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황희찬 선수 화보

베이지 롱 코트와 오렌지 조거 팬츠 모두 로에베(LOEWE), 십자가를 모티프로 한 네크리스 모두 다미아니(Damiani), 레이어드 한 체인 네크리스 원이너프(One Enough).

 

“보완할 부분이 보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메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매일 운동할 때마다 그 생각을 해요.”

 

축구 국가대표 황희찬 선수 화보

엑스칼리버 모노밸런시어 이온 골드와 다이아몬드 워치 로저드뷔(ROGER DUBUIS), 크리스털 장식 팬츠 페라가모(Ferragamo), 모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소속 팀에서든 국가대표 팀에서든 이전에 경기 후 눈물 흘리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맞아요. 살면서 운 기억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울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최근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전을 마치고 꽤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한동안 말을 못 이을 정도로요. 웃는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더라고요. 그 짧은 순간에 아주 많은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제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고 축구를 시작했거든요. 팬들은 이번 월드컵 준비 기간을 대개 4년으로 생각하실 텐데, 저로서는 20년의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난 일을 떠올리니까 울컥하더라고요. 또 응원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그만큼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데 대한 아쉬움의 눈물이기도 했어요.

이번 월드컵에서 더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은 따로 있었다고요. 사실 제일 많이 운 건 가나전이 끝난 후였어요. 버스 타고 가면서도 울고, 호텔에서도 또 울었죠. 그날이 저에겐 심적으로 가장 힘든 경기였어요. 후반전에 다들 다리에 쥐가 나는데도 참고 뛰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부상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뛰지 못했잖아요. 끝나고 출전한 선수들을 위로하러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들 극도로 지친 모습인 거예요.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어요. 그래서 세 번째 경기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부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회복하려고 관리했어요. 그런 간절한 마음 덕분인지 처음 진단 결과보다 1~2주 빨리 회복되더라고요.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요. 경기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로 부상을 안고 뛰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특히 햄스트링 부상은 재발하기 쉬워서 더욱 그렇고요. 포르투갈전이나 브라질전에서 만약 한 번 더 다쳤으면 이번 시즌(2022~2023 프리미어리그) 활동 자체에 큰 문제가 생길 테니 물론 두려웠죠. 부상을 당한 상태여서 실제로 몸이 아프기도 했고요. 지금도 통증과 부기가 남아 있어서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 두 번째 경기가 끝난 뒤에는 내 몸이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었죠. ‘무조건 뛰어야겠다’는 생각만 남아 있었거든요.

그 확고한 의욕으로 엄청난 골을 만들어냈어요. 팀을 승리로, 16강으로 이끈 골이자 개인적으로는 국가대표로서 50번째 경기에서 만들어낸 10번째 골이에요. 여러모로 의미가 클 것 같아요. 그럼요. 저는 국가대표 팀의 경기를 보고 축구선수를 꿈꿨기 때문에 국가대표로서 어떤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어요. 그게 월드컵 무대가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더 의미가 크고요. 저에게도 엄청 소중한 골이에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경기가 되지 않을까싶어요.

 

축구 국가대표 황희찬 선수 화보

엑스칼리버 모노밸런시어 블랙 세라믹 워치 로저드뷔(ROGER DUBUIS), 래더 재킷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부츠 프라다(Prada),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손흥민 선수의 기가 막힌 패스만큼이나 절묘한 부분이 황희찬 선수가 오프사이드에 걸리지 않기 위해 템포를 조절한 움직임이었어요. 계속 내달리다 순간적으로 멈칫하는 동작이 있었는데요. 뒤에서 따라 달려오다가 흥민이 형이 수비수 사이에서 슈팅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찾는 모습을 보고 속도를 살짝 늦췄어요. 형의 가속이 멈춘 상태에서 제가 그대로 뛰어 들어가면 오프사이드에 걸릴 거라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들었거든요.

그래서 심판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단하는 상황과 별개로 자신 있게 상의 탈의 세리머니를 한 거죠? 네. 옆에 있는 수비수를 보고 들어갔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100% 확신했어요.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긴 거리를 달려온 후 한 발 더 움직여 기어이 마무리 짓고 마는 골 결정력과 체력이 만들어낸 골이기도 해요. 한 인터뷰에서 ‘다 됐다 싶을 때 한 발 더 뛰는 체력을 기르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맞아요.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 결정적인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하잖아요. 골대 앞에서 시도로 끝나지 않고 골을 넣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걸 해낸 것 같아 뿌듯해요. 앞으로도 결과를 내는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해온 훈련이 있겠죠?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골을 넣고 싶다고 해서 슈팅 연습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몸을 키우겠다고 해서 피지컬 훈련만 해서도 안 되고요.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 그에 맞춰 몸을 만들고, 유연성도 조절해야 해요. 또 피지컬 훈련을 하는 동시에 스피드나 스킬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병행해야 하고요. 여러 가지를 같이 해야 발전 속도가 빠르고, 몸으로 체감하는 효과도 큰 것 같아요.

 

축구 국가대표 황희찬 선수 화보

애너그램 니트 후디와 퍼즐백 디테일 트라우저, 플로우 러너, 엘리펀트 라지 백 모두 로에베(LOEWE),

 

흔히 월드컵을 4년간의 여정이라 표현하는데요.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인가요?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너희는 나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와라.” (파울루 벤투) 감독님이 이런 말을 자주 하셨어요. 그 말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들을 때마다 ‘이 팀을 위해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선수가 같은 마음을 가졌을 거예요.

이제 원 소속 팀인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돌아가 다시 시작될 시즌을 준비해야겠죠. 내일 스페인으로 떠나요. 전지훈련에 합류할 예정이에요.

울버햄튼에서야말로 좀 전에 말한 마지막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절실한 시점인데요.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황희찬 선수만의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이지 않나 싶어요. 골을 넣고 승점을 따서 빨리 강등권에서 벗어나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월드컵 전까지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새로운 감독님이 기회만 준다면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 자신감은 있어요.

선수마다 기대하게 되는 플레이의 형태가 다른데요. 황희찬 선수는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를 발휘해 치고 달리며(일명 ‘치달’) 상대 수비진을 뒤흔드는 장면이나 골을 만들어내는 결정력을 기대하는 팬이 많아요. 스스로는 자신의 어떤 플레이를 선호하나요?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팬들에게 재미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보는 맛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어쨌든 보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공격수를 예로 들면 네이마르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처럼 돌파를 잘하거나 골을 잘 넣는 선수가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유형이지 않나 싶어요. 지금 제가 잘하는 부분이라고 하면, 돌파나 수비수를 제 쪽으로 끌어들이고 반대편으로 패스하는 플레이인 것 같아요.

자신감과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할 것 같아요. 프로 리그 소속 팀이나 국가대표 팀에서도 제가 일대일 돌파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경기 전에 ‘희찬아, 네가 돌파해’, ‘마무리 지어줘’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 사실이 자신감으로 이어질 때가 많아요. 이런 말들을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면 경기가 잘 풀리지 않기 때문에 저도 점차 자신감을 가지고 즐기려고 해요.

그런데 그 힘과 스피드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예요? 노력보다는 타고나는 부분이 더 크다고 하던데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한테 물려받은 거니까 감사하라고 농담처럼 자주 말씀하시는데, 맞는 말 같아요.(웃음) 부모님도 두분 다 어릴 적에 운동을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선수로서 수준 높은 지원을 받으면서 훈련한 덕도 있지만, 타고난 부분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축구 국가대표 황희찬 선수 화보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우라칸 모노밸런시어 워치 로저드뷔(ROGER DUBUIS),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과 니트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축구가 아니어도, 다른 종목이라도 운동선수가 됐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축구랑 태권도를 같이 했는데, 태권도도 되게 좋아했어요. 아마 태권도를 했으면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는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2002년 월드컵을 보고 축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경험을 하고 있어요. 특히 큰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경험은 각각 무엇이었나요? 단순해요. 경기에서 골을 넣고 이겼을 때는 늘 기쁘죠. 이와 반대로 경기를 잘하고도 졌을 때는 무척 슬프고요. 축구는 아무리 경기를 잘 풀어도 결국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길 수 없잖아요. 거기서 오는 절망이나 슬픔이 있어요.

주로 기쁨을 복기하는 편인가요, 아쉬움을 되새기는 편인가요? 저는 아쉬운 부분을 돌아보는 편이에요. 잘한 부분은 이미 몸으로 체득했으니까 언제든지 다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못한 건 제대로 다시 보고 철저하게 보완해야 해요. 그렇게 단점을 계속 건드리다 보면 장점이 되더라고요. 거기서 오는 재미가 은근히 커요. 단점을 계속 마주하고 다시 해보고, 안 되면 또 하며 반복하는 거예요. 그러면 신기하게 어느 순간 장점으로 변해 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이 기분을 저 말고 다른 분들도 느끼면 좋겠어요.

그 과정을 재미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웃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될 텐데요. 물론 쉽지는 않죠. 그런데 극도로 힘들 때 조금만 더 해보는 일들이 어떨 때는 재미있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힘과 스피드만큼이나 지독함, 치열함 또한 황희찬 선수의 재능이지 않나 싶어요. 이건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보완할 부분이 보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메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매일 운동할 때마다 그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