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영화를 스타일링하고, 영화는 패션에 이야기를 부여한다. 패션과 영화는 이미 서로 깊숙이 파고들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가 되었다. 지방시가 의상을 맡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브 생 로랑과 <세브린느>, 장 폴 고티에와 <제5원소>, 미우치아 프라다와 <위대한 개츠비>, 로다테와 <블랙 스완>, 질 샌더와 <아이 엠 러브>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영화 의상을 제작하며 끊임없이 협업을 이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영화를 통해 패션을 추억하고 아이코닉한 패션으로 영화를 상기하곤 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 의상을 제작하던 패션과 영화의 관계는 한 단계 발전해 ‘패션 필름’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데 없어선 안 될 필수 요소가 된 패션 필름은 근사한 영상미가 더해져 런웨이나 스틸 사진과는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하고, 컬렉션을 보다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해왔다. 하지만 점점 확장되는 디지털 세계와 그 곳을 영유하는 젊은 세대의 니즈는 패션 필름의 경계를 허물고 더욱 신선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점은 영화감독을 패션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장편영화를 제작하던 저명한 감독들이 속속 패션계의 문턱을 넘으며 기존의 익숙한 방식인 패션 필름을 넘어 서는 패션 영화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영화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와 펜디가 협업해 완성한 2020 S/S 맨즈 웨어 컬렉션

아름다운 미장센은 물론 영화와 패션을 논할 때 늘 회자되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현재 패션계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는 인물이다. 우리를 이탈리아의 뜨거운 여름으로 초대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감독한 그는 특유의 미감으로 제작한 한 편의 그림 같은 패션 필름을 선물한다. 구아다니노는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펜디의 수장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에게 영화 <아이 엠 러브>와 <서스페리아> 의 의상을 맡겼는데, 2020 S/S 시즌엔 펜디 맨즈 웨어 컬렉션을 위한 게스트 아티스트로 컬렉션 제작에까지 참여하며 색다른 시도를 가능케 했다. 이후 발렌티노의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와 손잡고 만든 영화 <스테거링 걸>은 로마를 배경으로 매혹적인 발렌티노의 쿠튀르 컬렉션을 입은 줄리앤 무어와 미아 고스 등이 열연을 펼치며 아름다운 패션 신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아다니노는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삶을 조명한 패션 다큐멘터리에 이어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 넘치는 영화 장면에서 영감 받은 2021 S/S 컬렉션의 쇼트 필름도 제작했는데, 풍부한 색채를 극대화하는 영화 제작 방식인 ‘테크니 컬러(Technicolor)’를 적극 활용해 시네마틱 패션 필름에 생기를 부여한 것은 물론 예술적 패션 영화를 한 단계 더 진화 시켰다.

영화에 버금가는 감동을 선사한 패션 영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구찌는 영화 <굿 윌 헌팅>의 감독 구스 반 산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팬데믹 시대의 라이브 스트리밍 런웨이와 구찌 하우스의 디자인팀을 앞세운 룩북 등 새 시즌 컬렉션을 전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디지털 영화제 ‘구찌 페스트’를 마련하고 반 산트와 함께 무려 7편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패션 미니 시리즈 <끝나지 않은 무언가의 서막>을 통해 ‘오버추어(Overture)’ 컬렉션을 풀어냈다. 행위예술가이자 배우인 실비아 칼데로니를 비롯해 신선한 페이스를 지닌 미켈레의 지인 등을 모델로 출연시켜 감도 높은 영상미와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패션 신으로 긴 여운을 남겼다. 미켈레는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 반 산트를 룩북 모델로 소개했는데, 섬세한 미켈레의 상상력과 반 산트의 명확한 관점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패션 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패션 브랜드가 영화를 탐닉하는 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 때문이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그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구현되는 컬렉션은 보는 우리를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 역시 스토리텔링이 짙은 패션 영화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최근 감독 짐 자무시와 협업한 패션 필름 <프렌치 워터>는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샤를로트 갱스부르, 클로에 세비니 등 초호화 캐스팅 배우들의 빼어난 스타일과 감정 연기가 어우러지며 몰입을 이끌었다.

 

패션 영화는 단순히 패션을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에 그치지 않고 때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내포하며 긍정적인 주제를 공유하는 예술적 매개가 되기도 한다. 전 세계 여성 감독들과 미우미우가 함께하는 필름 프로젝트 ‘우먼스 테일(Women’s Tales)’은 여성 감독들의 독창적이고 섬세한 시각을 통해 새로운 여성성을 탐구하고 패션이 지닌 잠재적인미학과 비전을 패션 영화를 통해 발굴해낸다.

 

디올 2021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해 영화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제작한 웅장하고 미스터리한 패션 영화.

이렇듯 영화화된 패션 필름은 컬렉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마치 영화 속 명장면처럼 잊지 못할 잔상을 각인하며 판타지를 꿈꾸게 만든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깊이를 더해가는 패션과 영화의 관계. 단순히 잘 만든 한 편의 패션 필름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패션 영화가 주는 영감으로 가득한 초현실적 공간에서 당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