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 비통의 상징, 모노그램의 역사
이니셜 ‘L’과 ‘V’가 균형을 이루며 교차하고, 그 주위를 네 장의 꽃잎이 펼쳐진 플라워 모티프가 별자리처럼 둘러싼다. 세대와 성별을 떠나 누구든 인지할 수 있는 이 패턴의 이름은 모노그램이다. 루이 비통의 상징, 20세기의 아이콘. 무수한 수식으로 형용되며 오랜 시간 욕망의 대상이 되어온 바로 그 이름 말이다.


네오고딕, 자포니즘, 아르누보 양식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미감은 오늘날 하우스의 표식으로 기능하며 모노그램을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패턴과 확연히 구분 짓는다. 그러나 이 배열을 특별하게 만드는 진정한 특성은 미감 이면에 존재한다. 탄생 배경과 제작 과정, 그리고 모노그램이 태어난 해부터 동행한 철학 속에 단단하게 축적돼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백30년 전인 1896년, 창립자 루이 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은 아버지의 개척 정신을 기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 지앙(Gien) 지역의 도자기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예술 기법과 양식이 공존하는 아니에르(Asnières) 자택에 거주 중이었으며, 고전 건축에 쓰이는 콰트로포일(quatrefoil, 네 장의 잎이 모인 형태), 트레포일(trefoil, 세 장의 잎이 모인 형태), 방사형으로 퍼지는 꽃 형태인 로제트(rosette), 그리고 일본의 유력 가문이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던 문장인 몬(mon)에 매료되어 있었다. 갖은 영감에 둘러싸인 조르주 비통은 아버지 루이 비통의 이니셜과 다양한 도식을 그래픽화하는 이 조합을 고안해냈고, 곧 하우스의 기억과 새 출발을 의미하는 시적 상징으로 삼게 된다.

이렇듯 사랑과 존경, 오마주에 기반을 둔 모노그램은 1897년 1월, 특허출원을 거쳐 하우스의 중대한 보호 장치로 변모했다. 루이비통의 트렁크가 인기를 얻음에 따라 그 무렵 파리에는 모방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시각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따라 하기 힘든 모노그램 패턴의 만듦새가 자연스럽게 진품임을 입증할 징표가 되며 하우스를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셈이다. 조르주 비통은-특허 문서에 따르면- “캔버스, 가죽, 인조가죽, 종이 등 어떤 표면에든, 어떤 색상으로든 인쇄 또는 엠보싱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모노그램을 통해 독자적 변별성과 예술성을 확립해나가기 시작했다.
루이 비통의 뿌리, 장인정신과 제작 노하우
모노그램의 영감이 된 아니에르는 1859년 창립자 루이 비통에 의해 저택과 공방을 결합한 형태로 설립됐다. 공간이 위치한 파리 북서쪽의 작은 마을 아니에르는 센강을 끼고 있어 원자재를 운송하기에 유리했고, 이러한 이점 덕분에 빠른 속도로 규모를 확장하며 장인정신(Savoir-faire)의 본거지이자 하우스의 심장부 역할을 맡게 됐다. 조르주 비통을 비롯한 루이 비통의 자녀들이 사업에 입문하기 전 가족의 전통 기술을 익힌 장소 역시 바로 이곳, 아니에르다.

2026 S/S 오트 쿠튀르 패션위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마리끌레르 코리아는 루이 비통의 초대를 받아 아니에르로 향했다. 센강을 건너 도착한 이곳에는 루이 비통 가문이 세대를 거쳐 세상에 남기고자 한 원칙이자 기준인 장인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공방을 둘러보기에 앞서 들어선 아니에르 저택은 조르주 비통이 직접 확장과 인테리어 공사를 진두지휘한 공간으로 14세의 루이 비통을 상상해 그린 초상화, 유려한 아르누보 벽 장식, 튀르쿠아즈 블루 컬러의 도자기 벽난로 등 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요소가 세월을 품은 채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원을 따라 공방에 도착하자 원목 향이 밀려들며 비로소 가장 상징적인 장소에 도착했음을 깨닫게 했다. 오늘날 아니에르 공방은 트렁크와 스페셜 오더 제품의 제작을 담당하며,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기술을 보존하고 바느질 한 땀마저 엄격한 기준으로 대한다. 이 과정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루이 비통의 비밀 서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메종의 역사와 같은 나이테를 지닌 트렁크는 포플러, 너도밤나무, 오코메 나무 등 기본 구조가 될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한다. 이후 목재를 보강하기 위해 면 캔버스를 입히는 리빙(ribbing) 과정,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외곽선을 따라 가죽이나 섬유로 된 단단한 테두리를 못으로 고정하는 로지나주(lozinage) 과정을 거쳐 잠금장치, 모서리, 버클, 브래킷같은 금속 부품을 설치하고 손잡이나 바닥 슬랫, 보강용 슬랫을 부착하는 외부 마감 단계까지 마무리하면 우리가 익히 보아온 루이 비통 트렁크의 외관이 완성된다. 내부는 진귀한 텍스타일이나 가죽을 덧대 마감하고,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트렁크 뚜껑 안쪽에는 리본 스트랩을 교차해 엮은 말타주(malletage)가 더해진다. 각각의 자물쇠와 열쇠는 별도로 가공하는데, 하우스의 데이터베이스에 개인정보를 등록하면 고객이 소유한 모든 트렁크를 하나의 열쇠로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에서 여행자의 편의성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한 루이 비통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가죽을 정밀하게 절단하고 사용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기반의 커팅 기계를 활용하는 점(이마저도 숙련된 전문가의 감독하에 운용한다)을 제외하면 전 공정은 손에서 손으로, 장인에게서 장인에게로 맡겨지고 다듬어진 후에야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우리가 루이 비통의 제품을 접하며 느끼는 견고하다는 인상은 바로 이러한 시간의 축적 속에 뿌리내린 것이다. 루이 비통은 이러한 과정을 두고 “공동의 노력을 통해 진화하는 탁월함을 창조한다는 자부심으로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각자의 일을 저마다의 속도로, 그러나 일관된 진지함으로 대하는 여러 세대 장인들의 모습은 이 문장을 방증하며 가방 하나를 남다르게 만드는 가치가 어떠한 ‘정신’에서 비롯됨을 일깨웠다.

장인정신을 뜻하는 프랑스어, 사보아 페어는 ‘알다’를 뜻하는 사보아(savoir), 그리고 ‘하다’를 뜻하는 페어(faire)를 합친 말이다. 직역하면 ‘어떻게 하는지 아는 능력’, 즉 장인의 숙련된 노하우와 오랜 시간 쌓인 기술력, 브랜드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통칭한다. 우리말로 적확히 번역될 수 없기에 그 간 어렴풋이 짐작해온 이 단어의 의미가 아니에르 투어를 마친 후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날 아니에르에서 마주한 모든 장면, 그리고 모노그램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거치는 모든 손길. 이것이야말로 사보아 페어의 분명한 형상이었다.
INTERVIEW
장인정신 총괄, 피에르-루이 비통과의 인터뷰


이토록 역사적인 장소에 초대해주어 고맙다. 아니에르는 흔히 루이 비통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당신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일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종종 공방에 가곤 했다. 그곳은 내게 금지된 세계 같았고, 모든 장면을 깊은 경외심과 호기심으로 바라본 기억이 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장인정신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이 일에 요구되는 인내, 엄격함, 일평생을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향한 존경심을 키우게 됐다.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가문의 일원으로서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일 듯하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강한 직업윤리를 배웠다. 사보아 페어를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전승에 대한 존중,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열정, 각각의 피스에 담긴 인간적 면모까지 모두 기리고자 하는 의지를 늘 가지고 있다.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접하며 자랐을 텐데, 세상을 구성하는 것 가운데 어떤 특성을 지닌 개체에 아름다움을 느끼나? 사실 개별적 요소보다는 그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편이다. 사람, 그리고 개개인이 손으로 빚어내는 오브제 사이의 대화가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의도와 일관성에서 기인한다. 정밀함에 이를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는 몸짓,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는-마치 코팅하지 않은 루이 비통의 천연 베지터블 소가죽에 파티나가 남듯- 소재, 그리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는 공간과 순간. 이 모든 것 안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지 않겠나.
모노그램처럼 말인가? 그렇다. 루이 비통의 제품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연속성의 감각 때문이다. 모든 제품은 세대를 거쳐 축적된 장인정신과 기술의 집약체다. 처음엔 실루엣이나 섬세한 마감에 이끌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서 보이는 건 신뢰의 감각이다. 이 백이 드는 이의 삶에 함께하기 위해 디자인됐다는 믿음이랄까.
사보아 페어 총괄이라는 직무에 동반되는 사명감에는 어떤 것이 있나? 장인정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승되고, 세월이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장인정신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술 그 자체, 혹은 그걸 다루는 태도? 태도와 분별력, 기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기술이 장인정신으로 거듭난다고 생각한다. 장인정신은 사소한 행동에 기울이는 세심한 주의, 소재를 다루는 존중 속에 살아 있다. 손과 제스처의 이야기인 동시에 가치의 문제인 셈이다.
올해로 탄생 130주년을 맞은 모노그램의 뿌리에는 동양과 서양, 기하학과 추상, 사랑과 혁신이 교차한다. 당신이 그리는 하우스의 미래는 어떤 가치들로 이루어져 있나? 모노그램은 오랜 시간 루이 비통의 주된 캔버스였고, 즉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정체성을 구축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정체성이 한자리에 머무르거나 고정되는 대신 열린 상태로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패션이 루이 비통 세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여러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모노그램을 재해석했고, 이런 작업은 본질을 지키는 한편 진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모노그램은 패턴을 넘어 하나의 창의적 언어로 존재한다. 레더, 하이 주얼리, 워치, 레디투웨어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말이다. 이 안에서 거대한 가능성을 본다. 하우스를 정의하는 여러 키워드를 존중함과 동시에, 장인정신이 계속해서 새로운 표현, 분야, 세대와 교차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나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