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봄-여름 캠페인 ‘파이어플라이즈(Fireflies)’를 공개한 발렌티노. 고요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미지 속에서 메종의 새로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어지는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Valentino

낙하 직전 멈춰 선 시간, ‘Fireflies’

최근 발렌티노가 2026 봄-여름 캠페인 ‘파이어플라이즈(Fireflies)’를 공개했습니다. 이번 캠페인은 이름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을 연상시키죠. 오래된 벽화와 프레스코 장식이 남아 있는 바로크풍 공간, 낮게 깔린 자연광 그리고 그 안에서 고요하게 서 있는 모델들. 숨소리마저 들릴 듯 고요한 움직임이 계속되며 묘한 긴장감이 화면을 가득 채우죠.

빛을 머금은 드레스가 은은하게 반사되고, 유려하게 떨어지는 블랙 드레스는 그림자와 겹치며 실루엣을 강조합니다. 구조적인 숄더 라인을 살린 테일러드 수트 역시 존재감을 드러내죠. 로고는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자연스럽게 배치됩니다. 가방과 주얼리는 룩의 일부로 녹아들며 전체적인 톤에 포인트를 주죠. 절제된 우아함과 미켈레만의 스타일링이 돋보입니다.

캠페인 속 모델들의 포즈 역시 시선을 붙듭니다. 균형을 잃을 듯 기울어졌다가 서로의 몸에 기대며 다시 중심을 되찾습니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움직임이 이어지죠. 두 사람이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버티는 장면은 단순한 안무를 넘어 하나의 서사처럼 읽힙니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한 모델들이 한 공간에 모입니다. 텅 빈 궁전 안, 조각상이 놓여야 할 자리에는 살아 있는 인물들이 대신 서 있죠.

©Valentino
©Valentino

빛을 머금은 실루엣

발렌티노의 2026 봄-여름 시즌의 실루엣은 유연하지만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몸을 타고 내려오는 드레이프 드레스, 허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주름을 잡은 저지 톱, 그리고 깊게 파인 슬릿 스커트가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보여주죠. 균형을 잃을 듯 기울어진 포즈 속에서도 옷의 존재감이 드러납니다.

시퀸과 비즈 자수가 촘촘히 얹힌 그린 톱은 빛을 받으며 잔잔하게 반짝이고, 로즈 핑크와 코럴 톤의 미니 드레스는 리본과 셔링 디테일로 로맨틱함을 더합니다. 블랙 재킷에 골드 패널이 더해진 구조적인 룩은 장식성과 조형미를 동시에 강조하죠.

이번 캠페인은 화려함만을 앞세우기보다 불안정한 순간을 버티는 몸의 형태를 옷으로 번역합니다. 서 있음과 기울어짐 사이. 발렌티노의 봄은 그 간극 위에 놓여 있죠.

©Valentino
©Valentino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 선택

캠페인 공개와 함께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발렌티노가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을 로마에서 선보인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죠. 베뉴는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집약한 공간, 바르베리니 궁전(Palazzo Barberini)입니다. 바르베리니 궁전은 로마에 위치한 17세기 궁전으로, 현재는 국립 고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죠. 쇼는 3월 12일, 파리 패션위크 일정과는 별도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메종은 이번 선택을 두고 “하우스의 기원과 유산에 대한 경의”라고 설명했는데요. 이후 시즌에는 다시 파리로 복귀할 계획이라는 점도 함께 밝혔습니다.

발렌티노는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가 로마에서 1960년 설립한 하우스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션과 발렌티노 재단은 로마의 팔라초 가브리엘리-미냐넬리에 자리하고 있죠. 다음 컬렉션 장소를 로마로 정한 것은 브랜드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그 의미를 되새기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현재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에게도 로마는 특별한 도시입니다. 그는 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과거 구찌 재직 시절에도 로마의 역사적 공간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죠. 도시와 패션을 연결하는 그의 방식은 로마를 다음 컬렉션 장소로 꼽은 이번 행보를 더 주목하게 합니다.

캠페인이 무너질 듯 서로를 지탱하는 위태로운 간극을 포착했다면, 로마에서 펼쳐질 다음 컬렉션은 하우스의 헤리티지와 출발점을 다시 상기시킬 예정이죠. 기울어지면서도 서로를 붙잡아주며 무너지지 않는 관계의 유대감을 그려냄과 동시에 하우스의 유산을 기리는 행보를 보여주는 미켈레. 그가 그려나갈 발렌티노의 다음 장면을 기대해 봐도 좋겠습니다.

©Valent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