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가죽 트렌치코트 206 옴므 바이 이용준(206 Homme by LEE YOUNG JUN), 블랙 터틀넥 풀오버 송지오 옴므(Songzio Homme), 블랙 그러데이션 셔츠 그레이하운드(Greyhound).

3년 전쯤 신인 배우 인터뷰로 송재림을 만났을 때, 나는 한참 고양이를 키울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송재림은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들 얘기를 하면서 나를 부추겼다.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 그 고양이 중 한 마리가 등장하더라. 올라. 스페인어로 ‘안녕’이란 뜻이다. 이름 탓인지 마중을 잘 나온다. 노르웨이숲 종인데, 아무래도 믹스 같다. 7kg이 넘는다. 다른 고양이 레옹이는 털이 짧다. 얘는 분명히 믹스다. 더 소심하다. 더 고양이 같고. 낯을 엄청 가린다.

개를 키우는 남자와 고양이를 키우는 남자는 다르더라. 고양이를 키우는 남자가 더 섬세한 쪽 같다. 개를 키우는 남자 중에는 더 활동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개에게 자신을 맞추게 되는 것도 있고. 개들은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고양이는 산책 싫어하니까. 활동적이냐, 집에 있기를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반려동물 고르는 데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송재림은? 난 집돌이.

집에서 뭘 하나? 이놈들이 자기들 잘 때 빼고는 귀찮게 야옹거리니까 하루가 금방 간다. 취미로 색소폰을 한다. 노래를 할 수 있는 곡들을 많이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요새는 많이 못 읽고 있지만 보통 책 읽고, 진로 걱정하고, 멍 때리고.

색소폰은 좀 안 어울리는데. 맞다. 기타를 예전에 했는데, 특이한 악기를 하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지 않는 악기.

올드한 악기?(웃음) 올드한 악기.(웃음) 음악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가 미래를 위한 대비다. 나중에 노후를 로맨틱하게 즐기고 싶은데, 거기 음악만 한 것도 없다. 나도 그때 악기를 다루고 싶고, 둘째는 발성과 호흡에 굉장히 좋다. 복식호흡을 기본으로 하니까. 그래서 수영도 한다.

다른 건 이해가 가는데, 노후에 심심하지 않으려고 무언가를 배우기엔 너무 젊지 않나? 나이 서른에 그런 남자가 어딨나? 있다. 일단 나. 많이 있을 거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 모습과 비교해서 나는 뭘 갖지 못했나를 생각해본 후 그걸 채우는 길을 따라가는 것 같다. 취미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거고, 다른 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시작했다.

 

버건디 컬러 블록 울 코트와 핀 스트라이프 팬츠 모두 루이비통(Louis Vuitton), 버건디 니트 스웨터 노앙(Nohant).

네이비 체스터 코트 206 옴므 바이 이용준(206 Homme by LEE YOUNG JUN), 그레이 헨리넥 셔츠 이스트쿤스트(Ist Kunst), 그레이 와이드 팬츠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브라운 비니 올세인츠(All Saints), 골드 프레임 가죽 스트랩 시계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브라운 컴배트 워커 울버린(Wolverine).

 

패딩이 겹쳐 있는 울 코트와 그레이 모직 팬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가죽 패치워크 무통 점퍼 버버리 런던(Burberry London), 블랙 집업 카디건 올세인츠(All Saints), 고딕풍의 실버 링 저스틴 데이비스(Justin Davis).

송재림의 노후는 어떤 풍경의 그림인가? 서해의 붉은 노을, 그리고 작은 2층짜리 땅콩 별장. 서해의 낙조가 좋다.

쓸쓸한 풍경이다. 쓸쓸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해서 정신 산만해지는 것보다 고독한 걸 즐기는 쪽이다.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있군. 맞다.(웃음) 그때도 여전히 고양이들은 있어야 한다.

송재림의 <우결> 출연은 참 뜻밖이었다. 나도 뜻밖이었다. 뜻밖의 제안이었고, 그걸 하기까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는데, 연기 외의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해를 품은 달>에서의 과묵한 느낌인데, 그걸 좀 희석시키고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연치 않게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우결>은 마치 출연자의 사생활, 진짜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공유하는 거고.

그런 부분에 대한 거부감은? 가식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게 진짜 나는 아니다. 거짓은 별로 없다. 내 본모습이 가감 없이 나오는 것 같다. 어떤 설정을 가지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 과묵한 역할 3~4개를 연달아 하다 보니까 어떻게 해서든 곡해된 내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솔직한 내 모습을 <우결>에서 보인다고 하더라도 역효과가 날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어릴 때부터 이미 호불호가 갈리는 타입이다.

업이란 단어를 자주 쓰더라. 배우라는 직업을 업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이 일을 사랑하게 됐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금은 팔자로 생각한다. 스물일곱부터 서른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이 일은 시간이 많으니까 다른 것도 한번 생각해볼까? 예전엔 그랬다. 이제 이건 내 직업이고, 이걸로 유명해지든 아니든 내 인생을 책임질 직업으로 받아들이자. 온전하게 직업으로 받아들인다.

분기점이라면? 서른을 앞두고 그렇게 됐다. 정말 생각이 많았던 시기는 스물일곱 살.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지 않고, 늦지 않았는데도 뭔가를 시작하기에 겁나는 나이. 그때를 어영부영 지나면서 스물아홉이 되니까 내가 연기에 투자한 시간이 굉장히 많았고, 이걸로 많은 꿈을 꿨다는 걸 알게 됐다.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으면서 주제넘게 너무 많은 꿈을 꿨더라. 관두고 전직을 하자니 배워둔 것도 없고,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조금은 등 떠밀려서 그냥 Go!를 외친 것도 있고.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현장에서 몇 년을 배웠는데 이걸 싹 잊고 다른 걸 하기 아까웠다. 그때 선택했다. 이걸 직업으로 하자.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뭐였나? 그걸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건 현장에서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거다.

송재림 입에서 안 나올 것 같은 얘기다. 현장과 사람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매스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세대라 그런지 영상 문화, 영상 문법 같은데 나도 모르는 관심과 흥미가 있었나 보다. 배우가 직업이라고 생각한 순간, 혼자 조금씩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이게 굉장히 빠르게 바뀌어가는 산업의 집약체니까. 카메라도 거의 2년 주기로 계속해서 바뀌고 있고. 드라마 <추노> 때부터 ‘레드원’이라는 시네캠이 들어왔고, 그때부터 알렉사니 뭐니 카메라가 계속 바뀐다.

진짜 특이하다. 배우가 이렇게 테크닉에 대해 줄줄 얘기하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현장 사람들과 융화돼서 그들만의 언어로 얘기하는 게 좋다. 아까 고독을 즐길 줄 안다, 즐기고 싶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나는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나가서 그들의 언어로 같은 배를 탄 사람의 동료의식을 갖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나 보다.

교감하기를 좋아한다는 건데, 그건 내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고 가는 것이다. 스태프들도 모든 배우에게 마음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도인이네, 이 사람.(웃음) 내가 하고 싶다고 같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배우라는 것도 결국 선택받아야 할 수 있는 직업이고, 내가 누군가를 선택한다고 그 사람하고 작업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연이나 운명도 있는 것 같다.

스치는 연도, 남는 연도 있다. 우리 모두 한 가지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속적이든, 지난 거든 언제든 꺼내볼 수 있고, 내가 살아온 증거가 된다는 게 좋다. 우리는 결국 프로젝트 그룹처럼 일한다. 그런데 또 만난다. 그런 것도 소소한 재미다.

관계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관계로 채워지지 않고 남는 구멍. 사실 관계 말고도 채워지지 않는 건 많다. 우리는 결국 구멍난 치즈 아닌가. 그래서 끊임없이 작품을 갈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현장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하고 싶은 연기를 물어보면 다작하고 싶다고 한다. 끊임없이 작품을 하고 싶다.

아직 이게 송재림이다, 하는 느낌의 작품은 오지 않은 것 같다. 벌써 데뷔한 지 꽤 됐다. 나름대로 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것 같은데. 우선 단기적 목표로는 털털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순박하고, 말투를 설정으로 꾸미지 않아도 되는. 나는 투박하다. 장기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예상은 논리로 우리를 설득하지만 번번이 빗나간다는 말이 있다. 언젠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고, 어떤 추상적인 느낌을 생각해냈을 때 그와 연관돼 내가 생각나는 나만의 체취가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관계에서 중요시하는 건? 신뢰. 남녀 관계에서는 유독 신뢰가 중요하고, 매니저와 배우 관계에서도 신뢰가 바탕이다.

용서하는 편인가? 아니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관계는 정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칼 같다. 남녀 관계에서는 더 중요하다. 연애한 지 오래됐다던데. <우결> 출연자가 그래도 되나? 바로 결혼으로 점프를 해야 할까?

결혼하고 싶나? 다음에 만나는 상대가 있다면, 결혼을 전제로 하고 싶다. 까다롭게 고를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에 쉽게 빠지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데? 코드가 맞는 사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결혼 생활엔 이해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이해라는 말은 굉장히 많은 걸 포괄하는 말이다. 내 이기심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이기심을 포용할 의사는 있나? 다시 말하지만 일방적인 건 없다. 내 그릇이 커야겠지. 그렇기 위해서는 결혼이 현실적인 이야기니까 내 벌이도 있어야 하는 거고.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만나고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다.

남자들은 웃긴다. 누가 누굴 책임진다는 건가? 그건 한국 남자들이 갖는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나는 내 마누라가 직업이 없어도 좋다. 하지만 내가 직업 없는 상태로 장가가고 싶진 않다.

어떤 사람이면 될까? 어른들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더라. 재미를 찾는 건 아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 그러려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이해심도 있어야 하고.

그런 연애를 해봤나? 못 해봤다. 너무 어렸다. 내가 그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건지, 어려서 그랬던 건지. 이별을 통해 많이 배우듯이 나도 연애 공백 기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많이 생각했다. 다음에 오는 사람한테는 그전에 했던 실수들을 반복하지는 않으려고. 내 연애가 깨진 이유가 스물일곱쯤, 생각 많은 시기가 오니까 내 코가 석 자다 보니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줄 심적 여유가 없었다. 내 통장 잔고가 곧 2백 만원을 찍는데 어떻게 해. 그래서 더 현실, 현실 그러는 걸 수도 있다. 완전히 그걸 떼놓고 사랑만 운운할 순 없더라. 상대방은 사랑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랑을 믿나? 사랑을 믿는다기보다 사람을 믿는다고 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게 어떤 건지, 에로스, 플라토닉, 아가페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계속해서 그 모습을 바꿔간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믿느냐, 못 믿겠다. 그러나 사랑이 변해가는 건 믿는다. 변하기 때문에 딱 그 감정 말고 여러가지 감정을 취하고 적응해가는 거겠지. 젊을 때 사랑이랑 우리 부모님 나이 때 사랑이랑 다르다. 물론 다 사랑인 것 같다. 그건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