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정교한 시곗바늘은 제네바를 향합니다. 시계 업계의 가장 큰 이벤트이자 새 시즌의 흐름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무대, 워치스앤원더스(Watches and Wonders) 2026이 4월 14일 막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올해 박람회에는 총 65개 메종이 한자리에 모여 지금 워치메이킹이 어디를 향하는지 선명한 윤곽을 보여줬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박람회지만 올해는 특히 더 특별합니다. 오데마 피게가 2019년 이후 다시 워치스앤원더스에 합류해 팔렉스포(Palexpo)의 몰입형 부스와 도심 속 AP 랩을 통해 브랜드의 유산과 장인정신, 창의적 협업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펼쳐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역사적인 분기점을 맞은 메종들의 행보도 시선을 붙잡습니다. 롤렉스는 오이스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작으로 브랜드의 상징적인 서사를 다시 또렷하게 세웠고, 파텍 필립은 노틸러스 50주년 리미티드 에디션을 공개하며 컬렉터들의 기대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새로 공개한 노벨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시계 업계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완전히 낯선 얼굴을 무작정 쏟아내기보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아이콘을 더 정교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손보고, 손목 위에서 느껴지는 비율과 착용감까지 세심하게 다시 조율하는 흐름이 한층 또렷해졌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워치는 과장된 힘을 덜어내는 대신 더 도회적이고 말끔한 표정을 얻었고, 컴플리케이션은 복잡한 기능의 과시를 넘어 장면과 서사까지 품으며 한층 풍부한 감각을 드러냈습니다. 한 해의 워치메이킹을 가장 먼저 비추는 거대한 무대, 워치스앤원더스 2026이 꺼내 보인 올해의 신호를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복각을 넘어 재설계로, 까르띠에, 태그호이어, 파네라이

올해 워치스앤원더스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아카이브를 풀어내는 메종들의 방식이었습니다. 한동안 복각에 초점을 맞췄던 메종들은 이제 과거의 아이콘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유산은 살리되 지금의 기술과 감각에 맞춰 새롭게 다듬었죠.

까르띠에(Cartier)는 ‘형태의 워치메이커, 공예의 대가’라는 테마 아래 산토스 뒤몽을 다시 꺼냈습니다. 케이스 사이즈는 43.5 x 31.4mm입니다. 블랙 옵시디언(obsidian) 다이얼에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430 MC를 탑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노벨티의 핵심은 메탈 브레이슬릿 워치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입니다. 옐로 골드 소재로 완성한 15열 구조의 브레이슬릿은 총 394개 링크를 촘촘히 연결해 산토스 뒤몽 특유의 날렵한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손목을 감싸는 느낌을 한층 더 부드럽고 섬세하게 다듬었죠. 상징적인 형태를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착용 방식 자체까지 다시 설계한 셈입니다.

태그호이어(Tag Heuer)는 모나코 에버그래프로 같은 흐름을 훨씬 공학적인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그레이드 5 티타늄을 적용한 40mm 케이스 안에 자동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TH80-00을 장착해 70시간 파워리저브를 확보했습니다. 1969년 모나코의 상징적인 얼굴은 그대로 끌고 오면서도 내부 구조는 오늘의 기술로 다시 설계해 워치메이킹의 기술력을 고스란히 드러냈죠. 그렇기에 모나코 에버그래프의 매력은 복고에 머물지 않습니다. 아이콘을 현재형으로 다시 세운 데 의미가 있습니다.

파네라이(Panerai)의 루미노르 PAM01731은 1960년대 역사적 레퍼런스 6152/1의 디자인 언어를 44mm 포맷으로 다시 해석한 모델입니다. 쿠션형 케이스와 크라운 프로텍팅 브리지, 샌드위치 다이얼처럼 루미노르를 상징하는 요소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크기는 더 현대적인 착용감에 맞춰 조정했죠. 수동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P.6000과 3일 파워리저브, 약 300m 방수 성능을 갖췄고, 돔형 사파이어 크리스털과 토바코 컬러 다이얼, 베이지 슈퍼 루미노바가 빈티지한 매력을 더합니다. 루미노르 PAM01731은 과거를 단순히 복각한 시계가 아니라 파네라이의 군용 헤리티지와 기능 중심 철학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비율의 미학, 불가리, IWC, 피아제

두 번째로 눈길을 끈 건 크기의 변화였습니다. 다만 올해 제네바에서 포착한 점은 단순한 소형화가 아니었습니다. 더 얇다는 숫자를 앞세우기보다 손목에 더 자연스럽게 밀착되고 어떤 비율로 더 조화로운지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크기를 줄이면서 구조까지 다시 손보는 흐름이 새롭게 공개한 노벨티에서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불가리(Bvlgari)의 옥토 피니씨모 37이 자리합니다. 불가리는 이전 모델의 크기만 줄이는 데 머물지 않고 37mm라는 새로운 케이스 사이즈에 맞춰 내부 구조와 외부 비율을 처음부터 다시 짰습니다. 새롭게 탑재한 인하우스 칼리버 BVF 100은 마이크로 로터를 품은 초박형 무브먼트로 2.35mm 두께 안에 72시간 파워리저브를 보장합니다. 케이스 전체 두께도 6.45mm로 정리해 컬렉션 고유의 강렬한 인상은 유지하면서도 손목 위 균형감은 한층 더 세심하게 다듬었죠. 단순히 더 얇아지기보다 옥토 피니씨모를 더 자주,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비율로 다시 짠 셈입니다.

IWC의 인제니어 오토매틱 35 역시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습니다. 35mm 케이스와 9.4mm의 두께, 자동 칼리버 47110을 탑재한 이 모델의 진면목은 인체공학적 설계에 있습니다. 제랄드 젠타의 유산인 그리드 다이얼과 다섯 개의 스크루가 박힌 베젤 그리고 통합형 브레이슬릿이라는 상징적 요소들은 고스란히 계승했습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메종은 전체 실루엣을 더욱 섬세하게 다듬어 심리적·물리적 착용 문턱을 낮추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제니어 고유의 묵직한 존재감은 지켜내면서도 다양한 손목 굵기에 대응하는 유연한 비례를 완성했습니다.

피아제(Piaget)는 피아제 폴로 시그니처 데이트로 이러한 흐름에 우아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가드룬의 유산(A Legacy of Gadroons)’이라는 테마를 앞세워 1979년 피아제 폴로를 상징하던 가드룬 모티프를 다시 전면에 세웠습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36mm와 42mm 두 가지 사이즈로 노벨티를 선보이며 손목 위 선택지를 넓혔다는 점입니다. 42mm 모델은 자동 칼리버 1110P를, 36mm 모델은 인하우스 칼리버 500P1을 품고 각각 9.4mm와 8.8mm 두께로 완성했습니다. 이번 피아제 폴로 시그니처는 단순히 소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손목 위에서 더 안정적인 균형과 비례에 집중합니다.

스포츠 워치의 진화, 롤렉스, 바쉐론 콘스탄틴, 샤넬

이번 워치스앤원더스에서 공개한 노벨티를 따라가다 보면 스포츠 워치의 분위기가 한층 달라졌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정제된 인상과 군더더기 없는 외관을 앞세우며 드레스 워치와의 경계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죠. 그렇다고 기능을 덜어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성능과 완성도는 한층 더 높였습니다. 

먼저, 롤렉스(Rolex)는 메종의 심장과도 같은 오이스터(Oyster) 컬렉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오이스터 퍼페츄얼 41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옐로 롤레조의 우아한 조합이 돋보이는 41mm 케이스 안에는 칼리버 3230을 탑재했고, 약 70시간 파워리저브와 100m 방수 성능을 갖췄습니다. 여기에 와인딩 크라운에는 숫자 100을 새기고 다이얼 6시 방향에는 100 years를 더해 이번 노벨티가 지닌 역사적 무게감을 강조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은 오버시즈 듀얼 타임 카디널 포인트로 여행 시계와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경계를 한층 유연하게 엮었습니다. 41mm 티타늄 케이스와 일체형 브레이슬릿, 칼리버 5110 DT/3, 듀얼 타임, 날짜, 데이·나이트 표시를 담았고, 약 150m 방수 성능과 교체 가능한 스트랩 시스템까지 갖췄습니다. 특히 이번 노벨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기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북·남·동·서를 상징하는 네 가지 컬러를 통해 방향 감각 자체를 디자인 언어로 끌어왔고, 탐험과 이동의 감각을 세련된 형태로 풀어내며 시계 애호가들의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샤넬(Chanel)은J12 슈퍼레제라를 통해 스포츠 워치에 대한 미학을 한층 끓어올립니다. J12는 레이싱 요트의 유려한 라인에서 출발한 샤넬의 첫 스포츠 워치 컬렉션으로, 이번 노벨티에서도 그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잇습니다. 매트 블랙 세라믹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조합한 42mm 케이스에는 샤넬의 매뉴팩처에서 생산한 셀프 와인딩 칼리버 12.1를 탑재했고, 약 70시간 파워리저브를 제공합니다. 여기에 200m 방수 성능과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검증기관(COSC) 인증까지 더해 감각적인 외관에만 머물지 않고 성능과 정밀성까지 함께 밀어붙인 스포츠 워치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손목 위로 옮긴 밤하늘, 반클리프 아펠, 로저드뷔,

워치스앤원더스 2026에서 공개한 노벨티 가운데는 밤하늘의 낭만을 손목 위로 옮겨온 컴플리케이션 워치도 시선을 붙잡습니다. 하이 워치메이킹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밤하늘이 품은 환상과 서사까지 작은 다이얼 안에 담아냈죠. 이쯤 되면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에 머물지 않습니다. 낮과 밤의 흐름, 달의 움직임, 하늘의 리듬이 다이얼 위에서 한 폭의 장면처럼 펼쳐집니다.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은 미드나잇 주르 뉘 페이즈 드 룬 워치로 밤하늘을 시적으로 풀어냈습니다. 42mm 화이트 골드 케이스 안에는 주르 뉘 표시와 실제 문페이즈라는 두 개의 컴플리케이션이 겹쳐 들어가고, 달이 가려진 순간에도 버튼을 누르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장치를 더했습니다. 낮과 밤 그리고 달의 변화가 하나의 다이얼 위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시간을 읽는 행위 자체를 훨씬 더 감각적인 경험으로 바꿔놓습니다. 반클리프 아펠이 오랫동안 밀어온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의 세계가 이번 노벨티에서 다시 한번 설득력 있게 완성된 셈입니다.

로저드뷔(Roger Dubuis)는 ‘하늘의 움직임(Movements of the Sky)’을 엑스칼리버 바이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 캘린더에 응축했습니다. 40mm 핑크 골드 케이스 안에는 인하우스 칼리버 RD850과 약 60시간 파워리저브, 퍼페추얼 캘린더, 122년 동안 하루 오차 수준의 천문 문페이즈를 담았고, 날짜와 요일은 바이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로, 달의 흐름은 아스트랄 블루 오픈워크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집니다. 

watchesandwonders.com

손목 위에서 펼쳐진 이 경이로운 서사들 중 마음 깊이 안착한 타임피스가 있었나요? 아직 못다 한 2026 워치스앤원더스의 하이라이트는 후속편에서 이어집니다.