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은 영화가 앞으로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질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가진 디자이너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90여 년 전인 1930년대 초, 당시 영화는 새로운 부흥을 맞이했다. 가브리엘은 대담성과 꿈을 심어주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다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패션의 세계와 일맥상통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영화 속 패션으로 모든 여성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엿봤다. 결국 그는 1931년 미국의 영화제작자 사무엘 골드윈(Samuel Goldwyn)의 초청을 받아 당시 무성영화계의 스타 중의 스타이던 글로리아 스완슨(Gloria Swanson)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의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건너간다. 그리고 영화 <펄미 데이즈(Palmy Days)>, <투나잇 오어 네버(Tonight or Never)> 등을 통해 골드윈과 합을 맞추며 영화계에 입성한다. 이후에도 가브리엘은 파리에서 영화 의상 작업을 이어가며 영화계 인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 쟝 콕토(Jean Cocteau)와 루이 말(Louis Malle),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친구였고, 배우 쟌느 모로(Jeanne Moreau), 델핀 세리그 (Delphine Seyrig)에게 의상을 지어주며 영화계에 샤넬의 이름을 녹여냈다. 훗날 가브리엘 샤넬의 뒤를 이은 두 명의 아티스틱 디렉터, 남다른 영화광이던 칼 라거펠트와 영화 의상을 공부한 버지니 비아르는 가브리엘 샤넬의 바통을 이어받아 샤넬과 영화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몰두했다. 특히 칼 라거펠트는 배우로서 스크린에 출연해 연기를 할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다. 2011/12 크루즈 컬 렉션을 위해 만든 영화 , 2014/15 메티에 다르 컬렉션을 위해 만든 <Reincarnation> 등 의 영화를 직접 찍고, 캠페인에 틸다 스윈튼, 페넬로페 크루즈 등을 등장시키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버지니 비아르도 영화에 대한 헌신이라는 샤넬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의 컬렉션은 늘 영화적 서사와 미학에서 출발했다. 2022 S/S 레디-투-웨어 컬렉션은 누벨바그 배우들의 아름다움을 담았고, 2024 F/W 레디-투-웨어 컬렉션에서는 영화 <남과 여>를 오마주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영화와 샤넬을 긴밀히 연결했다. 더 나아가 칸, 베니스 등 유수의 영화제를 후원하는 것부터 가브리엘 샤넬이 그랬듯 함께하는 예술가들과 친구이자 후원자로서 열렬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의상 제작, 제작 지원, 영화 개봉 지원 등에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모든 프로젝트에서 제작자의 자유와 독창성을 결코 침해하지 않는 뚝심으로 영화사의 보존을 위한 명작의 복원까지 함께하는 중이다. 2024년,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샤넬의 사랑을 엿볼 수 있던 순간들을 모았다.

81ST 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1920년 가브리엘 샤넬은 예술가 부부 호세 마리아 세르트, 미시아 세르트와 베니스를 방문했고, 베니스는 샤넬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이후 샤넬은 영화제작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참여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알리체 로르와커(Alice Rohrwacher)와 JR이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작품이자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서 출발한 영화 <알레고리 시타딘(Alle ´gorie Citadine)> 의 제작을 지원했다. 또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테일러 러셀의 빈티지 웨딩드레스와 <비틀쥬스 비틀쥬스>로 레드카펫을 밟은 위노나 라이더의 의상이 큰 주목을 받았다. 테일러 러셀은 9백 시간에 걸친 작업 시간과 7만 명의 손길을 들여 재해석한 1993 S/S 샤넬 오뜨 꾸뛰르의 웨딩드레스를, 위노나 라이더는 2007 S/S 오뜨 꾸뛰르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적인 턱시도 재킷에 튈 스커트를 매치해 자신이 연기한 ‘리디아 디 츠’가 빙의한 듯한 ‘매서드 드레싱’으로 베니스의 찬사를 받았다.

TOKYO LIGHTS

꾸준히 영화 산업 후원의 장을 넓히고 있는 샤넬은 ‘샤넬 앤 시네마 – 도쿄 라이트(Chanel and Cinema – Tokyo Lights)’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영화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지휘 아래 일본 영화 산업의 미래를 밝힐 신진 일본 영화감독을 발굴하는 것. 샤넬은 그들에게 창의성과 대담성, 자유를 표현하고, 영화계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밝혔다.

VILLA MEDICI IN CHANEL

선정된 아티스트에게 1년간 아름다운 작업실을 제공하며 마음껏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해주어 ‘예술가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로마의 빌라 메디치. 3백여 년 전부터 아티스트 들의 레지던시로 이용되던 이곳은 2021년부터 현대미술과 영화의 관계를 기리기 위해 영화제를 시작했다. 샤넬도 빌라 메디치 영화제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3년 연속 지원을 이어가는 중. 샤넬의 지원으로 올해로 황금종려상 수상 40주년을 맞은 빔 벤더스 감독의 명작 <파리 텍사스>의 복원 버전을 상영했다.

샤넬이 6년 연속 지원 중인 영화제이자, 50주년을 맞은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
버지니 비아르의 지휘 아래 영화 <남과 여>에서 영감을 받아 촬영한 2024/25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캠페인 영상.

DEAUVILLE FOREVER 1 VILLA MEDICI IN CHANEL

샤넬은 50년 전 유럽에 진출하는 미국 영화를 알리기 위해 시작해 매년 프랑스 도빌에서 열리는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와 6년 연속으로 파트너 십을 맺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를 위해 마고 로비의 의상을 제작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미국 영화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는 샤넬로서는 당연한 선택! 샤넬의 발길이 닿은 곳은 영화와 연관이 깊은 걸까? 도빌은 1910년 샤넬이 첫 매장을 연 곳으로 샤넬을 거쳐간 모든 디자이너에게 충만한 영감을 제공한 의미 깊은 마을이니 말이다. 샤넬과 영화를 서정적으로 연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버지니 비아르는 포토그래퍼 듀오 이네즈 & 비누드와 함께 촬영한 영상을 2024/25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에서 상영하며 도빌을 기념했다. 끌로드 를르슈 감독의 <남과 여>에서 영감을 얻고, 페넬로페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에게 주연을 맡겨 완성도를 높인 영상이 상영되던 런웨이 위는 그 자체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