루 한 끼는 일반식을 해도 된다고 했으나 그동안 굶은 것이 아까워 3일 차까지 세끼 모두 주스를 마셨다. 금요일 저녁에 시작해 월요일 점심까지 이렇게 실천했는데, 그러고 나니 월요일 아침 아랫배가 쏙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바지를 입었을 때 꽉 조이는 느낌이 없었다. 몸무게도 1.5kg이나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내 몸속에 그간 쌓여 있던 독소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처음 3일 차 이후는 고민과 타협의 나날이었다. 하루 한 번 일반식이 허용되기 때문에 일반식 선택에 신중해졌다. 한 끼를 먹으니 ‘잘’ 먹고 싶은 욕심이 앞선 것! 레시피에는 일반식을 먹을 때도 가려 먹을 것이 많았지만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과식은 하지 않았지만 레시피에서 금하는 매운 김치찌개나 소고기, 디저트, 커피 등도 너그러이 먹기 시작했다. 또 일반식은 보통 점심에만 권하는데, 저녁 미팅이 많아지면서 해독 주스는 아침, 점심 대용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저녁 미팅에는 술이 따르기 마련. 그러다 보니 쏙 들어갔던 아랫배가 다시 팽팽해진 느낌이 든 것이 14일 차. 몸무게도 이전으로 돌아왔다. 3일간 힘들게 뺀 독소가 다시 몸속에 찬 듯 했다. 블로거와 상담한 후, 다시 처음 3일 세끼 해독 주스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해독 주스 프로그램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지키지 못
할 플랜을 고수하기보다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블로거의 조언이었다. 해독 주스를 꾸준히 마시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삶아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는 모 브랜드 홍보 담당자부터 시중에 판매하는 해독 주스를 출근 후 마시는 옆자리 동료까지 각자 저마다의 해독 주스 프로그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나만의 방법이 필요했다. 21일 해독주스 프로그램은 평소 먹는 걸 좋아하고 미팅과 저녁 모임이 많은 내게는 긴 기간이었다. 그래서 주목한 주말 3일 해독 주스 프로그램. 이것이 요즘 내가 실행하는 방법이다. 주중에는 편하게 마음껏 먹고 마시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해독 주스만 마신다. 물론 주말에도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 끼 정도는 허용한다. 그 결과가 어떠냐고? 아쉽게도 몸무게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매일 아침 아랫배가 더부룩하고 팽팽하던 느낌은 덜하다. 또 월요일마다 듣던 피곤해 보인다는 말은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주말이면 불규칙하던 식습관이 바로잡히면서 변비가 심하지 않다. 비록 3일뿐이긴 하지만 ‘해독’하는 시간이 나만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디톡스 라이프, 뭐 별거겠나? 이렇게 시작했으니 40대에는 조금 가볍게 살 수 있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